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있잖아.. 그거 알아? 해봤어?

어, 나도 알아! 나도 그거 해봤는데!

by 강승훈

선우, 오랜만에 만난 지혜가 반가운 듯 살갑게 인사한다.


선우: 안녕하세요! 그간 뵙기 힘들었네요. 어디 멀리 다녀오셨나요?
지혜: 아, 선우 씨! 안녕하세요. 네, 잠깐 유럽으로 나가 이것저것 보고 듣고 경험을 했습니다.


선우: 그렇군요. 사실 저는 해외여행이 그렇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자본주의 사회, 물질이 만능이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모든 도시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잃은 지 오래라고 생각해요. 런던과 서울의 차이가 그렇게 많을까요? 일본과 독일이 그렇게 다른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많은 사람들, 높은 건물, 복잡한 도로…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요? 통찰력이 있으신 지혜 씨는 낯선 곳에서 무엇을 얻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지혜: 글쎄요, 솔직히 맞는 말씀이에요. ‘지구촌’이라는 말이 등장한 지 참 오래됐죠. 사실 외관은 다 거기서 거기예요. 시스템도 어느 정도 비슷해졌고요. 물론 유럽이 행정 시스템이 매우 낙후됐다는 느낌, 공공기관 소속 단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불친절하고 느리다는 느낌, 사람들이 좀 더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 사람에 대한 경계가 훨씬 덜하고 열려 있다는 느낌 등… 한국과 다른 점은 있지만,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는 동의해요.
그런데 저는 경험 삼아 가봤어요. 사람들이 유럽에 많이 가니까요. 해외여행을 많이 하니까요. 저는 사람들이 해보는 것을, 대중에게 관심을 많이 받는 것을 일단 나도 해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선우: 저는 동의하기 힘드네요. 굳이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그것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낭비라고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를 잘 생각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편이 나의 이익에 더 부합하고, 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식이 아닐까요?


지혜: 그렇죠. 선우 씨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목적을 ‘나의 행복’에만 두면 그렇겠지만, 저는 그 초점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선우 씨나 나나 억만장자 부자가 아니라서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도 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끊임없이 다양한 사람을 임의적으로 만나고 소통하고 협력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해요. 경험은 곧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 실마리, 그리고 상대방과 이어질 수 있는 매개체가 돼요. ‘어, 나도 그거 해봤는데!’라며 일단 함께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잖아요. 선우 씨는 선우 씨가 좋아하는 것에만 특화돼 있는 터라, 부장님과 같이 차를 탈 때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편하다고 저에게 털어놨던 것 기억하세요?


선우: 맞아요. 솔직히 좀 힘들었어요. 부장님은 여행이랑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데, 전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철학이나 국제관계, 역사 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내심 좀 불편해하시는 것 같고… 부장님이 여행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는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가끔 음악 이야기를 꺼내봤는데… 어쩔 때는 대꾸도 안 해주셔서 되게 머쓱했었습니다.


지혜: 선우 씨의 잘못은 아니지만, 다소 편협한 경험을 고수한다는 것은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요. 저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을 해봅니다. 그것이 제 취향에 맞을 것이라고, 그래서 나에게도 즐거울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요. 솔직히 저도 집에서 편한 차림으로 라면에 새우볶음밥 먹는 게 제일 좋아요.

선우: 역시 지혜 씨, 뭘 좀 아시네요!

지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돈을 들여 비행기 티켓과 유럽 현지 숙소를 구했고, 여행 루트를 짜고 유명 관광 장소를 물색하고 시간을 들여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재미도 있었지만 짜증스럽거나 불편했던 순간도 많았어요. 하지만 이로 인해 사람들이 이것을 왜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어요. 설명해 드릴까요?
생각해 보세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사람들 속에서… 뭐랄까, 우물 안에 있던 개구리가 우물 밖을 한 번 쓱 볼 때의 느낌? 신선함? 저는 굳이 우물 안의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물 안이 편하고 안전하고 만족스러우면 굳이 나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가끔 우물 안이 식상하다 싶을 때 밖에 마실 나가 신선함을 맛보고, 피로함과 불편함에 찌들었다가 우물 안으로 다시 들어오면 ‘아, 이 우물이 좋은 곳이었구나’를 되새겨 볼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선우: 아, 그런 느낌을 좇아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가는 걸까요? 지금 자신의 우물이 좀 힘드니까?

지혜: 일반화하기는 힘들죠. 사람마다 이유가 다 다르겠지만, 저는 일단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중요한 부분은, 저는 해외여행을 진하게 한 번 다녀왔고, 그 결과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고, ‘해외여행’이라는 주제, 그중에서도 유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죠.
경험이란 그런 것이죠. 다양하게 이것저것 해봄으로써, 그것을 선호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요.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될 때, 그 사람이 가지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지겠죠?


선우: 사람들을 이해해주는 이가 영향력을 가진다고요?


지혜: 당연하죠. 영향력을 어떻게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선우: 글쎄요. 어떤 이가 권력, 그러니까 강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 그 사람에게 짙은 영향력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혜: 맞아요! 하지만 저는 그것을 ‘강성 권력’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그리고 그와 대척점에 있는 ‘연성 권력’을 말하고 싶어요. 누군가를 이해해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이에게 마음이 가기 마련이니까요. 마음을 얻으면 협력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물론 마음을 조금 받았다고 해서 무례하거나 선을 넘는 행동을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죠. 강성 권력과의 차이는 그 부분이에요. 강제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준 이상 그는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우려고 합니다. 사람은 ‘도움 주는 자기 모습’을 사랑하거든요. 다만 반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죠.
연성 권력은 타인의 자발적인 도움을 이끌어내는 데 아주 특화되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연성 권력이 바로 예쁘고 잘생긴 외모죠.
두서없이 말했지만, 이해되시죠?


선우: 물론이죠! 그렇군요. 경험이 곧 사람을 이해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곧 영향력이다. 왜냐하면 타인의 도움과 협력을 자발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것만 파고들지 말고, 편협한 제 세계에서 조금 빠져나와 이것저것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것도 해보아야겠습니다.


지혜: 좋은 생각이에요. 남편의 로봇 피규어 수집 취미를 이해 못 하는 아내, 아내의 네일아트 취미를 이해 못 하는 남편… 다들 참 힘들어 보이지 않나요? 내가 타인의 만족, 그 소소한 행복을 공감하지 못하고 심지어 이를 비하한다는 것. 좀 안타깝죠.


선우: 맞아요. 제 지인도 아내가 갑자기 자신의 포켓몬스터 카드 수집품을 다 버렸다고… 이혼을 고려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게 가격도 꽤 나가는데, 아내는 ‘고작 그런 걸 버렸다고 성내는 남편’을 이해 못 하고 더 심한 역정을 냈고요.


지혜: 서로가 서로의 경험, 선호, 성향 등을 이해하고 이해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범위가 아니라면요. 내가 내 경험과 판단에만 비춰봐 유치하다거나 가치 없다고 단정해 부정하려 들면 반감이 피어오르고, 불화가 타오르겠죠.


선우: 그런 법입니다…


지혜: 선우 씨와의 대화는 언제나 만족스럽네요! 제가 사고하는 바의 핵심을 잘 짚어보려고 노력해주시는 그 모습이 정말 좋아요. 지금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하는데, 나중에 또 뵈어요.


선우: 네, 저도 지혜 씨와 담소 나누는 것이 즐겁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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