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아닌 바늘 같은 너를 보니 가슴이 떨려

십자수를 아세요?

by 박현주

고등학생 시절 나는 여동생과 자취를 했다.

포항시내에서 집까지는 버스로 2시간 이상의 거리였고 통학한다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중학생 때 통학을 해본 터라 쉽지만은 않은 일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겨울엔 별을 보며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고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훨씬 더 멀어진 터라 자취를 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가게 안 장식장 뒤편에 숨어있는 듯한 평상 같은 2평 남짓한 방, 싱크대 한 칸이 전부였지만 그것조차 감사했다.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도 한 번씩 출연했지만 통학의 고통보다 견딜만했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씩 걸리는 먼길이었지만 한 달 통학버스비 3 만원을 아껴보고자 걷기를 자처했다. 산골짜기에 있는 우리 학교는 우미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고 경사도 애법 있었다. 지금의 튼튼한 나의 다리는 그 시절에 완성되었음이 분명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은 다양했다.

포항역 앞으로 지나오던지,

시내를 가로질러 집으로 가던지,

아니면 죽도시장 앞으로 돌아와야 했다.

왕복으로 2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등, 하교 시간은 나에게 즐거움이었다.

마음껏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운동도 하게 되니 1석2조, 최고의 시간이었다. 마이마이를 귀에 꽂고 ccm을 주로 들었으며, 가끔 천냥 백화점에서 살 수 있는 가요 녹음테이프를 사서 듣는 게 등, 하교의 묘미였다.


하루는 시내로 지나왔는데 우연히 십자수 가게를 발견하게 되었다.

가게 앞 유리에는 이쁜 외국 아기가 멜빵바지에 꽃을 들고 있는 그림이 붙어있었는데 첫눈에 반해버렸다.


'십자수? 저건 뭐지? 왜 이리 이쁜 거야~~'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귀여웠던 나머지 꼭 갖고 싶어 졌다.

꼭 갖어야만 될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면 용감하다 그랬나?

버스비 3 만원이 아까워 몇 킬로씩 걷던 내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십자수 가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사장님, 유리에 붙은 저 외국인 아기가 그려진 그림 수놓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해본 적 있니?"


"아니요. 처음이에요. 저 그림이 너무 이뻐서 무작정 들어왔어요"


"그렇구나. 그럼 십자수하는 것부터 배워야겠네"


라고 하시며 친절히 무료로 수강해주셨다.

어찌나 감사했던지,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를 되새겨보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의 MBTI는 지극히, 극심한 I이다.

학생 시절은 더더욱 그랬다. 그런 소극적이고 소심한 내가 직접 가게를 들어가 십자수가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배우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갖고 싶은 것은 꼭 가져야 하는 열망이 컸던 것일까? 아니면 그때부터 바늘과 만나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이끌려왔던 것일까?'


알 수는 없지만 십자수는 내게 다가왔고 그렇게 십자수 세계에 발을 들여놨다.


십자수는 도안(그림)에 그려진 도형에 따라

숫자를 찾고 그 숫자에 맞는 실을 찾아 바늘에 꿰어 X모양으로 꿰매어나가면 되는, 어찌 보면 단순한 노동 같지만 완성 후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높은 공예 중 하나다.

그렇게 완성된 십자수는 가게에 맡겨져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그때의 기분은 자식이 태어난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다.


그 아기 그림을 시작으로 주차번호판, 키링, 기도하는 손, 사진을 변환시킨 십자수, 시계 등을 만들어 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바늘과의 시간이 간절히 기다려졌고 실로 십자를 그려나가는 시간들은 즐거움의 도가니였다.

설레고 행복했다.

그 이유로 바늘을 놓을 수가 없었다.

눈이 따갑고 목이 아프고 어깨가 뭉쳐도 나의 즐거움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자취방에서의 십자수 작업은 고등학생 시절을 뿌듯함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친구들이 옷을 사 입고 화장품에 관심을 둘 때 나는 십자수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냥 바늘만 봐도 가슴이 떨리고 설레었으니까.


십자수 바늘 끝은 일반 바늘처럼 뾰족하지 않다. 안전모를 쓴 것처럼 뭉툭하고 둥글둥글하다. 바늘만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 마음은 변함없이 계속 이어져왔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의 사랑이 바늘에서 남자 친구로 옮겨가긴 했지만 그냥 끝내기 아쉬워 마지막으로 큰 것 하나만 하고 접자는 마음으로 달마도와 반야심경을 수놓았다.

나는 기독교인이었지만 남자 친구의 어머니(지금의 시어머니)께 선물로 드리고 싶어 달마도를 그려나갔다.

그렇게 완성하고 난 뒤 십자수를 떠나보냈다.


지금은 십자수를 전혀 하지 않지만 나의 젊은 시절, 나에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설렘을 안겨준 십자수, 자취로 공허했을 나의 시간을 가득 채워준 십자수가 있어서 행복했다.

지금은 다른 바늘과 함께이지만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때론 그립기도 하다.


경험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어떤 일도 시간낭비는 아니다

-오귀스트 르네 로뎅



되돌아보니 십자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결코 시간낭비는 아니었다.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하지 않나!

X를 수놓던 수많은 시간들이 자양분이 되어 지금의 내가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그래서 고맙고 또 고맙다.


오늘따라 벽에 걸린 달마도를 바라보니 뭉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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