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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수 할배 Aug 03. 2024

유학동안 재미있었던 일도 있었어요

(21화) 그중 몇 가지!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

뮤리엘 루키저


유학생활과 관련하여 에피소드를 몇 가지 남기고 싶다. 비가 오는 날도 있고 쾌청한 날이 있듯이 아쉬운 날도 있고 기쁜 날도 있었다.  


1. 학교의 재정지원으로 가족과 캘리포니아 여행을 다녀왔다.

파슨 박사(Dr. Fawson)의 '한국'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구하기 위하여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두 곳의 한국교육원에 출장을 갔다. 이때 대학교에서 교내 교수가 운영하는 프젝트를 지원하는 방식의 일단을 경험하게 되었다. 연구책임자인 파슨 박사는 나에게 항공료와 숙식비 등의 체류비를 모두 지원해 준다고 하였다. 여기서 나는 약간 다른 제안을 했었다. 


나 혼자 비행기로 가는 출장을 선택하지 않고, 학교가 소유한 차량을 이용하여 다녀오게 해 달라고 요청해 보았다. 유학생 신분이었던 미국 체류 기간 동안 나는 가족과 관광을 자주 다니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에 출장 가는 기회에 차량을 이용하면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을 거 같았다. 나의 제안을 검토한 후 파슨 박사는 항공편과 자동차편의 두 가지 방법에 비용차이가 거의 없음을 보고 승인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갈 수 있었다. 


BYU에는 렌터카 회사와 유사한 부서가 있었다. 그 부서에서 우리 가족 6명이 모두 탈 수 있도록 최신형 밴을 제공하였다. 이 밴은 현대 스타리아 크기로 뒤쪽에 문이 두 개 있어서 양쪽이 열렸다. 학교 측에서 자동차 기름을 주입할 수 있는 법인카드도 주었다.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 분은 유명 주유소 카드 4 종을 주면서, ‘캘리포니아는 이 주요소도 많으니 사용하세요’라고 하면서 76이라고 적힌 카드를 추가하였다. 우리 가족은 6명이었는데, 차량 한 대에 모두 탈 수 있었고, 혼자 출장 갈 때 체류하는 방의 크기면 모든 가족이 사용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출장을 통해서 우리 가족은 여러 곳을 다녀왔다. 출장지인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는 물론이고 두 도시 사이에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세콰이어 국립공원을 들렀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귀가하는 길에는 라스베이거스에도 들렀다.    


이 여행의 주목적은 한국 영상을 구하는 것이었다. 맨 먼저 샌프란시스코의 한국교육원에 들러서 원장님께 본 프로그램의 성격을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구하는데 협력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분은 품질이 좋은 한국 소개 영상을 충분하게 구해주셨다. 물론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비디오디스크에 원장님과 한국정부에 감사드리는 내용의 자막이 포함되었다.    


2. 첫 학기에는 숙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유학 초기의 일이다. 아내와 함께 클래스메이트 부부를 만났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학교 공부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 친구가 요즈음은 한 강의의 숙제를 하느라 바쁘다고 하면서 나에게 숙제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내가 되물었다. “숙제? 무슨 숙제?” 그 순간 친구가 무척 당황하였다. 그렇지만 빠르게 평정심을 찾고, 숙제의 내용과 마감일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주말에 열심히 숙제를 하였다. 아내는 가끔 이 일화를 꺼낸다. 숙제가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이상한데, 숙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아예 몰랐다고. 


사실 아내는 대학에서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영어 대화도 나보다 잘한다. 나는 학교에서 1등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아내와 대화 중에 공부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를 줄인다.  


3. 드디어 한국어 강좌를 맡았다. 

1990년대 초반 BYU는 미국에서 한국어 강좌가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1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7년 정도 가르친 경험이 있다. 당연히 한국어 강좌를 담당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담담 학과장님께 직간접적으로 부탁을 하였다. 그런데 처음 1~2년 동안은 맡지 못했다. 나중에 들으니 ‘부산 사투리가 강하여’ 가르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3년째 되는 해에 한국어 강좌를 하나 담당하였다. 학생은 10명 정도였는데, 드라마를 편집한 교재로 회화를 가르쳤다. BYU의 강의 시간은 2시간이었으나 수당은 7시간 정도로 책정했던 기억이 난다. 수업 준비 시간을 포함한다는 말을 들었다. 


4. 아들이 아이스케이크의 막대 맛을 보았다.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하드를 먹는다. 하드를 다 먹고 나면, 남는 막대기는 버린다. 그 막대기에는 단맛이 약간 남아 있어서 혀를 대면 남아있는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어느 더운 여름날 기혼자 아파트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 부근에서 한 아들이 하드 막대기를 주워서 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하고 눈이 마주친 아들은 그 막대기를 얼른 버렸다.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들의 손을 잡고 조용히 집으로 갔다. 마음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혼자 다짐했다. '가난을 물려주면 안 된다. 정말로!'   


5. BYU의 시험센터(Testing Center)에서 무감독 시험을 쳤다. 

나는 대학원생이지만 학부의 테니스 강의를 신청하여 수강하였다. 수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운동과목을 들었다. 테니스 강의는 이론과 실기로 이루어지는데, 강사는 실기만 가르쳤다. 이론은 시험으로 대신하였다. 시험은 학기마다 2번 정도 쳤다. 시험을 치는 장소(testing center)는 별도의 건물이었다. 강사가 지정한 주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중에 편한 날을 선택하여 치면 되었다. 


테니스 수업은 화요일과 목요일에 있었다. 나는 수요일에 시험을 쳤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시스템이었다. 모든 요일의 시험 문제가 동일하였다. 그리고 감독관도 없었다. 시험센터는 교실 5개쯤 붙여놓은 큰 교실에 책상이 붙어있는 의자로 가득 차있다. 응시자가 학생증을 제시하면 시험문제와 OCR 카드, 연필을 주었다. 비어있는 의자에 가서 시험지를 푼다. 마치고 OCR카드를 채점자에게 제출하면 잠시 후 점수를 알려주었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가 갑니까? 다음 목요일 수업에 가서 학생들에게 시험을 쳤는지 물어보았다. 대부분 쳤다고 했으며, 금요일에 칠거라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무감독 시험을 치르고 난 다음에 느끼는 뿌듯함은 정말 대단했다. 


아들 한 명도 BYU를 졸업하였다. 아들에게 그 센터에서 시험을 치른 경험을 물어보다. 그는 BYU의 윤리 수준에 대한 자부심이 컸으며,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도 제물포 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학교에서 무감독 시험을 치른다는 말을 들었다. 


혹시 교육자분들은 아래 사이트에 들어가면 BYU 시험센터에 대하여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https://testing.byu.edu/ 


교육대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시험 기간만 되면 교수들이 시험 감독을 하여 시험을 치러야 한다. 교수들은 시험 치는 학생들이 커닝을 한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어 징계를 당하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무감독 시험 제도를 도입하자고 건의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예상 밖으로 학생들이 반대하였다. 우리나라의 학교에서도 무감독 상황에서 시험을 치는 학생의 수가 증가하기를 기대한다. 특히 미래 세대를 가르칠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에서는. 


*유학이야기는 오늘로 마치고, 다음은 교원대학교 경험에 대하여 4회에 걸쳐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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