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의 마음을 사세요.

‘라떼 아버지’의 탄생과 종말

by 교수 할배

나 때는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뭔가를 하라고 말씀하면 그대로 행동하였다. 아버지가 집에서 나가거나 들어오실 때에는 인사를 하였다. 식사 시간에는 아버지가 먼저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한 다음에야 자녀들이 먹기 시작하였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우리는 무릎 꿇고 앉아서 그 말을 들었다. 내가 아버지로서 꼰대짓을 한다면, 성장하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위로부터 스며들었나 보다.


아들들을 키울 때, 그들이 아버지인 나에게 그렇게 대하기를 기대하였다. 식사 시간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는 밥을 먹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의 축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한다. 기도를 마치면 가족 모두 거의 동시에 밥을 먹기 시작한다. 가끔 아내가 자녀들에게 아빠가 먹기 시작하면 먹으라고 상기시켜 준다. 나는 사실 식사를 누가 먼저 하느냐에 대하여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내가 아들들에게 지시하거나 출퇴근할 때는 상황이 기대와 다르게 전개되었다. 큰 아들이 중학교 3학년 정도 되었을 때쯤부터 애들은 내가 시킨 일을 미루거나 수행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른 7시경에 등교하고 나는 그들보다 늦은 시간에 출근하는 날이 늘어났다. 퇴근시간이 그들보다 늦는 날도 생겼다. 아들 각자의 등하교 시간이 불규칙하였다. 아들들은 내가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 얼굴을 마주쳐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아들들이 가장인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그런 기분을 느낄 때마다 아내에게 말하면서 자식들의 태도에 대하여 투덜거렸다. 하루는 나의 불평을 가만히 듣던 아내가, 내 눈을 바라보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한 마디 하였다. “아들들의 마음을 사 보세요.” 그랬었구나! 그 말을 들으니, 어두운 터널의 저쪽 끝에 밝은 출구가 보였다. 마음속에 밝은 기운이 생겼다. 밝은 기운으로 적절한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우리 세대들이면 거의 모두 학교에서 삼강오륜을 배웠다. 오륜 가운데 하나가 부자유친(父子有親)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세히 풀어보면, 부모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라는 말이다. 나는 아비로서 자녀와 친해지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를 위하여 두 가지 방법을 시도하였다. 하나는 아버지로서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용돈을 ‘군소리 없이’ 주었다. 또 하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었다.


당시에 아들들은 모두 청소, 설거지 등의 가정 일을 분담하여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일요일 저녁마다 면담을 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완수한 정도에 따라서 용돈을 지급하였다. 용돈은 아들의 학교급(초, 중, 고)에 따라서 1만 원 단위로 차등하여 기본급을 정했다. 그리고 용돈은 기본급에서 가정일에 참여하지 않은 부분은 삭감하고 주었다. 거의 언제나 용돈의 액수가 기본급보다 적었다.

부자유친을 떠올린 다음 주부터 자녀들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돈을 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 그대로 아들들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돈을 이용하였다. 면담할 때 그들이 가정일에 협조한 것에 감사했으며 잘 한 부분에 대하여 칭찬하였다. 이전과는 달리 실천하지 않은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면담의 마지막에 기본급을 그대로 용돈을 주었다. 받는 아들들의 표정이 예상하지 못한 금전 소득으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이들이 맡은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 대하여 내 마음을 죄고 있던 밧줄도 풀렸다.


한편으로 아이들이 PC방에 가서 오랜 시간 놀다가 약속을 잊어버리더라도 꾸중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의견이 달라 저속한 말을 하더라도 참아 넘겼다. 그런데 참기 어려운 경우는 기억했다가 아내에게만 쏟아 냈다. 그러면 아내는 적절한 시간에 아들과 대화하여 그들이 행동을 고치도록 권유하였다.


대화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우선 이솝우화를 선정하여 대화하기 쉬운 희곡식으로 편집하였다. 이후에는 구약성경을 영어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신약성경을 시나리오 형태로 편집하고 있다. 출판한 이솝우화를 아들들과 읽었다.


아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기 위한 노력을 얼마 동안 했을까, 아내가 이런 말을 하였다. 요즈음은 아들들이 아빠 말을 잘 듣고 아빠를 대하는 태도가 좋아졌다고.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나를 대하는 말투와 표정이 편하게 느껴졌다. 2년 정도 걸린 거 같다.


흔히들 자녀교육과 관련하여 이런 말을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그런데 최근에 누군가가 이런 문장을 덧붙였다. “안 심은 데 안 난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심지 않아도 콩이 났다. 나 때는 심은 대로 거두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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