아이의 아픔을, 나의 고통을 다시 떠올리는 게 죽기보다 싫지만 글을 쓰며 그 고통을 떨쳐내고자 용기를 내어본다.
재작년 여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막히던 8월의 어느 날, 둘째 아이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했다.
"엄마,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려요. 욕 같은 게 계속. 나쁜 마음도 계속 들어요. 사회시간에 유관순에 대해 공부하는데, 나는 유관순언니가 나라를 위해 돌아가셔서 감사하고 고마운데 마음에서는 잘 죽었다, 꼬시다라면서 자꾸 욕을 해요. 그런 소리 듣기 싫은데 자꾸 그래요" "언제부터?" "일주일정도 된 것 같은데,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계속 그래서 마음이 힘들어요"
그 말을 듣자 심장이 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졌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해졌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병원을 가는 게 전부였다. 급한 데로 자주 가던 포항에 있는 큰 소아과로 갔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큰소리에 잘 놀랬고 무서워했던 경험이 있으니 아이가 불안해서 그럴 수 있다고 신경안정제를 먹여보자 하셨다. 천둥번개에 쥐약인 아이라 스쿨버스도 못 탄 적이 있었으니 겁보에 쫄보라고만 생각했다. 이 무지한 엄마는. 받아온 약을 며칠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잠만 온다고 툴툴댔다.
'하,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미치겠다.'
속은 숯덩이가 된 지 오래였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 매달렸다. 안수집사인 아빠께도 조언을 구했다.
"귀에 대고 기도해 주거라, 아빠도 기도할게"
아빠말을 믿고 기도했지만 별다른 차도가 보이질 않았다. '내 믿음이 약해서 그런가?' 하나님께 매달려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조건도 걸어보고, 하나님을 귀찮게 했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속이 탈대로 다 탔는데도 계속 타들어갔다. 피가 마른다는 게 이런 심정일까?
아이가 아플 때 병원근무를 하던 중이라 앉아서 병원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맘카페에 수소문을 했고 검색을 밤낮으로 했다. 살면서 초록창을 제일 많이 눌렀던 시간이었다. 검색을 통해 몇몇 곳을 알게 되었고, 이런 방면으로 유명하다는 대구에 있는 큰 병원에 예약을 했지만 빨라야 5개월 뒤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 예약을 해놓고 대구, 포항에 있는 개인병원으로도 문의를 했다. 근무시간 때문에 어디에도 예약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일하던 병원은 환자도 많고 건강검진부터 접종, 보건증 등 해야 할 일도 많았으며, 2명의 간호사가 근무하는데 한 명이라도 쉬게 되면 진료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버렸다. 나 혼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만 떠올려도 애탔던 마음이 거슬러올라와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병원에 갈 수 없게 되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심리센터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예약을 하고 몇 군데 상담을 했는데 아이의 불안은 모두가 부모탓이란다.
'아이를 집에 놔두고 일하는 엄마는 마음이 편하겠냐고요!!' '아이를 위해 택했던 일이었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부모도 검사, 아이도 검사, 그리고 이어지는 상담. 센터마다 같은 듯 다른 검사가 이어졌고 곧 결정을 해야 됐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고 아이는 여전히 힘들어했다. 심리센터 중 아이가 더 좋다는 쪽으로 선택을 했고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다.
얼마 후 다행히도 경주에 있는 병원 한 군데가 시간이 맞아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4시간 동안 선생님과 1:1로 집중적인 검사를 했다. 검사결과는 조현병도 의심할 필요가 없고, 불안을 조금 느끼긴 하는데 모든 게 정상이라 했다. 안도의 숨은 내쉬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신경안정제부터 간질약까지 처방받아서 먹였다.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 하셨지만 이게 맞는 건지, 정작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고, 그때만 해도 전적으로 의사 선생님을 믿고 기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처방에 따라야만 했다.
불안해하는 아이를 위해 과감히 퇴사를 결정했다. 워킹맘으로 지낸 지 막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시간적 자유를 간절히 원하며 일을 다니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자유를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게 하나님의 빅피쳐인가요? 저는 감당하기 너무 힘이 듭니다.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신다 했잖아요, 피할 길을 보여주신 다했잖아요.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아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듣기 싫은 악한소리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고 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니 살려달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대신 내가 죽겠노라고까지 해댔으니 난 참으로 믿음이 작은 자였다. 야속하게 흐르던 시간을 잡지도 못한 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신랑의 음력생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우리 시어머님도 같은 날이다. 생일도 같고,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생일상은 한 번만 차리면 되는 편안함은 있다.
내가 결혼을 맘먹었을 때도 가족 모두를 전도하리라 마음먹었지만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아직까지 신랑은 종교가 없다. 신랑에게 종교를 물으면 '철새교'라고 한다. 철새처럼 필요시에 종교가 바뀐다나? 성탄절엔 교회 가고,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절에 간단다. 참으로 재미난 아저씨다. 그 재미난 아저씨는 해마다 연초만 되면 신수 보러 가는 무당집이 있다. 나와 종교는 다르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했던 터라 별말하지 않았다. 신랑은 그분께 조언을 구했고 나를 만나길 원한다고 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