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연수원의 24시간

한국 정부가 지원한 연수원 운영 보람

by 노고지리

아침 5시 40분, 새마을 노래가 캄보디아 농촌 개발 연수원의 어두운 적막을 깨고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시원한 새벽바람에 태극기와 캄보디아 국기가 본관 앞 하늘에서 힘차게 펄럭이며 하루를 연다. "♪♬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연수생들은 한국의 새마을 노래를 들으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새마을 복장으로 운동장에 모인다. 2층의 교관 숙소에 기숙하던 나도 습관대로 일찍 일어나 일정을 확인하고 시간 맞춰 나간다. 담당 교관은 아침 점호로 인원을 확인하고 국기에 대한 배례, 그리고 아침체조를 진행한다. 체조 음악 역시 한국의 “국민체조 시~작” 음성에 맞추어 “다리 운동, 허리운동, 가슴운동” 순으로 진행된다. 교관들은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동영상의 체조 동작을 기억하며 순서에 맞춰 리드해 나가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연수생들과 한국인 앞에서 실수해선 안 된다는 자존심과 소명의식으로 초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새마을 노래와 국민체조가 캄보디아 연수원에서 그대로 사용되는 장면은 실로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태극기가 펄럭이며 한국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잘 살아보자’고 다짐하는 그들을 보면서 감격하지 않을 한국인이 있을까.


필자는 2011년 공로연수에 들어가면서 농촌진흥청 KOPIA(2011~‘12) 센터와 한국 국제협력단(KOICA2013 ~‘15) 자문단으로 캄보디아에서 일할 때 교수님들로 구성된 Global Agro Network(GAN)와 인연이 되었다. 나는 농촌지도직 출신으로 새마을 교육 경험도 많았다 하여 정부 무상원조사업(ODA)에 참여하게 되었다. KOICA는 ODA 사업을 주관하는 외교부 산하 정부출연 기관으로 본부는 성남에 있으며 개발도상국에 사무소가 설치되어 있다.


연수원의 부원장 겸 교수실장 직책을 부여받아 2016년부터 연수원 신축공사를 진행하고 직원 선발, 커리큘럼 개발, 교재 제작, 초청연수, 연수원 운영 지침서 등을 준비하였다. 우리 측과 현지 정부와의 수많은 검토와 협의 과정을 거쳐 2017년 첨단 교육설비를 갖춘 캄보디아 최초의 농민교육 기관이 개원되어 2018년까지 시범 운영하였다. 연수원의 설립 목적은 ‘캄보디아 공직자와 농촌지도자들에게 농업기술과 새마을 정신 교육으로 빈곤타파와 와 자립정신을 길러주기 위함’이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직자의 고정관념부터 바뀌도록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했고 연수원 운영 책임 또한 그만큼 막중하였다. 연수원 경험이 없었던 직원들에게는 24시간의 일정을 매뉴얼로 작성하여 매일 도상훈련을 하였고, 연수생들에게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일과 16시간은 너무 무리한 스케줄인 줄 알지만 타이트한 연수과정에 ‘인내심으로 참가하는 자체가 지도자로서 거쳐야 할 정신 수양의 과정’이란 것을 강조하였다.


소득증대와 환경개선을 위한 30개 시범마을 지도자들이 교육 대상자였으므로 마을별 주요 소득 작목을 파악하고 가장 많은 작목 12개를 선택하여 교육과정을 개설하였다. 시범마을에 양계농가가 가장 많아 양계만을 3회에 걸쳐 진행하였다. 이런 식으로 농가에서 관심이 많은 작목 순서대로 영어반, 소 사육 바니, 채소만, 과수 접목반 등으로 입소에서 수료까지 단지 반(5일), 중기만(10일)을 운영하였다. 양계만에 입소한 연수생들은 강의, 실습, 분임 토의, 견학 과정에 양계에만 집중하여 교육성과를 높였다. 강사도 왕립 농과대학(RUA) 양계 전문가들만을 초빙하였고 교육생도 양계농가만 입소시켰으므로 한눈팔 겨를이 없었고 모든 과정이 양계에만 집중된 것이다.


오전 8시에 명상(Meditation)의 시간과 함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스님 출신인 담당 교관의 진행으로 연수생들의 정신을 수양하는 시간이며 연수생들은 눈을 감고 잠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12시까지 오전 강의가 진행되는데 연수생들의 소득과 직결되는 금쪽같은 시간이므로 한눈팔 여유가 없다. 강사들 역시 관련 분야 농민들만 모였으므로 대충 넘길 수가 없다.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중식시간이며, 식사를 일찍 마치면 잠깐 동안의 오침 시간을 즐기며 오후 일정에 대비한다.


오후 2시부터 오후 강의나 실습이 진행되며 8시까지 석식을 마치고 분임 토의에 들어간다. 전체 연수생들은 3개의 분임조에 편성되어 주어진 주제에 대한 토론과 문제점에 대한 해결 방안을 도출하여 정리하고 수료식 당일 결과를 발표한다. 그렇게 하루 일과는 밤 10시까지 진행되며 분임 토의는 정해진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새벽부터 취침까지 모든 연수과정이 교육의 가치사슬(Value Chain)로 캄보디아에 새롭게 탄생된 것이다. 여러 과목을 백화점식으로 진행하면 교육 분위기가 산만해져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특정 과목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전문농업인 육성에 집중하여 KOICA로부터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았다. 일생을 농촌지도직으로 일했던 경험이 캄보디아에서 빛을 보는 것 같아 또 다른 보람을 느꼈다.


모든 연수과정은 각각 월요일 입소하여 금요일 수료한다. 수료식 날엔 농촌 개발부(MRD)에서 차관급이나 국장급이 임석하여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수료증을 수여한다. 나 역시 ‘새마을 정신’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연수원에서 배운 소중한 내용들을 실천에 옮겨 부자로 잘 살아야 한다"라고 격려하였다. 본부에서 김석한 고위층들께도 “연수원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하며 교관들의 과중한 업무를 감안한 정부 차원의 제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하였다. 입소식이나 수료식 행사 때 나의 스피치는 모두가 모니터링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고위층 앞에서는 정부에 촉구하는 내용들을 일부러 강조하였다.


현관에서 기념촬영을 끝으로 석별의 시간이 되면 여성 교육생들은 모두가 울면서 서로를 포옹하며 석별을 아쉬워했다. 헤어짐의 아쉬움도 있지만 ‘연수 기간 동안 기대 이상의 많은 것을 배웠고, 가족처럼 따뜻하게 그리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연수원 공직자들의 수고에 감동하여 보여준 눈물’ 같았다. 이들이 각자 마을에 돌아가서 소득을 높이고, 새마을운동에 솔선수범하며 지역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이 되어 캄보디아 농촌의 ‘잘 사는 모델마을’로 가꾸어 주기를 기도하였다.


제대로 된 농민교육기관이 없는 데다 인프라 역시 부족한 상태에서 ‘농촌 개발 연수원’이란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운영방식을 정착시키고 떠나왔던 것이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며 큰 보람이다. 나를 잘 따라주었던 연수원 직원들께 감사드리며 캄보디아 농촌 개발 연수원의 24시간이 연중 변함없이 가동될 때 농촌의 빈곤타파와 새마을운동은 빠르게 확산되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하루속히 종료되어 한국과 개발도상국 간 농촌 개발 협력사업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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