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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수 할배 Aug 03. 2024

마침내 교수로 임용되었다!

(16화) 재수했어도 좋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시간강사로 대학교 두 곳에서 가르치고 아르바이트하고 한편으로는 교수초빙에 지원하면서 힘든 1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1996년에 공주교육대학교에서 내 전공으로 교수를 다시 초빙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년에 1위로 오른 지원자가 공주교대와 동시에 서울에 소재한 대학교에도 지원했는데 그 대학교에도 합격하여 올라갔다는 거다. 


그런 경우에는 2위로 오른 지원자를 선발할 수도 있었을 터인 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좋은 기회라는 생각으로 한 번 더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 과정에서 지인을 통하여 공주교대 교수 한 분을 만났다. 그분으로부터 대학교 상황을 들었는데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위로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대비했다. 우선 영어시험을 준비하였다. 영어 시험의 문법 영역은 문제를 운이 좋게도 모두 맞혔으며, 번역 영역은 연습한 글씨체로 적절한 수준으로 해결했다. 처음 도전한 해에는 연구 실적이 부족했지만, 연구논문도 두 편 더 출판하였다. 이병진 교수님이 학술지에 게재하는데 도움을 주셨으며, 최수영 교수님은 자신이 연구재단으로부터 받은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작업에 나를 참여시키고 공동 연구자로 포함시켜 주셨다. 두 분 교수님께 한 번 더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1996년 9월 1일 자로 공주교육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처럼 많은 분들이 원서접수부터 연구실적 쌓기를 도와준 덕분에 드디어 국립공주 교육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공주교대는 당시에 영문약자로 KNUE를 사용하였다. Kongju Nat'l Univ. of Educaion의 약자. 내가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목표로 했던 대학이 KNUE였다. 


한 가지 일화가 생각난다. 당시에는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는데 금전 거래가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가끔 보도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학연도 없고 지연도 없는 데다 재력도 약한데, 공주교대에 어떻게 임용되었는지에 대하여 무척 의아해했다. 공주교육대학교 교육학과는 무척 공정하고 정의로운 학과였다. 임용될 당시에 교육학과 교수는 열세 명이었는데 출신대학은 11 개교일 정도로 다양한 배경도 독특하였다. 


교대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느꼈다. 


1. 심사숙고하고 기도한다. 

먼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정리하여 기도를 해 본다. 보통으로 사람에게는 생각하는 능력이 있어서 중요한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기도는 개인의 선호도에 따른다. 하나님, 부처님, 신에게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알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원할 수 있다. 대학교 교수채용 면접을 준비하면서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였고, 그 결과로 면접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였다.  


2. 목표를 세우고 달성할 수 있는 실천 계획을 기록해 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목표를 세웠다. 교수가 되어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10년 동안의 실천 계획을 세웠다. 이 목표를 해마다 수첩의 맨 앞에 붙여두고 자주 점검하였다.  


3. 취업에 필요한 역량을 기른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무척 서운하다. 그렇지만 능력을 키우면 다른 사람들도 인정해 준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대학원 재학 때부터 연구논문을 더 발표했어야 했다. 공주교대 교수로 임용되려고 영어시험에 대비하며 연구물을 추가로 출판하였다. 


4. 취업하고자 하는 기관에서 필요한 요소를 파악한다. 

경상대학교는 채용과정에서 결선에 나 혼자만 올라갔었다. 경상대학교 컴퓨터교육과에 임용되지 못한 것은 그 학과에서 필요한 요구에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컴퓨터교육과는 최근에 신설되었기에 채용된다면 학과를 책임지게 된다. 그래서 이 학과를 발전시킬 방안과 학생들의 취업이나 임용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면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5. 선배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받는다. 

우리 집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교수가 되었다. 주변에 교수가 되는 길에 대하여 어릴 적부터 안내해 준 친척이 계시지 않았다. 대학원에 입학하여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 길을 상세히 알게 되었다. 그분들에게 나의 목표와 상황을 말씀드렸을 때, 미국에서의 박사과정 및 생활에 대하여 알려주셨다. 공주교대 교수직에 지원할 때도 연구실적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셨다. 


* 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

** 다음편부터는 미국 유학 이야기를 올리겠다.  나는 34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유학과 미국교육실습을 경험하면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세계적으로 활약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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