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란, 자고로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 유형임을 확신한다
“우린 모두 무엇인가의 노예였어… 나도 마찬가지였지.”
“인간은 뭐에 취해 있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꿈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술이라든가… 신이라든가 말야…”
— 진격의 거인 시즌 3, 에피소드 10(총 47화) 「벽 안의 야수」 (Friends)
화자: 케니 애커만
청자: 리바이 애커만
우린 모두 무엇인가의 노예다. 누군가는 이성(서로 다른 성, 남과 여)에, 누군가는 물질에, 누군가는 명예에, 누군가는 꿈에 취해 있다. 힘든 이 세상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유의지가 주어진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인간은 자유의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맨정신을 반기지 않는다. 무엇인가에 잔뜩 몰입되어 반쯤 미쳐버린 상태를 더 선호한다. 이 세상도 모두에게 미칠 것을 권유한다. “미쳐야 미친다(도달한다)”, “무엇인가에 미쳐보라” 등의 격려랍시고 떠도는 문구는 흔히 볼 수 있다. 좀 제정신으로 살면 안 되나. 그러면 오히려 도태되는 세상이 된 것이 아닐까.
이성적이라는 것을 ‘전체를 고려하여 그중에서 가장 합리적이거나 이치에 맞는 것을 이해하고 선택하는 힘’이라고 정의해보자. 이성이 인간을 강하게 만들고 자유롭게 만들었을지언정,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추, 반성, 사색은 인간을 진실에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이는 인간에게 진리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더불어, 이성의 힘으로 세상의 모든 면을 마주하기 시작한 인간은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싣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혐오, 회의, 증오, 공포 등의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미쳐버린다면, 다시 말해 이성을 멀리하고 한 조각(일부)에만 몰입해버린다면 다른 것은 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를 발현하는 맨정신, 즉 이성적인 상태를 멀리하는 것이 낫겠다.
진실이 언제나 좋고 바른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거짓은 마치 해가 저무는 때의 노을과도 같아서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고 황홀한 색채로 따뜻하게 덮어준다. 반면 진실은 너무 찬란한 빛과 같아서,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셔 멀어버릴 지경에 이르니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성이 이러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가? 물론 특정 용기의 현신이라 할 수 있는 위인들은 진실의 찬란함 그 자체에 이끌려 무수한 고통을 기쁨으로 감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문 사례일 뿐, 범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과거, 어떤 집단 사람들 대부분이 지구가 둥글다고 말하는 한 사람을, 함께 살해하기도 했다. 진실은 반갑지 않은 법이다. 아름답고 따뜻한 거짓이 좋다.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빛보다는 그 무엇도 기꺼이 감싸 안아주는 어둠이 좋다.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불편함보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도록 자신을 적당히 가려놓고 싶다.
그대가 정말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든 진실을 마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본능적으로 그대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무엇인가, 자신의 경험이나 천성에 부합하는 어떤 면을 재료로 삼아 스스로 제련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라. 그대는 진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드러났을지라도, 일부만 드러나고 일부는 어둠에 가려진 것을 어찌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엇에 미쳐 있기를 좋아한다. 온전한 맨정신으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모든 면을 보려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완전한 진실을 보려면 높은 곳까지 비상하여 넓은 곳을 훤히 보는 위치까지 가야 한다. 도달하기도 어렵고, 도달하면 무서운 그곳까지 진실을 찾아 기꺼이 가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거만한 이가 많다. 오만하지 않은 인간을 마주하기 쉽지 않다. 한눈에 보면 척 안다고? “너 같은 부류 한두 번 본 줄 아느냐”고? 고작 20년, 30년의 세월을 맹신하지 마라. 세상의 무한한 넓음에 비하면 먼지 같은 자신을 보며 스스로가 얼마나 작고 비루한 존재인지 알아볼 수 있다. 알아볼 수는 있지만,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찬란한 진실을 좇고 싶어하지 않는다. 편협하지만 노을처럼 아름다운 거짓에 취한 채 그것을 찬란하다 여기며 진실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싶어한다. 그게 쉽고, 편하고, 즐겁기 때문이다. 자신은 진실을 본다고 착각하는 가련한 모습, 어딘가에 미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요즘 소위 말하는 ‘꼰대’는 사실 특정 부류의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대개 꼰대가 되도록 설계되어 있는 존재다. 그렇다면 그들을 미워할 필요도, 스스로가 꼰대라는 사실에 자책할 필요도 있을까. 그냥 그렇게 되도록 설계되었으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굳이 맨정신을 유지하며 자유의지를 발휘해 이성을 이용하고, 불편하지만 찬란한 진실을 추구한 나머지, 저 높고도 두려운 곳으로 비상하여 넓게 펼쳐진 이 세상을 훤히 보는 자, 그렇게 진실을 보는 자는 드물기 마련이다. 지금의 나도 거짓된 노을을 감상하며 찬란한 진실에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겠지, 본능적으로. 진실은 무엇일까, 그대는 궁금하지 않은가? 아니면 그대는 혹시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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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시간과 관심으로 긴 글 읽어주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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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훈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