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 따지지 마, 해 보지 않았으면 말하지도 마
“부장님, 저 퇴사… 퇴사를… 퇴사하겠습니다.”
“왜. 일단 이유나 들어보자.”
“제 태도, 방식 등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일단 일이 제일 중요한데… 저는 회사에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욕먹는 값으로만 월급을 훔치듯 받아오고 있었는데, 이제 그만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습니다. 다른 길도 찾아보려고요. 찾아보지 않으면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다른 일 찾을 때까지만 다녀. 다른 일 찾으면 일정 공유하고, 그때 그만둬라. 그때까지만 다녀 봐.”
오늘 상사에게 퇴사를 하겠다고 말을 했다. 출근길과 퇴근길을 같이하는 그 상사는 얼마나 나에게 나의 나약함과 미숙함을 아프리만치 짚어주던지. 그 모습이 나를, 어떻게든 부족한 나를 끌고 가려는 모습으로 비쳐 안쓰럽게 보였고,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모습에 딱 맞게 사람을 제단하려고 하는지, 숨 막혀 보인다는 느낌도 받았다.
‘당신도 참 힘들게 사는 사람이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인데, 많은 것을 당신 생각대로 다 통제하려는 당신, 당신도 참 힘들게 사는 사람이구나.
아, 내가 당신의 이상향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면 당신도 좋고 나도 좋고… 서로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다 부족한 내 탓이겠지.
미웠을 때도, 고마웠을 때도 많았던 사람이다. 막상 퇴사하겠다는 말을 뱉으려고 했을 때는 연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 때처럼, 먹던 젤리 조각이 잘 안 넘어가고 목구멍에 걸린 듯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입으로 힘차게 내뱉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또 도망치는 길을 선택한 것 같아서 마음이 후련하면서도, 무엇에 홀린 듯 얼이 빠져버렸다.
대리님에게 먼저 퇴사를 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그도 참 많은 말을 했지만 제일 내 가슴에 남았던 말은 이것이다.
“음, 퇴사를 하겠다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는 말, 다른 길을 찾아보지 않으면 찾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후회할 것이라는 말… 사실 부럽다. 그래, 넌 아직 어리긴 하지. 아직 꿈을 꾼다는 것이 부럽다.”
퇴사하겠다는 말에 ‘꿈’이라는 단어를 들을 줄은 몰랐다. 아직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꿈이라… 그 단어를 듣노라니, 마치 어린 시절 정말 마음을 많이 줬던 친구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난 느낌이다.
나는 여전히 나로서 살아보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지만, 이기적이게도 아직 나는 나를 지우지 못했다. 가장이자 아버지이면, 그러더라. 자신은 없어지는 것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은 스스로 죽여야 한다고. 그런데 아직도 내 자아는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 나아가 성장하려 한다. 자신을 실현시키려고 한다, 원하는 꿈을 간직하면서.
퇴사를 하고 현실이라는 지옥에서 고통받든,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요구받는 일을 헤쳐 나가지 못해 압박을 받으며 몸도 마음도 찌부러져 피곤에 찌들고 주눅이 들든, 사실 다를 것은 없다. 전쟁터가 그래도 지옥보다는 낫다고? 둘 다 어차피 인내의 임계점을 한참 돌파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은 매한가지다. 치사량 초과라는 것은 똑같다.
근속과 퇴사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별을 선언하는 그 극적인 상황에서 대리가 던진 한마디가 한동안 마음에 맴돌았다.
‘꿈…?’ 어쩌다 그렇게 멀어져 버렸을까. 이제 와서 꿈이라는 것을 품는다는 것은 어쩌다 그렇게 이기적이고 사치스러운 행동이 되어버렸을까. 아마 기회가 있을 때 내가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날, 당당하게 꿈을 꿀 수 있던 시절의 나는, 한심하게도 그 소중한 꿈이라는 것을 어떻게 대했던가. 진짜 내가 꿈이라고 설정한 것이 있으면서도 게임이나 넷*릭스 등의 충동이 일면 거부하지 못해 후회와 자책이라는 독을 스스로 들이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답을 도출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쾌감이 ‘즉각적’이라는 기대 하나 때문이었다.
딱 결과만 놓고 보자. 20대 때, 공무원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즐겼던 블리자드 사의 ‘돌게임’. 그 돌게임 세계 랭킹 1등과 시험 합격,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무엇을 원하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고민할 가치도 없는 당연한 것인데, 실제로는 전자를 좇았던 순간이 없지 않았다. 그 돌게임에서 좋은 결과를 도출해보겠다고 아등바등했던 순간이 많았다. 왜 그랬을까? 결과값이 비교도 안 될 만큼 내 행복에 기여하는 차이가 큰 두 선택지 사이에서, 왜 나는 내 진심이 담긴 결과를 주는 방향으로 전력질주하지 않았을까. 전자는 지금 당장 느낄 수 있는 만족과 쾌감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후자는 정말 먼 미래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마시멜로 이론. 달콤한 마시멜로를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것이지, 인내라는 쓴 약을 삼키기보다는. 당장을 최우선으로 놓고, 쉽고 재미있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대가는 내 미래, 도달하기 어렵지만 진심이 담긴 환희의 무엇인가였고.
그리고 다시 지금. 꿈이라는 것을 품는 것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그것 자체가 반갑고 아련하다. 아스라이 보이는 어떤 황홀경 같은 무엇인가가 되어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항상 곁에 두었던 옛날과는 달리.
왜 그때 나는 좀 더 열심히 하지 못했을까.
흔히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쉽게 하곤 한다. 하지만 그 말의 무게, 참뜻을 알면 사실 내뱉기 어려운 말이다. ‘열심히 하겠다’, ‘분발하겠다’는 다짐은 내 앞에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고통과 시련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그 고통을 감내하고 끌어안겠다는 약속이다. 결국 이를 극복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더 강해지겠다는 결의다. 강하다는 것은 결국 인내했다는 의미니까.
열심히 한다는 다짐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 뭐가 있을까. 그 결심을 실현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참 까다로운 장애물은 바로 두려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걱정이다. 그 부담감이 곧 스트레스로 작용하니, 뇌는 자연스레 ‘나중에 하자’며 착수하는 것을 미루게 만든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을 질리게 만든 꼴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 나는 참 현명하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이 미루기로 굳어진 뇌의 본능을 의식과 의지로 넘어서는 것, 사실 그 어려움이 반 이상이다.
일단 시작하자. 하는 데까지 해보자. 안 되면 되는 데까지 해보자. 모르잖아, 혹시? 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멋지게 ‘꿈’이랍시고 액세서리처럼 잘 보이는 곳에 예쁘게 모셔놓고 먼지만 쌓아두지 말고, 주변의 잡음에 쉽게 변심하지 말고! 사용하자. 실현하자. 그렇게 결심한 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가는 대로 결심하게 된다. 오늘 퇴사라는 통지를 어렵사리 내뱉었던 나의 하루처럼.하는 데까지 해보자. 안 되면 되는 데까지 해보자. 나중에 미련보다는 후련함이 남도록, 후회보다는 화끈한 순간으로 남기도록 잡념은 마음속 깊은 강물 밑으로 가라앉히고, 깊은 강처럼 고요하면서도 무겁게 꾸준히 흘러가보자. 그 끝까지. 그 고요함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다듬어보자. 가장 간결한 동작으로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방황 없이 빠르게, 확신으로 정확하게 도달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그냥 일단 시작하는 것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정답은 하나, 일단 시작하는 것. 작가가 되고 싶으면 일단 몇 문장이든 글을 쓰는 것. 만화가가 꿈이면 일단 그림을 그리는 것. 멋진 몸을 만들고 싶다면 일단 운동화를 여미고 밖으로 나가는 것.
일단 시작하는 것. 결코 장황하지 않고 단순하며, 허세롭지 않고 명료하다.
-끝-
귀하의 귀한 시간과 관심으로 긴 글 읽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사랑스런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D
강승훈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