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독후감

by 교수 할배

방학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숙제다. 아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이야기다.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우리 아이도 부모 몰래 오락실을 자주 드나들었다. 방학의 끝이 보이는데 아이는 여전히 게임에만 열중인 듯하다. 숙제에 대하여 물으면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염려가 되었지만 확인해 보고 싶었다.

“방학 숙제는 다 했니?”

“예.”


빠르고 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나 빠른 대답에 오히려 궁금증이 더 커졌다. 너무나 빠른 대답에 오히려 궁금증이 더 커졌다. 방학 시작하는 날 가지고 온 안내문에는 방학을 안전하고 슬기롭게 지내라는 당부 글과 함께 숙제도 적혀 있었다. 숙제 중에 독후감이 포함되었던 거 같은데 방학 중에 아이가 책을 읽는 걸 본 기억이 없었다. 한 번 더 물었다.

“독후감은 다 썼니?”

“예!”

아까보다 힘찬 목소리였다. 내가 예민한 편은 아닌데, 아들 대답에는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한 발짝 더 들어갔다.

“쓴 거 좀 볼까?”

“컴퓨터에 있어.”

원고지가 아닌 컴퓨터에 있다는 말에 놀라워하는 아빠가 이상한지 아들은 보여주겠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아들을 따라 컴퓨터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이는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켜고 독후감을 찾아서 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숙제를 보여주면서 설명하였다.

“이것 봐. 책 제목, 반 번호, 내 이름, 그리고 내용, 되었지?”


아들은 빨리 인정하라고 재촉하듯이 물었다. 독후감의 앞부분을 살펴보니, 아이가 말한 대로 도서명과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세 편의 독후감마다 두 페이지씩으로 분량도 적당했다. 아빠로서 아들의 공부에 관심을 보이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화면의 맨 앞에 떠 있는 글을 자세히 읽어 내려갔다. 책을 알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주요 내용을 순서대로 요약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느낀 점을 밝혔다. 서론 본론 결론을 구분하였고 내용을 파악하기 쉽게 쓴 글이었다. 감동하여 아들을 칭찬하였다.


"독후감을 잘 썼구나!"

“아빠, 어떻게 했는지 말해줄까?”

아빠의 반응이 궁금했던 아들은 칭찬을 듣고서 얼굴을 활짝 펴며 물었다.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의기양양하게 늘어놓았다.

"독후감은 인터넷에서 많이 찾을 수 있어. 책 제목이랑 독후감을 치면 엄청 많이 나와. 그중에서 잘 써진 걸 골라 내 이름으로 바꾸면 간단해. 학교 가는 날 프린트만 하면 돼. 잘했지?”


아들은 칭찬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할 말을 잃고 물끄러미 아들을 쳐다보았다. 얼음처럼 굳어진 머리 위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기 시작했다. 이 애가 우리 아들인가. 우리가 뭘 잘못 가르쳤나.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자주 강조했는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고 의기양양해하는 아들 앞에서 할 말을 잊었다.


아이의 행동에 대하여 실망할 때면 이성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라도 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었다.

실망으로 끓어오르는 화를 마음속에 가두어 놓으려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독후감을 컴퓨터에서 찾은 건 대견한 일이다. 그런데 너의 형 이야기를 해 보자. 너도 형이 쓴 글을 읽어보았지? 형이 소설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잖아. 그러면 독자들이 돈을 내고 읽지? 만약에 어떤 사람이 형의 글을 가져다가 자기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팔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겠니?”

아이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잡혀간다고 답했다.


독후감 숙제는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된다. 개학일은 이틀 남았다. 아들이 세 권의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심각하게 말해서 그런지 아들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부자간의 대화를 아래층에서 듣고 있던 아내는 아들에게 궂은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직감했는지 2층으로 올라왔다. 아내는 아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을 측은하게 여겼다. 상황을 설명해 주었지만 그런 일로 아들 기분을 상하게 말했다며 불평하였다. 좋게 시작한 일인데 툴툴거리는 말로 들리니 나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불편한 분위기를 마냥 끌고 갈 수는 없어서, 세 사람이 머리를 모았다. 우선은 시간이 없으니 컴퓨터에 있는 독후감을 숙제로 제출하고, 나중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서 읽기로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숙제든 자신의 힘으로 완성하자고 결론을 지었다. 다행히 아들이 순순히 동의하여 독후감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도서관 카드는 가족 중에 나만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들이 읽을 책을 발려다 주어야 했다. 본의 아니게 도서관을 가야 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개울가라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만 가슴은 마치 떡덩이를 삼킨 듯 답답하였다. 컴퓨터 화면에서 보았던 바꿔치기한 아들 이름이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녀를 위하여 봉사점수를 가짜로 만들어 주었다는 부모들 모습에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20여 년 전으로, 아이는 무심결에 표절 문제를 겪었다. 지금은 AI 시대다. AI는 거대한 장점과 더불어 심각한 단점도 드러났다. 교사들이 AI에 대하여 염려하는 부분에는 학생들이 숙제를 AI로 처리하는 행동을 포함한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들이 자녀들에게 독후감 숙제를 어떤 방법으로 완수하게 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