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글자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일단 휴대폰의 알람이나 밤 사이 쌓인 메시지를 보며 일어난다. 아침을 먹기 위해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낼 때도 무의식적으로 식품에 씌인 글자를 보고, 좋아하는 음악을 검색할 때도 그렇다. 의식을 못하는 그 순간조차도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잘 때까지의 하루를 온통 글자의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의식적인 읽기를 하거나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피해 갈 사람은 없다. 우리에게 글자 없는 세상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
글자로 만들어진 세상 초등학교도 당연히 예외일 수 없다. 아이들이 등교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말과 글 사이에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친구와 나누는 대화, 수업시간 동안 선생님의 말, 교과서나 활동지의 글, 쉬는 시간의 수다 등 모든 것이 읽기와 쓰기의 무한 반복이다.
하루 종일 몇 마디 말을 했고, 몇 문장의 글을 읽었는지 셀 수조차 없다. 이렇게 말과 글의 세상에 잔뜩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아이가 고학년이 될수록 쓰기 활동을 싫어하게 된다. 현재 국어 교과서에서는 단원별로 일정한 주제를 학습하고 나면 심심찮게 주제에 대한 글쓰기를 하도록 되어있다. 한 페이지를 족히 채울 만한 빈 줄을 보며 미리 한숨부터 푹 내쉬는 아이들도 있다. 아예 잔머리를 쓰려고 '몇 줄 써요?'라고 묻고 시작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모습의 아이들이라면 글쓰기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검사를 통과하기 위한 빈칸 채우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십여 년을 넘게 아이들 곁에서 가르쳐 오면서 다르게 가르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아이들이 즐겁게 읽고, 술술술 쓰고 싶게 만드는 이른바 기적을 만들고 싶었다. 이리저리 궁리해 봤지만, 신박한 것은 없었다. 결국 해답은 뻔한 말 같지만 책읽기에 있었다. 말 그대로 책을 즐겨 읽는 아이일수록 생각 주머니가 자라게 되고, 글을 쓸 때도 그 생각 주머니에서 풍족하게 꺼내어 쓸 수 있게 된다.
내가 교사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노력한 일은 아이들 곁에 책을 가만히 놓아주되 덜 지루하고 덜 지겹게 책을 여기도록 한 일이다. 책 읽기도 이처럼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맛보게 하기 위해 이것 저것을 할 수 있는 대로 해봤다.
글이 많지 않은 그림책은 읽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사용하는 방법이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책들은 짧고 단순한 내용이면서도 생각할 거리는 많은 책이다.
벌써 십오 년 전쯤의 글이다. 활발하고 카리스마가 있었으며 사춘기가 일찍 온 아이였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며 이전과 지금의 내가 무엇이 달라졌는지 돌아보고 있었다. 다만 책을 읽어주었을 뿐인데 아이는 자신의 친구관계를 생각하고 노력할 점을 스스로 찾은 셈이다.
나팔귀와 땅콩귀를 읽고
친 구
친구는 하나밖에 없는 친구이다.
친구를 잃으면 마음이 뚫린 것처럼 아픕니다.
친구는 소중합니다.
친구랑 싸우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친구는 누구보다 친하고 사이가 좋습니다.
친구가 싫다고 놀리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자신의 마음속 생각을 이렇게 꺼내어 놓는다. 비록 맞춤법이 정확하지 않고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요즘 그 아이의 고민이 글 속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 그래서 아이들 글은 허투루 읽지 않는다. 꼭 읽어보고 틀리는 것을 고치는 검사를 안하고 댓글을 써 주려 노력한다. 아이가 힘내어서 다음 글을 쓸 수 있도록 칭찬과 격려를 담으려 노력한다.
요즘은 독후활동을 전과 다르게 한다. 이젠 독서감상문이 사라지고 대신 아이들과 놀이나 활동을 하는 교사들이 많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을 좀 더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정말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미리 질문을 만들어 놓는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듣는다. 정말 '이건 꼭 글로 남겨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는 글을 쓰게 하고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하게 한 다음 칭찬을 듬뿍 해준다.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교사가 해주고 싶은 말을 우회적으로 들려주는 좋은 방법이 도기도 한다. 잔소리 열 마디 보다 그림책 하나가 더 나을 때도 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의 생각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림책이라는 히든 카드를 들고 아이들 앞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