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고서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는가? 불광불급(不狂不及), "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학교에 미국교육실습에 미친 교수가 있다." 우리 대학교의 총장 한분은, 전국교육대학교 총장회의에 참석하여 이런 말을 했다. 내가 5년 정도 미쳐 있었다. 여러 대학교를 방문하여 이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교생들은 미국의 낯선 지역을 방문하여 안전하게 생활하였고, 현지학생에게 영어로 수업을 할 수 있게 가르쳤다. 미국의 교사와 홈스테이 주인들을 설득하여 한국교생들에게 최상의 경험을 제공했다. 그러니 남기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서울대학교 학생과 교수들도도 미국교육실습에 만족하였다.
서울대는 우리나라에서 교사를 양성한 역사가 오래되었다. 미국으로 교육실습생을 보내면서 서울대학교 학생을 참여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사범대 학장을 만나서 프로그램을 설명하였을 때, 조건부로 동의하였다. 학생이 실습을 다녀와서 '실습록'을 제출하면 '위원회'에서 검토한 다음에 재정지원과 학점인정 여부를 결정하겠다.
이 조건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우선 교생들이 실습록에 활동내용을 정확하게 기입하도록 독려하였다. 그리고 교육실습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기 시작하였다. 영어수업 인증제도, 연수 참여, 연구 수행, 실습 회고 영상 제작 등. 이로 인하여 미국교육실습의 수준이 높아졌으며 교생들의 실습 만족도가 향상되었다.
다음 학기에 서울대를 방문하여 사범대 학장을 만났다. 그 분은 나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리고 자기 학과에서 미국교육실습을 다녀온 학생들을 모두 면담하였는데 수업과 생활에서 도움이 되는 경험을 했다고 전해주었다. 학교의 절차에 따라 미국에 다녀온 학생들의 실습록을 전시하고 위원회 교수들은 실습록의 내용을 검토하고 체험발표를 듣고 교생들을 면담하였다. 학장은 위원회 교수들이 평가한 결과를 알려주었다. 말씀에 의하면, 위원회의 교수들이 학점을 쉽고, 기쁘고, 높게 주었다.
2. 국어 교육을 전공한 학생은 무엇을 가르쳤을까?
우리나라 사범대학에서 국어를 전공한 학생이 미국의 고등학교에 배치되어 실습을 하였다. 어떤 과목을 어떻게 가르칠지 궁금하였다. 면담하여 들어보니, 그 학생은 주로 영어의 ‘문학’ 영역을 가르쳤다고 하였다. 특히 아시아 문학을 다루었는데, 우리나라 문학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일본 문학과 중국 문학에 대하여는 기본 지식에 인터넷에서 자료를 추가로 찾아서 가르쳤다고 하였다. 한국의 대중가요, 드라마, 영화가 미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시점이라서 미국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의 흥미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하였다.
3. 영어 교육을 전공한 학생은 미국 고등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영어교육을 전공한 학생들은 미국의 학교에서 주로 어휘와 영문법을 가르쳤다. 그런데 한 남자 교생은 나름대로 영어 수업을 재미있게 참여하였다. 실습한 고등학교는 연극 프로그램이 유명하였다. 한국 교생은 연극 중에서 소품과 조명 등 설비 쪽을 다룰 줄 알아서 미국 고등학생들에게 이 부분을 자세하고 효과적으로 가르쳤다고 설명하였다. 본인은 고등학생들의 연극 공연에 크게 기여했다고 만족해하였다. 결과적으로 자기는 미국으로 실습 오기를 잘했다고 자랑하였다.
4. 하와이 진주만 관광에서 창피한 일을 겪었다
하와이에 실습 갔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교생들을 인솔하여 진주만을 관광하면서 애리조나호 기념관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세계 제2차 대전 중인,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은 하와이의 진주만에 주둔 중인 미국 해군을 공격했다. 당시에 애리조나 함이 침몰하면서 타고 있는 군인 1177명이 사망하고 그대로 수장되었다. 그 애리조나 함 위에 기념관을 설치하였으며, 추모객이 방문할 수 있다.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교생들에게 여러 번 당부를 하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현충원과 같은 성격의 장소이라 미국인들이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방문을 한다. 그러니 우리도 그런 자세로 참여하자. 가능하면 대화를 자제하고 말을 해야 할 경우에는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하자. 그런데 교생들은 하와이의 시원한 날씨, 푸른 바다, 쾌청한 하늘을 보면서 기분이 부풀었나 보다. 추모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생 서너 명이 저만큼 앞쪽에서 성큼성큼 걸으면서 큰소리로 대화하고 웃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부근에 있던 신사 한 분이 교생들에게 "조용히 해 주면 고맙겠다"라고 충고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에 ‘글로벌 에티켓’을 추가하였다.
5.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하드를 판다.
하와이는 여름에 무척 더웠다. 학교를 방문해서 보니 에어컨은 없고 교실의 양쪽 창문을 모두 열어두어 바람이 잘 통하게 하였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운동장에 나가서 놀기도 하고 나무그늘에 가서 쉬기도 하였다. 내가 학교를 방문하였을 때가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이 놀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아이스박스를 메고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선생님은 아이스박스에서 하드를 꺼냈다. 학생들은 선생님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속으로 ‘날씨가 더우니까 학생들에게 시원한 하드를 나누어 주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하드를 받더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교사에게 드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놀란 마음을 감추고 나중에 교사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학교 재정이 부족하여 이렇게라도 해서 보충한다고 하였다.
6. 교생의 영어 능력이 향상되어 모든 과목을 가르쳤다.
교생들이 미국학교에서 실습한 기간은 대체로 1개월이지만 2개월과 4개월도 가능하였다. 한 학기 동안 참여한 학생들은 정부로부터 추가적인 재정지원을 받았다. 나는 학기 중에 한 번 정도 이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하였다. 이 학생들은 1개월 정도 지나면 수업을 많이 한다고 하였다. 한 교생은 거의 모든 수업을 자기 혼자서 가르친다고 하였다. 담임 선생님이 보기에, 한국 교생이 영어 구사 능력이 현지인과 다름이 없고, 수업도 잘하므로 수업을 다 하라고 위임한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우리나라의 예비교사들이 지적으로 우수하고, 매우 헌신적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7. 처음에는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받았다.
미국으로 교육실습을 가는 학생은 영어로 미국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홍보하였다. 그랬는데 단국대 사범대 학장님이 지원하는 학생에게 홍보내용의 사실 여부를 계속 물어본다고 하였다. 지원자가 영어로 수업을 한다고 들었다고 응답을 할 때마다, ‘그렇게 할 수 없는데’라고 계속 중얼거렸다고 한다. 학장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의 나이가 30세 정도였으면 대개 영어 수업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1년 이상 걸린다. 수업 시간에 토의에 참여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 경험이 있는 분들은 한국학생이 미국 학생들을 영어로 가르친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것이다. 소속 대학생이 한 번 다녀와서 실습록을 제출한 이후에는 이러한 의구심이 완전히 해결되었다. 사실 나는 교생들이 미국 학생들에게 영어로 수업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시켰다.
*오늘로 미국교육실습은 마무리하고, 다음편부터는 대학교수로 임용되는 과정을 3편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