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연극을 본 것이 언제였을까. 조금 까마득하다. 가장 최근에 본 연극은 대학로에서 그래, 10여 년 전에 본 것이다. 서울에 배우는 것이 있어 며칠 머무르게 되었는데 바로 거기에서 대학 친구를 만났다. 반가워서 저녁을 같이 먹고 연극 하나 볼까 하고 간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들, 딸들이 한창 꼬물꼬물 자랄 때여서 문화 공연을 본 지가 어언 먼 옛날이었다. 간만의 나들이에 신이 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연극을 봤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연극의 제목이나 내용은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참 좋아서 소극장에 들어갔고 배우와 관객의 자리가 아주 가까워서 놀랐고 지루한 줄 모르고 봤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럼 내가 연극 무대에 서 본 것은 언제였을까. 고등학교 때였다. 다니던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즈음 발표회가 있었던 것 같다. 연극을 하기로 했고 다른 친구들이 나서지 않아서 살짝 등 떠밀리다시피 하며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내겐 아주 큰 도전이었다. 난 학창 시절 교실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래도 맡겨진 역할을 잘하고 싶었던 생각에 친구 중에 연극동아리를 하는 친구를 찾아 일대일 멘토링을 받았다. 딱히 따로 만날 시간이 없어서 저녁 먹고 나서 야간자율학습 들어가기 전에 학교 건물 옆에서 만났다. 그 친구는 내게 큰 소리로 발성하는 것, 대사를 실감 나게 말하는 것, 어울리는 제스처를 하는 것을 알려주었던 것 같다. 때로는 혼자 컴컴한 학교 건물 옆에서 중얼중얼거리며 대사를 연습하기도 했다. 아마 최초였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청중들 앞에서 주목하는 가운데 연극 공연을 한 것이. 그때만 해도 교회 발표회가 있다고 하면 주위 교회에서 떼거지로 보러 오고, 교회 안 다니던 친구들도 와서 즐기던 분위기였다. 결국, 나는 연극을 해냈다.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는 모른다. 잘하려고 장면장면마다 애쓰기는 했지만 역시나 어설펐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연극 무대에 한번 서봤다고 연극이 더 좋아진 것이다. 대학교 연극 동아리 공연이 있으면 보러 가려고 노력했고, 연기자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보려 했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습이 있어야 하는지 알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지방에 살고 있고 연극 공연을 보기는 쉽지 않다. 연극은 내게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나 아주 떠난 것은 아니니, 교실에서 연극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역할극을 좋아한다. 일단 역할극을 한다고 하면 신이 난다. 친구들과 함께 역할을 정하고 연습에 들어가면 교실은 금세 시장통이 된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종이에 그리고 오려 깜짝 소품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교실 이곳저곳을 뒤져 쓸만한 도구들을 챙겨내기도 한다. 활발한 아이들은 본래의 대본 내용과는 동떨어진 액션신을 주요 장면으로 둔갑시켜 버리기도 한다. 역할극의 좋은 점은 평소 소심해 보이는 아이들도 뭔가 역할을 맡아 잘 해낸다는 것이다.
지난번에는 아이들에게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책>을 읽어주었다. 내용은 짧고 간결했지만 그 안에서 묻고 답할 거리들이 많아 두 번 정도를 같이 봤다.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다음, 역할극으로 연습하고 발표한다고 했더니 교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같은 내용의 그림책을 읽어줬지만, 아이들이 발표하는 역할극은 저마다 달랐다. 집에 오기면 하면 '여보, 밥 줘!' 를 외치는 아빠 역할을 맛깔나게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림책의 반전 부분을 크게 클로즈업해서 '너희들은 돼지야!'를 강하게 표현하는 친구도 있었다. 모두가 밝게 웃고 즐거워했던 역할극 시간이었다. 그러면 됐다.
그림책은 눈과 귀로만 읽는 책이 아니다. 내가 받아들이고 느낀 만큼, 몸으로 표현해 낼 수도 있다. 그림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친구들과 같이 맡아서 해본 아이들은 온몸으로 책을 읽은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먼 훗날에도 그림 책하면 좋았던 기억 하나쯤은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