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국민들의 아픈 사연
깨어보니 새벽 한 시다. 혀 꼬부라진 노래방 소리가, 쏟아지는 비바람에 섞여 유리창을 두드렸다. 창밖 북한 식당이 잔칫집처럼 들썩였다. 이 늦은 시간까지 저쪽 동네에서 우리 가요를 부르는 자들이 누구인가.
몇 년 전, 프놈펜 시 나의 숙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겸 하숙집이었다. 먼저 들어온 투숙객들이 안쪽 방을 차지하였고, 내 방은 길가 쪽 2층이어서 오토바이, 강아지, 노래방, 자동차들의 소리가 뒤섞여 항상 시끄러웠다.
묘하게도 골목길을 경계로 한국 식당과 북한의 ‘평양 식당’이 마주 보고 있었다. 하숙집 사장님은 날마다 그쪽에 신경을 썼다. 어떤 교민은 우리 식당을 앞에 두고 ‘평양 식당’으로 가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시내에는 30여 개의 한국 식당과 5개의 북한 식당이 있었다. 하숙집 사장님은 한국 식당끼리의 경쟁도 어려운데, 앞집 평양 식당과도 경쟁을 해야 했다. 북한 식당은 당국에서 투자하고, 인력을 파견하고, 수익금은 국가가 챙겨간다. 한국 식당은 개인이 투자하고, 수익 여부는 개인 몫이다. 그래도 양측의 주요 고객은 한국인이었다. 북한당국은자기네들 끼리도 외화벌이 목적으로 해외에 식당을 만들었고, 노동당 산하 외화벌이 부서에서 직접 운영하여 때로는 자기네들 끼리도 경쟁을 한다고 하였다.
북한 식당은 홀이 넓고 화려한 장식에 무대장치까지 갖추어 고급 음식업소로 알려졌다.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늘씬한 여종업원들이 친절하게 맞아주며, 춤과 노래와 악기로 손님들을 즐겁게 한다. 멋진 노래 솜씨에 춤과 바이올린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퍼포먼스에 관광객은 넋을 잃고, 사진 찍기에도 여념이 없다.
남북 간의 대치 상황과 잦은 군사도발로, 호기심에 들어가긴 했어도 한국 손님들 마음은 편치가 않다. 아가씨들이 미소를 지어도 '가시 돋친 장미꽃'처럼 비밀스러운 뭔가를 감추고 있을 듯해서이다. 어떤 한국인은 농담도 한 마디씩 던져보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질 않는다.
내 돈 주고 식당 가는데 남의 눈치를 왜 보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식당에서 벌어드린 외화로 무기 만드는 사람들에게 왜 가냐며 강하게 비판하는 한국인도 있다. 어렵게 살아가는 한국 식당을 애용하지 않고 북한 사람을 도와주냐며 핏대를 올리는 애국자들도 있다.
어떤 돈 많은 교민은 평양 식당 단골손님이 되어 밀실까지 들어가자 지인들은 걱정을 했다. 정치 문제나 정보 거리가 될만한 말은 자제해야 하는데 취하다 보면 실언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식당 종사자 모두는 최고의 출신성분들로 정보요원일 수도 있으며, 손님들의 대화 내용 도청도 가능할 것이다. 자기네들끼리도 서로 감시하며 거리에서도 혼자 다니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한편,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은 규모가 작고 종업원도 현지인이다. 식당 환경도 열악하여 화려한 북한 식당과는 비교가 되질 못했다. 그래서 사장님들은 한국인이 북한 식당을 애용하는 것에 대하여 몹시 불편해하였고, 강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오랜 고생 끝에 유명 업소로 자리를 굳힌 한국 식당도 있긴 하다. 그 정도의 기반을 다진데 까지는 피눈물 나는 고통과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식당을 운영해 본 경험 있는 사장들은 어려운 가운데도 근근이 살아간다. 마땅한 사업거리가 없어 식당이라도 개업해 보는 경우, 대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한국 음식이 맵고 짜며, 탕 위주의 음식이어서 서양인들은 거의 찾지 않는다. 현지인들도 가격 부담으로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놈펜에서의 식당 운영은 쉽지가 않다. 대사관 직원들은 이런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에 차례로 순회하며 이용해 준다.
연평도 피격이나 천안함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하드라도, 교민사회에서는 남북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은 결국 우리 민족끼리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로 관계가 악화되자 대사관과 교민회에서는 북한 식당 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급변했다. 북한 식당은 한국인이 발길을 끊자 문을 닫는 곳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하숙집 앞 ‘평양 식당’은 북측 공무원들과 근로자들의 숙소로도 제공되었다고 했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유엔의 대북제재로 평양 식당을 비롯한 많은 북한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국땅에서 한민족끼리 도와가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적 이념 때문에 대립하고 경계하며 국력을 낭비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