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내외는 미국에서 맞벌이한다. 코로나 때 시작한 재택근무가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에 둘째가 태어나자 아들은 우리 부부에게 제 식구의 산후 몸조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도 손자 얼굴을 보기 위하여 미국 여행을 계획 중이었는데 한 달 앞당겨 출국하였다.
아들네 집에 도착하면서부터 아내가 바빠졌다. 시차 적응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인 마트에 가서 음식 재료를 샀다. 산모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식구들을 위해 식사를 장만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남편이 가장 맛있게 먹는다는 며느리의 말은 아내에게는 훈장 같은 가치가 있었나 보다. 틈날 때마다 은근히 음식 솜씨를 자랑한다. 아내는 저녁형 인간이라 늦게 일어나고 나는 아침형인데 손녀도 해 뜰 무렵이면 일어난다. 그러니 손녀랑 둘이서 이른 아침밥을 먹을 수밖에 없다. 아들 부부가 우리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업무가 있었는데 바로 손녀의 등하원이었다.
아들은 아침저녁으로 세 살짜리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가고 데려오는데 근무시간과 겹쳐서 힘들어했다. 알고 보니 이 일이 쉽지는 않았다. 어린이집까지는 자동차로 편도 25분이나 걸리고, 고속도로를 두 번 갈아 타야 한다. 갈아타기를 제대로 못 하거나 출구를 잘못 나가면 도심 지역을 통과해야 하므로 시간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사고의 위험도 높아진다.
다음 날부터 우리 부부는 매일 함께 손녀를 등하원시켰다. 손녀는 엄마랑 헤어지는 걸 무척 싫어하여 갈 때마다 오래 울었다. 차에 타서도 울었다. 첫날은 아내가 운전했는데, 이튿날부터 내가 운전하고 아내는 손녀를 달랬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고 하면서, 앞으로 등원은 나에게 전담하라고 선언했다.
다음 날 아침에 등원시키기 위하여 손녀의 손을 잡고 아파트를 나왔는데, 아이가 '엄마, 엄마'하고 울먹이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집 현관이 보이지 않는 모퉁이를 돌았을 때는, 내 손을 놓더니, 엄마를 부르면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였다.
예상보다 오래 우는 손녀를 달래기가 힘들었다. 당황하였고, 아내가 같이 왔으면 이런 문제를 잘 해결했을 터라며 속으로 불평했다.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깨우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면서 혼자 해결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아이의 손을 다시 잡고 지하 주차장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손녀는 늘 하던 대로 지하 주차장 버튼을 눌렀고, 내려가면서도 계속 엄마를 찾았다. 지하에서 멈춘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차가 보였다. 손녀의 태명은 꽁꽁인 데, 세 살 때까지도 이름과 태명을 함께 사용했다. 나는 차 쪽으로 약간 앞서 걸으며, 꽁꽁에게 저기 아빠 차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승강기 앞에서 얼굴이 부어오른 채 울먹이며 엄마를 불렀다.
난처한 상황이지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아내는 내가 스스로 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정도의 능력은 된다고 믿었다. 며느리도 며칠 동안 부탁하는 거마다 내가 적절하게 해결했으므로 별로 염려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앞으로 아들 내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힘들 거라는 압박도 느꼈다. 모든 경험을 동원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고민하던 중에, 문득 뭔가를 이용하면 아이의 관심을 끌어 차를 태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손녀는 여전히 엘리베이터 문 앞에 궁궐 문지기처럼 꼿꼿하게 서서 '엄마 엄마'를 중얼거렸다. 나는 문지기 대장 같은 자세로 아이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내 아이 눈앞으로 내밀고 힘주어 말했다.
“이것은 저 차 열쇠다. 엄마는 (열쇠를 살짝 흔들며) 이것을 (오른손을 가슴에 대며) 나에게 주면서 (손을 펴서 손녀를 가리키며) 너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라고 말했다. 그러니 (같은 동작 한 번 더) 너는 할아버지랑 (손으로 차 쪽을 가리키며)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
그리고는 시간에 쫓기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듣고만 있던 아이에게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손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가녀린 손을 뻗어 내 손에 얹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서서히 차로 향했다. 손녀는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내가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처럼 걷고 있다는 걸.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속에서도 아이는 계속 엄마를 부르긴 했지만,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도착하여 선생님에게 넘겨주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며느리에게 아침에 일어난 일을 들려주었다. 아내는, ‘수고했어요’라고 잠에서 덜 깬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며느리는, ‘애쓰셨네요 고맙습니다’라고 하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아버님이 손녀랑 소통하는 기술이 늘어가네요."
손녀와의 밀당은 이제 시작이겠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때 어떻게 하면 당황하지 않고 순조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네가 오래 살았냐, 내가 오래 살았냐?’하는 식으로 밀어붙이던 시대는 돌아오지 않을 텐데. 더구나 애들은 학교에서 계속 배우고 나는 몇 년 전에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가.
주말에는 평생교육기관에서 개설하는 강좌를 훑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