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라고 적힌 번호표를 받았다. 며칠 전에 친구에게 점심을 먹자고 했더니, 자기 동네 맛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테니 조금 일찍 만나자고 해서 30분 전에 도착했다. 그런데도 여러 사람이 식당 밖 의자에 앉아 휴대폰으로 식욕을 돋우고 있었다. 우리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미국 식당에 갔던 생각이 떠올랐다.
추천받은 식당에 가 보니, 입구에 여러 명이 옹기종기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종업원이 내 이름과, 함께 온 사람 수를 묻고서 대기자 명단에 적었다. 잠시 후 이름을 불러서 접수대에 가니 도우미 직원이 우리 일행을 지정된 자리로 안내하였다. 방문한 동안 외식을 자주 하였는데, 미국 식당에서 기다려야 할 때마다 아가씨들이 이름을 묻고, 불렀다. 아들 나이로 보이는 젊은 여직원이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선비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대니 혼자 속으로는 당황했다. 이 나라 문화가 그러려니 하면서 마음을 달래려 했다. 하지만 내 나라에서는 어른 대접을 받으며 살았는데라는 감정이 앞서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불편함을 가라 앉히기가 쉽지 만은 않았다. 늦은 밤에도 침대 주변을 맴돌며 고민하다가 한 가지 묘안을 떠 올린 후에야 미소 띈 얼굴로 잠들었다.
며칠 후 식당에 갔을 때도 여남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늘 하던 대로 입구에서 이름을 묻기에, 한국 사람은 누구나 알만한 친근한 애칭을 알려주었다. 잠시 뒤 접수대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내가 일어서자 일행들이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이 호칭이 재미있다고 웃으며 따라 들어왔다. 새 별칭이 생긴 뒤로는 미국 식당에 가서 이름을 말해주고 대기하는 게 즐거운 일이 되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한다. 미국 식당 주인에게 번호표 발행기를 마련하라고 제언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예의 선진국 국민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길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다만 그 길을 미소 지으며 드러내는 일이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