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용품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만

준비된 자만이 살아남는다

by 박현주

2017년. 나는 참으로 용감했다.

태교로 시작한 바느질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사업이란 걸 꿈꾸게 되었다.

경제도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내 사업을 시작해야겠단 마음이 용솟음치기 시작했고 겁도 없이 덜컥 사업자를 내고 말았다.

걱정과는 다르게 일사천리로 준비가 되었고 친한 동생이 참여하는 프리마켓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프리마켓은 작가나 예술인들의 개성 넘치는 창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마켓이다.

플리마켓 이란 것도 있는데 보통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벼룩시장, 나눔 장터 등을 말한다.

요즘은 두 개가 합쳐진 플프마켓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어묵 국물이 간절해지는 어느 차가운 날부터 프리마켓에 참여했다.

이때가 우리 집 강아지 '하늘이'가 온 지 몇 년 안 됐을 무렵이었다.


하늘이는 태어난 지 6개월이 됐을 때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정말 데리고 오려고?"

"아이들한테 좋다 하니~"

하늘이는 신랑이 일하며 밥을 고정적으로 먹던 식당에서 만난 강아지였다. 그때 당시 강아지 남매가 함께 철장 케이스에 가둬져있었다 했다.

식당이니 풀어놓고 키울 수는 없었을 터.

안돼 보이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데려오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강아지를 집안에서 키운다는 것은 옛 어른들의 시선에선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도 시어머니랑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남편이 어머니를 설득시켰다.

아이들에겐 한없이 좋은 할머니셨고 아이들을 위해 양보해주셨기에 하늘이가 우리 가족이 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집 밖에서 키우던 일명 똥강아지라 불리는 큰 개들은 많이 길러봤지만 집안에서 강아지가 활보하고 다니는 걸 보니 기쁨반, 걱정 반으로 가슴이 요동쳤다.


하늘이를 데려와 가장 처음 한일은 목욕시키기였다.

신생아를 다루듯 눈에 물들어갈라, 귀에 물들어갈라 조심조심 씻겼다.

강아지에 대한 모든 일이 나의 일이 될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며 '그 정도쯤이야'를 가슴으로 수백 번, 수만 번 외치며 감수해나갈 수 있을 거란 의지와 자신감을 꾹꾹 눌러 담았다.

강아지가 식구가 된다는 것, 아이가 한 명 더 생긴 것처럼 손도 많이 가고 어려웠다.

그래도 내가 하늘이에게 가장 잘해줄 수 있는 것은 옷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명절에 맞춰 한복을 해주고 산책할 때 입는 하네스도 만들어줬다.

털을 밀고 나면 추울까 봐 기모 티셔츠도 만들어줬다.


한복입은 하늘이 하네스 입은 하늘이

이 경험을 살려 애견 옷과 수제간식을 만들어 프리마켓에 도전했다.

애견사업이 활성화되고 있는 시기여서 그런지 인기도 많았다.

다양한 사이즈의 옷들로 만들었지만 사람도 2XL, 3XL 같은 빅사이즈의 옷들이 있듯이 애견도 마찬가지였다.

빅사이즈의 강아지들이 애법 나타났고 거기까지 신경 쓰지 못한 나는 손님을 놓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다.

그래도 내가 만든 옷과 강아지, 고양이 소품들을 보며 이쁘다 해주시니 어깨에 힘이 봉긋 들어갔다.

또 하나의 효자 상품은 수제간식이었다.

돼지코, 오리 날개, 돼지껍질, 무뼈 닭발, 고구마 말랭이 등 다양한 수제간식도 선보였다. 애견 간식을 공부하며 상상도 못 한 부위들이 출몰해 놀라는 일도 많았지만 나름 재밌었다.

돼지고기에 붙은 털도 밀어보고, 육고기에 낀 핏물과 기름기도 제거해봤다. 그리고 모든 간식들은 건조에 들어갔다. 아마도 건조기가 가장 많이 힘들었던 시간이었을 거다.


"우리 강아지도 잘 먹어요"


한마디면 구매하려는 손길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같이 애견을 키운다는 것만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동질감 같은 끈끈함도 느꼈었다.

애견용품을 팔며 몇 주가 흐르고 어느 날,

프리마켓 대표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얼마 전 아시는 분이 애견 수제간식을 팔다가 엄청난 벌금을 받았대요. 사업장 없이 집에서 하셨던 분인데 신고가 들어간 것 같더라고요. 간식을 만드는 사업장이 따로 있어야 되고 신고도 돼야 된다고 하네요. 그 말 들으니 사장님 걱정이 돼서요"

"고맙습니다. 저도 전혀 몰랐던 이야기인데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감사인사를 연신 드렸고 다음 프리마켓에 참가할 때부터는 수제간식을 깨끗이 뺐다.

아쉽긴 했지만 아닌 건 아니 것이니까.

무슨 일이든 배우고 듣고 공부해야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신고의 대상이 됐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돈 조금 벌어보겠다고 고생했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을 테니까. 벌금은 또 어떡하고,

여기서 그만둘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했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오래지 않아 애견 옷 사업도 고민에 빠졌다.

다양한 사이즈, 다양한 디자인으로 만들다 보니 재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경주의 프리마켓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프리마켓을 오시는 분들도 한정적일 때가 많았다. 단골들이 생기는 분들도 많은 걸 보면 말이다.

매번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고 계절에 맞게 만들어내다 보니 재고가 쌓여 걱정스러울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때부터 프리마켓 참여를 잠정 중단했다.

내가 만든 애견 옷을 이쁘다 해주시는 분들은 많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단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고민이 시작되면서부터 곧 마지막이 오겠구나 직감했다. 그렇게 애견 옷 사업은 끝이 났다.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기 시작했고 우리 하늘이에게 맞는 옷은 전부 하늘이 옷이 됐다. 하늘이 전용 옷걸이 대가 가득했다. 아이들 옷을 사준 것처럼 배가 불렀다. 그러나 가슴은 허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잠시 바느질을 놓고 사색에 잠겨 여러 날을 흘러 보내고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

물건만 만들었다면 공장이나 별 다를 바 없는 일이었겠지만 사업이란 것을 하게 되면 큰 그림을 그리고 운영이란 걸 해야 하는 것인데 나는 거기까지 미처 생각이 뻗치질 못했다.

그래서 재고에 흔들렸고 무너졌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아무리 애견사업이 커지고 있다지만 뒷 생각은 왜 전혀 하질 못했던 것일까?'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준비되지 않았음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재고가 남았을 경우 애견카페나 개인 밴드를 이용해 판매처를 늘려서 재고를 없앨 방법을 조금이라도 모색해봤더라면 어땠을까?'

'왜 고민하지 않았을까?'

재고에 겁이 났던 나는 애견사업을 그렇게 훌쩍 떠나보냈다.

미련도 없이 순식간에 정리가 됐다. 시원섭섭해지는 순간이었다.

위기는 기회다!

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상황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고 그 위기를 또 다른 좋은 기회로 만들라는 의미이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준비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그래서 나의 역량을 맘껏 뽐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배우고 익혔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미리 검토하고 좀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 공부가 필요했다.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패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세상이 온 것 같다.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패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니... 준비해야 한다. 불안한 하루하루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벤치마킹과 책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준비되어가고 있다. 그런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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