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병에 노출된 비둘기

후진국 사람들의 에너지 낭비가 심각해

by 노고지리

“비둘기는 산에 사는 날짐승이다. 그들은 스스로 날면서 먹이를 취해야 하는 야생 조류들이다. 인간들이 먹이를 주니 멀리 날 필요가 없고 앉아만 있어도 먹이가 넘쳐나니 비둘기는 날지 않고 게을러져서 운동 부족으로 비만하여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 결국 모이를 주는 인간들이 비둘기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나의 농담 반 진담 반의 비유에 연수원 직원들은 웃어 넘기기는 했어도,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정신으로 방생(放生)과 자비(慈悲)를 베푸는 그들의 마음을 건드렸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여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했다.


캄보디아에 근무할 때 자주 목격했던 프놈펜 시민들의 에너지 낭비 사례를 지적했던 이야기이다. 시민들은 시원한 아침 시간이나 휴일에 왕이 거주하는 왕궁 공원에 나와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돈을 주고 산 먹이이긴 하지만 농민들의 정성으로 가꾸어진 쌀, 옥수수, 콩 등 곡물들이 너무 많이 뿌려지는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광장 여기저기에서 경쟁이나 하듯 모이를 부어주니 비둘기들은 다 먹어 치울 수가 없고, 청소부 아저씨들은 매일 아침 넓은 광장에 널려있는 곡물들을 쓸어 모아 버리느라 진땀을 뺀다. 현직 시절 청소년 단체와 식사할 때 ‘한 알의 쌀이라도 농민의 피와 땀이 깃들였다’는 구호를 외쳤던 우리와는 식량에 대한 감성(感性)이 많이 다른 거 같았다.

26952641_142135443122217_6941758470892003163_o (1).jpg 연수과정을 평가하고 문제점을 개선하자 !!
25443317_174842513113728_488951430865014189_n.jpg 이론보다 현장 방문이 더 재밌어 !!

이렇듯 시민들의 부족한 절약 정신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가 있다. 프놈펜 공원은 아침햇살이 퍼지면 대낮처럼 밝은데도 공원 등은 꺼질 줄을 모른다. 가로등뿐 아니라 관공서 외등이나 가게에 설치된 네온사인 간판들은 낮에도 휘황찬란하다. 캄보디아 농촌 개발부(MRD) 사무실은 온종일 에어컨이 돌아가 외국인인 내가 추워 ‘에어컨을 잠시 끄자’고 할 정도이다. 2017년 당시 캄보디아 공무원들의 월 보수는 200~250달러 정도이며 자동차 연료비는 우리처럼 비싼 가격인데도 어떻게 개인차량을 운행하는지 지금도 그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있다. 세계 최 빈국 중의 하나로 알려진 나라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들이다. 사용하지 않은 시간에는 가전제품의 전기코드를 뽑아가며 물자 절약이 몸에 배었던 나는 그런 프놈펜 시민들의 의식에 문제가 있음을 자주 느꼈다.

23795613_167409900523656_1610271468042177875_n.jpg 일과를 마치고 루를 반성해보는 시간


나는 에너지가 낭비되는 현장의 사례들을 매일 사진으로 남겼다. 나중에 캄보디아 농촌 개발 연수원에서 새마을 교육을 담당했을 때, 직원들과 교육생들에게 프놈펜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물자와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였다. 그들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정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다가 나의 지적이 계속되자 차츰 그 문제점을 인식하는 듯했다. “입으로만 절약 정신을 강조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실천하지 않은 지식은 쓰레기나 마찬가지이며,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라고 듣기 싫게 반복했다.


캄보디아의 농촌은 역설적으로 이와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농촌주택들은 통나무로 된 필로티형 2층 구조로 지상의 바닥에는 창고, 부엌, 이륜차 보관, 가축사육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음식 조리는 바닥에 냄비를 걸고 주변의 나뭇가지를 연료로 사용한다. 작은 사다리로 연결되는 2층에는 넓은 공간을 천으로 칸을 막아 거실 겸 방으로 사용한다. 방의 바닥은 대나무로 엮여 깔려있으므로 바람이 잘 통하여 더위에 지장 없이 생활한다. 더운 나라에서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궁금해할 수도 있겠지만 주택의 구조가 가전제품을 설치할 수 있는 조건이 못되고, 설치한다 해도 농민들은 비싼 전기료 때문에 자제하며 살아간다. 캄보디아는 전력 생산 능력이 없어 인근 베트남과 태국에서 수입하니 서민들에게는 전기료 부담이 매우 크다. 농촌에서는 전기료 때문에 향수용 모터를 돌리지 못하니 비가 오는 우기(雨期) 외에는 농지를 놀릴 수밖에 없다. 농촌 가정 대부분은 밤에도 전기를 켜지 않고 어둡게 지내다가 초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면 그만이다.


대부분의 농가에는 상수도 시설이 없으므로 가정마다 성인 몇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큰 항아리를 마당 한쪽에 몇 개씩 보관해 여기에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이 항아리 수가 많은 농가는 그만큼 물을 많이 사용할 수가 있으므로 농촌에서는 부(富)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기 때 받아놓은 물은 건기 때 유용하게 사용하는 절약의 지혜로 살아가고 있다.

28953715_201778183753494_3326520544459521186_o.jpg 레크레이션은 지루한 연수생들에게 활력을 주어요 !!

프놈펜에서 두 시간 거리인 캄퐁스프주 연수원으로 근무처를 옮긴 후부터는 프놈펜은 자주 갈 수가 없었지만 떠난 지 1년 후 우연히 프놈펜 공원에서 아침 산책을 하던 중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야 말았다. 새벽녘 어슴푸레할 무렵엔 당연히 훤하게 켜져 있어야 할 가로등에 불이 보이지 않았다. 또한 공원 바닥에 널려있어야 할 곡물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하늘을 나는 비둘기들도 과거처럼 배가 불렀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여느 때 보다 분주해 보였다. 그 순간 직원들에게 듣기 싫게 강조했던 에너지 낭비 사례가 생각났다. 나의 지적이 효과가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프놈펜이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기뻤고 내 일처럼 반가웠다. 에너지를 절약하며 친환경적 도시로 거듭날 때 프놈펜은 관광도시로서 더욱 사랑받게 될 것이다. 그날 공원은 어두웠어도 기분 좋게 산책했던 상쾌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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