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어느새 그림책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그림책은 어디에나 많다. 서점에 가도 한 코너를 가득 메우고 있고, 도서관에서도 아이들의 사랑을 잔뜩 받고 있다. 그렇게 어딜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책은 내게 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돌멩이의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던 그림책이 이제는 나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나만의 책이 되었다. 마치 길을 가다가 유난히 마음에 드는 돌멩이를 만나서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 느낌이랄까. 한때 유아들이 읽는 책이라고 치부했던 그림책이 나의 책이 되었다.
나는 내가 먼저 경험해 보고 좋은 것을 다른 사람한테 추천하는 타입이다. 책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베스트셀러라 하고 다들 입을 모아 좋다고 말하는 책도 일단은 내가 직접 읽어본다. 내 느낌과 생각에도 괜찮은지를 충분히 살펴보고 나서 확신이 들 때, 다른 사람에게 신중하게 권하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읽어 줄 그림책도 내가 먼저 읽고 나서 좋았을 때 권한다.
물론 내가 좋았던 책이 반드시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은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좋았는데, 아이들은 그저 별 감흥 없이 들을 때도 있었다. '어, 이 장면이 특별한데... 아이들은 왜 그냥 지나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반대로 나는 쉽게 간단한 내용이라고 치부해 버린 그림책을 아이들은 두고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어라, 아이들의 마음을 툭 건드리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구나.' 싶어 다시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나 대체로 내가 좋았던 책은 아이들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마음에서 마음이 제대로 흘러갈 때면 내가 북 큐레이터라도 된 양 더 열심히 책을 고르게 되었다.
한 때 전국적으로 어린이 도서관을 곳곳에 세우던 때가 있었다. 공영 프로그램에서도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들자고 하며 기적의 도서관 등을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외관이 멋지고 내부적으로도 잘 꾸민 도서관이 많지만, 내 마음의 1번은 어린이를 위한 책, 그중에서도 그림책이 잘 구비되어 있는 도서관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여행을 가서 시간이 날 때면 어린이 자료실을 먼저 들러본다. 이제는 부모님 손을 잡고 도서관에 오는 유아들도 많아져서 전보다 어린이 도서관의 시설이 더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책도 다양하게 있고, 아이가 편하게 책을 보고 쉴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추고 있다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그런 공간에 들어서면 나조차도 소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그림책을 보게 된다. 처음 보는 그림책에 정신이 팔려 이 책 저 책 보다 보면 어느새 그 공간에 부모님과 함께 온 유아들로 가득 채워져서 살짝 민망해질 때도 있다. '아이랑 놀아주러 온 것도 아닌 저 사람은 뭐지?' 이런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만도 하다. 그러면 어떠랴. 내가 좋은 것을!
작년 연말에는 지역 서점을 갈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다. 서점에 가면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새로 나온 책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보다 그림책 코너가 독립적으로 꾸며져 있는 것을 보면 이제 찾는 독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구경하다가 보물을 발견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바로 유준재 작가의 '루돌프 J'이다. 이 작가의 '파란 파도'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기에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차였다. 딱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게 빨간색으로 귀엽게 꾸며진 표지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내용이라 참 좋았다. 혼자서 세 번을 내리읽었다. 보물 찾기에서 정말 제대로 된 보물을 찾은 것처럼 마냥 뿌듯했다. 이렇듯 나는 마음에 드는 그림책 한 권에 마음이 설레는 못 말리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