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운이 좋았죠!
인생에는 가끔 신비한 만남이 찾아와서 우리를 인정해 주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일깨워준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진 큰 가능성이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루스티 베르쿠스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1982년 당시에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아 3월 초부터 근무하는 졸업자의 명단이 지역 신문에 발표되었다. 내 이름도 지면에 나왔다. 첫 직장은 양동국민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교원대학교에 현직 교사들을 위하여 특별전형으로 석사과정이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원대학교 대학원 제1회에 응시했던 K선생님이 같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분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교육청 업무도 많이 협조하셨는데, 하루는 나에게 교원대학교 특별전형을 소개하셨다. 교원대의 석사학위 특별전형에 합격하면, 2년 동안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학생을 가르치지 않고도 월급을 받는 혜택이 주어졌으므로 많은 교사들의 버킷리스트였다.
교원대 석사과정 입학과정은, 그분에 따르면, 부산시 교육청에서 소속 교사 중 2배 수로 교원대에 입학을 추천한다. 그러면 교원대에서 입학시험의 결과를 참고하여 초등학교 교사와 중등학교 교사를 한 명씩 선발한다. 처음 두 해 동안 추천되었던 교사는 대체로 교육청의 교원인사 관련 정보를 쉽게 들을 수 있는 교사였다. K 선생님은 집안 사정으로 부산을 떠나기에 어려운 상황이었고, 함께 추천받은 교사는 상대적으로 젊어서 공부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도 추천되었으나 다른 교사에게 양보하였다고 했다.
나는 초임교사여서 교육청의 교원인사 관련 정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원대학교 특별전형에 응시하기 위하여 교육청의 추천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했다. 교원대 대학원에 기대를 거의 갖지 않았으며 부산대학교에 진학할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부산대 대학원의 입시과목인 영어시험에 대비하여 영자신문 사설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시험에 응시하기 전에 전공하려는 분야의 사범대학 교수님을 만났다.
그분에게 나의 교육관과 진학 의사를 말씀드렸다. 그분은 진지하게 들었는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나를 잘 찾아왔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들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이제 왔습니까?"라고 물으면서, "내년에 응시하면 좋겠네요”라고 마무리하셨다. '왜 이제 왔느냐'는 말을 뜯고 매우 놀랐지만 다음 해에 다시 오기로 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부산대 교수님을 만나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대학원은 교수님의 학문분야와 일치해야 한다. 둘째, 학부는 성적순으로 입학하지만, 대학원은 교수님을 만나는 순서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해(1987년)부터 부산시교육청의 특별전형 파견교사 정책이 바뀌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파견 인원은 2명으로 변경되지 않았지만 추천 방식이 달라졌다. 예년과 달리 2배수가 아니라 응시를 원하는 교사는 누구든지 추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 같이 기쁜 소식이었다. 방송대 스터디그룹 동료들에게 나는 교원대에 지망하겠노라고 발표했다. 우리끼리 교원대학교 입학 경쟁하면 불리할 수 있으므로,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고도 볼 수 있다.
정책이 바뀌어서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선생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지원하던 해에 부산시 초등교사 6명 정도만 입학추천을 받았다. 교원대 입학시험 결과 초등에서는 내가 선발되었다.
교원대 입학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또 하나의 계기는 1987년 12월 말에 생겼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평신도교회 형식으로 운영된다. 모든 성도가 직분을 맡고 있으며, 직분을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교육을 받기도 한다. 교회에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모임이나 회의에는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모임에 참석하면 여러 가지로 유익하다. 자신이 발표하면서 발전하고,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들으면서 그들의 경험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뜻밖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교원대 입학시험이 다음 해 1월 10일이었으므로 12월 한 달 동안 독서실을 계약하고 퇴근 후에는 거기서 공부하였다. 당시의 교회부름이 연산동 교회의 지부장이었다. 부산교구에서는 해마다 연말인 12월 말 경에 청소년들을 위하여 송년축제를 열었다. 지부장은 청소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모임에 참석하기를 권하였다. 그래서 대학원 입학을 위한 공부를 할 것인지 청소년 모임에 참석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송년모임은 계획상 2시간 반 정도 걸리지만, 모임 장소까지 가는 데 1시간 오는 데 1시간 가는 준비하는 데 1시간 등 모두 합하면 그날 저녁 시간은 다 지나간다. 물론, 모임에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명분이 약함을 느꼈다. 어차피 대학원 입시에서 내 실력만으로 합격하는 것은 어렵고 하늘의 도움도 필요하였다.
고민 끝에 청소년 송년축제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독서실에 가서 오전 동안 공부하다가 오후에 대회장소인 수정동 교회로 갔다. 참가해 보니 민혜기 스테이크(교구) 회장이 계셨다. 함께 뒤편에 앉아서 청소년들의 발표를 구경하였다. 민 회장님께 나의 근을 설명하면서 교원대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의사를 말씀드렸다. 그분은 교원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던 최수영 교수님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최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다. 인사를 한 후 상황을 말씀드리면서, 초등교육과의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서적을 알아봐 줄 수 있는지 여쭈었다. 최 교수님은 친절하게도 초등교육과의 교수님께 문의하여 책 두 권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책을 구입하기 위하여 부산에서 가장 큰 서점인 서면 영광도서에 갔다. 책을 골랐는데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G 형님께 전화하여 돈을 빌렸다. 두 권의 책을 10일 동안에 모두 외우다시피 하여 시험을 쳤다. 시험 문항에는 그 두 권의 내용을 기반으로 답을 하였다. 시험을 다 치르고 나서 최 교수님께 인사드리러 갔다. 그분은 나를 데리고 초등교육과 교수님 연구실 방문하여 직접 소개해 주기도 하였다.
요약하면, 나의 교원대학교 석사과정 특별전형 합격은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K 선생님의 정보, 교회모임에 참석함으로써 들었던 최수영 교수님, 그리고 그분이 구해준 도서 이름.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
There comes that mysterious meeting in life
when someone acknowledges who we are and what we can be,
igniting the circuits of our highest potential.
Rusty Ber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