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하나가 가지는 상반된 두 면의 의미
“모든 것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 공허함과 충만함, 빛과 어둠.
한 면을 떼어놓고 보면 불완전하지만, 두 면이 같이 놓이면 하나의 존재를 완성한다.
이렇듯 모든 것이 하나임을 받아들여야지만 비로소 진정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 디아블로 3: 영혼을 거두는 자, 지혜와 죽음의 대천사 말티엘
고통이 만족을 알게 하리라. 실로 그러하다. 만족이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족은 결단코 독단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끝이 보이지 않는 결핍, 절망적인 고통 속에서 무엇인가를 갈망한 결과로 성취한 어떤 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추위에 떨어 보지 못한 사람에게 따뜻함은 단순한 추위의 부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으로부터 포근함과 안정감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만족이란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고통을 통과한 뒤에 얻는 ‘자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즉, 만족은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의 대비와 인식에서 태어나는 감정이다. 고통과 만족, 그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완전한 하나의 개체의 다른 두 면이다.
절망이 희망을 빛나게 하리라. 실로 그러하다.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희망은 절망의 반대가 아니라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희망이란 이미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을 때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지고 깜깜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는 ‘가능성의 불씨’다. 밝은 대낮엔 별빛이 보이지 않듯, 안락한 현실 속에서는 진짜 희망이 빛을 발할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어두운 밤하늘일 때, 가장 작은 별빛조차 찬란히 빛난다. 절망은 희망을 낳고 빛나게 해주는 희망의 어머니다. 진정한 희망은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 절망이라는 어둠의 캔버스 위에 자신이 그간 치러 왔던 고난의 대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이를 바탕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까지 아무것이라도 다 해보겠다는 의지의 빛을 한 조각 조각씩 붙여 완성하는 모자이크 아트가 바로 희망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아픔은 소중하다. 살갑게 인사해 오는 그 모든 불운과 지독했던 고통들이 다 그대의 소중한 재산이다. 그 보물들을 소중히 간직하라. 잊으려고 하지 말고 도망치려고 하지 마라. 고이 간직해 두고 틈틈이 꺼내 보며 닦아 두고 윤을 내어 두어라. 그대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너무 아니꼽게 문전박대하려 들지 마라. 그런다고 되돌아가지도 않는다. 피할 수 없는 축복의 사자라 생각하고 그의 인사에 화답해 주라. 잘 찾아오셨노라고.
추하고 더러운 것을 양분으로 삼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존재할 수 없다. 냄새 나고 더러운 화장실이라는 역겨운 대상이 있고, 그것을 청소한다는 수고가 따른 뒤에야 깨끗해 보이는 화장실이라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외적이 침략하여 수없이 내 혈육과 동포들을 살육하는 역겨운 상황이 있고, 그들을 목숨 걸고 무찌른다는 수고가 따른 뒤에야 난세의 영웅이라는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깨끗하다는 것, 칭송받는 영웅이 있다는 것은 모두 그전의 상황이 얼마나 그와 대비되었는지를 말해준다.
다소 두서 없겠으나 충동과 낭만, 그리고 지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언뜻 보기에 충동과 낭만이 닮아 있고, 지조는 그것들과 대비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충동과 낭만이 대척점에 있고, 낭만과 지조가 공존 관계에 있다. 완전한 하나의 개체가 가지는 살이 낭만이고 그것을 지탱하는 뼈대가 지조다. 지조 없는 낭만은 형체 없는 연기처럼 흩어져야 할 뜬구름이다.
인생은 충동보다는 낭만이다. 충동이란 순간의 욕망, 타고난 본능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충족을 좇아가는 삶이다. 그 어떤 신념도 깃들어 있지 않은, 그저 맹목적인 추격이다. 보통 그것의 충족은 어떠한 성취보다는 결핍의 부재로 귀결된다. 그러한 이유로, 그 충동의 대상을 향해 맹목적이고 맹렬했던 돌진은 대개 공허와 충돌한다. 마음속에 가득했던 어떤 결핍의 채찍질로 인해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앞만 보고 전력을 다해 뛰었건만, 도달해 보니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안에는 오직 결핍하다는 불만만 가득했었고, 나를 채찍질하던 그 결핍마저 사라지니 내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결핍 그 자체가 나의 전부였다는 사실은 사람을 바닥이 없는 공허로 떨어뜨린다.
낭만이란 지조의 감성, 나만의 신념을 관철하는 삶이다. 해당 신념을 가지게 된 계기는 저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신념을 관철하고 마침내 마주하는 충족은 대개 어떤 성취로 귀결된다. 주로 사랑이 그러하다 - 사랑이 지조이자 신념의 관철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현실에 굴하지 않고 객관적인 이성보다는 자신만의 감성을 내세우며, 삶을 자신만의 색깔로 개성 있게 채색하여 이를 의미 있게 해석해 보는 것이다.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소비하기보다는 그 안에 자신만의 꿈과 감정, 그 이야기를 입혀 본다. 이러한 자신만의 해석은 대개 특정 순간을 스스로의 감성으로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어떤 칙칙한 현실도 풍성하고 충만해지는 것이다.
낭만과 지조, 자신만의 신념이라는 색깔을 칠하는 마음과 그것을 끝까지 굳건히 세워 두는 받침대. 지조와 낭만, 그 받침대를 굳건히 세워 두게 하는 동력은 낭만을 동경하는 마음이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또 어떤 고난이 내일 나를 기다릴지 알 수 없고 두렵다. 그 말은 또 어떤 성장과 환희, 나를 충만하게 채워 줄 만족이 나를 맞이해 줄 것이라는 의미다.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꿔 보자. 그렇게 용기를 내어 본다.
그대의 내일에 축복이 깃들기를, 나의 내일에 따뜻함이 함께하기를 바래 본다.
-끝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 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사랑스런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D
강승훈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