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놀이로 가득 차 있다. 학교에서는 틈만 나면 아이들과 놀았던 것 같다. 특히 점심시간은 쉬는 시간보다 더 길어서인지 더 많은 친구들이 모이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고무줄놀이에 한창 빠져있을 때는 공간과 시간만 있으면 편을 짜서 그 놀이를 했다.
발목부터 시작해서 단계가 올라가듯 무릎, 허리 높이의 고무줄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학교생활에 적응이 된 고학년이 되어서는 더 새로운 놀이를 많이 찾았다. 누군가 한 발 뛰기, 말뚝박기 이런 놀이를 운동장에서 하면 나도, 나도 하면서 끼어들면 되었다. 그렇게 우~하고 어울려서 짧은 점심시간을 알뜰히도 놀이에 써먹었다. 그 시절은 학원 다니는 아이도 거의 없었기에 학교가 끝난 운동장에서도 그 놀이가 그대로 이어지는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해거름이 내려앉을 때까지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서 주로 놀다 가곤 했다. 요즘 아이들이 손에 쥐고 사는 휴대폰도 없던 시기였기에 친구들과 몸으로 노는 놀이가 놀이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게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색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왜 옛날이야기, 다른 아이들 이야기 등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졸려서 집중을 잘 못하는 아이가 있었는지, 그때마다 아이들 눈이 반짝거려서이지 않을까. 재미있는 이야기든 무서운 이야기든 어떤 이야기든 아이들을 홀리는 매력이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해주는 이야기에 픽션이나 과장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없이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 같다. 오 학년 만우절이었나, 담임선생님이 슬픈 표정으로 오늘까지만 우리를 만나고 내일부터는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당연히 100% 그대로 믿고 눈물지으며 슬퍼했다. 선생님이 만우절이라 장난친 거라는 말씀을 하실 때까지. 내게도 그림책을 읽어주는 선생님이 있으셨을 텐데 그 기억은 없다. 다만 육 학년 때 선생님이 인형극을 해주셨던 적은 있다. 교탁이라 불리는 곳에서 손가락 인형으로 등장인물들의 흉내를 내면서 말이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려 노력을 많이 해주셨던 분이셨다.
교사로 살아가는 지금, 나도 여느 교사들과 다르지 않다. 새 학기가 되어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도한다.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수업을 준비한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부지런히 살피고 도와줄 부분들을 찾는다. 이 모든 노력들도 아이들 마음이 열려 있을 때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다. 선생님의 관심을 좋게 받아들이고, 조언을 들을 만큼 열린 마음이 관건인 것이다. 그리고 난 그 비밀의 열쇠로 '그림책 읽어주기'를 집어 들었다.
아이들이 책 읽기를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정말 책하면 반색하고 좋아하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도움이 되고 꼭 필요한 책 읽기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고 다양한 빛깔로 채워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책 읽기가 얼마든지 재밌고 즐거운 시간임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가만가만히 다가갈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되어준다. 일단 선생님이 책을 읽어준다고 하면 아이들은 좋아한다. 그림을 살피는 재미, 선생님이 읽어주는 말을 듣는 재미가 있다. 이야기는 또 얼마나 다양한 빛깔이던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하는 대신 그와 비슷한 내용을 품은 그림책을 읽어줄 때가 있다. 그러면 잔소리로 듣는 대신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마음에 스며들게 되어 훨씬 효과가 좋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게 된 것이 줄잡아 십 년을 넘는다. 똑같은 그림책을 읽어주어도 그때 아이들의 구성이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은 다 달랐다. 그리고 나름 그림책 목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읽어준 해는 없다. 새로운 그림책이 나와서 목록에 추가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씩은 달라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향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
'너희에게 책 읽기가 편하고 부담 없고 즐거운 시간이면 좋겠어. 책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 지금은 선생님이 읽어주지만,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스스로 책을 가져다 읽고, 그 작가의 다른 이야기가 읽고 싶어 도서관에 가는 너희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