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한국고추가 너무 부족해
속담에 ‘고초(苦椒) 당초(唐椒) 맵다 한들 시집살이보다 더 매우랴’라는 말이 있다. 시집살이가 힘들었다는 말이다. 인생살이가 그만큼 고단하고 맵다는 뜻 일 것이다.
고초, 당초는 고추가 남쪽나라에서 온 매운 것이라 하여 조상님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 사람을 독살하려고 가져왔으나, 오히려 한민족이 고추를 즐기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남쪽나라에서는 여러 해 살이로 그만큼 생명력이 끈질기다. 우리 땅에서는 겨울을 넘길 수가 없어 한 해 살이로 재배되지만 없어서는 아니 될 먹거리로 자리했다.
고추가 매운 만큼 고추농사가 매워졌다. 고추밭엔 찬바람만 인다. 농촌에는 노약자들이 많고, 비료 농약 값이 오르고, 땡볕에 고추 따기 힘들다. 고추는 그동안 농촌에 돈이 들어오는 고소득 작물로 중요했지만 재배면적은 해마다 줄고 있다. 지금도 한 사람이 매년 닷 근씩을 먹는다는데 일제 때는 열두 근이나 됐다고 했다. 고추 없이는 못 사는 나라가 한국인 것이다.
우리 땅에서는 고추 생산량이 줄어 중국산이 식탁에 오르고 있다. 고추농사는 힘들어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정부에서는 부족한 고추를 수입해야 하고, 보따리상들은 값싸고 불량한 중국 고추를 유통한다. 한국 정부는 잔류독성이 강하여 인체에 해를 주는 농약 생산을 금지시키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중국산 고추가 값이 싸긴 하지만, 무분별한 농약 사용으로 잔류독성이 남아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농가들도 한여름 탄저병, 역병 때문에 농약을 자주 사용해야 하지만 비교적 안전한 농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수확한 고추는 세척하여 건조하므로 어느 정도는 안전하게 관리된다.
중국 농민들은 뿌리째 뽑아서 길바닥에 통째로 말린 다음 털어낸 고추를 말리거나 쪄서 냉동하여 내보낸다. 대량 소비처인 요식 업소나 상인들이 값싼 중국산을 다루는데, 그런 고추로 조리된 음식이 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다. 얼마 전 중국인이 알몸으로 김장 배추 더미 속에서 작업하는 동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국내 시장에 유통되는 고추의 50%를 중국산이 점하고 있다 한다. 고춧가루로 버무린 반찬을 안심하고 먹을 수가 없으니, 식당에서는 아예 김치를 내놓지 않은 곳도 있다.
국내산 고춧가루를 이용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만큼 지출이 많아지니 업자들에겐 타산이 맞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가루 상태인 고춧가루를 중국산과 국내산을 구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섞여 있다면 어느 장사가 구분해 낼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고추 유명 주산지의 모 고춧가루 종합 처리장에서 경영난 때문에 중국산을 섞어 국내산으로 유통했던 일도 있었다. 그래서 고춧가루는 믿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현직 시절 동유럽의 고추 선진국 헝가리를 출장한 적이 있었다. 재배기술과 고추 가공 처리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헝가리는 몽고군이 100년간 지배하여 동양인의 피가 섞여 있다. 외침을 많이 받아서 처음에 접근이 어려워도 한번 친해지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국민이다.
한국과는 유사한 점이 많다. 1989년 동구권에서는 최초로 우리와 수교했다. 국토 면적은 한국의 94%로 비슷하며, 1인당 GDP는 2020년 3만 불 정도로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헝가리의 전통 고추는 우리 고추와 매우 흡사하다. 식문화도 맵고 짠 탕 음식을 좋아한다. 고추와 마늘을 음식에 아낌없이 사용한다. 대표 음식인 굴라시(Goulash)는 한국의 육개장과 비슷하여 고기와 각종 야채, 고추를 넣어 우리 식성에도 맞다. 1954년 월드컵 본선에서 우리 팀은 헝가리에게 9 대 0으로 대패한 일이 있었다. 당시엔 헝가리 고추가 더 매웠던 거 같다.
헝가리인들의 연간 고추 소비량은 500g(한국 2.5kg)으로 우리보다 낮지만 고춧가루로 가공하여 수출한다. 헝가리에서 생산된 고춧가루는 최고 품질로 인정받아 유럽 20개국에 수출되어 외화벌이에도 큰 몫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처럼 육묘 이식 재배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파를 하고 기계로 수확한다는 점이다. 고추 면적은 약 2천 ha이고 농가 수는 2천 명이다. 전체 농가의 80%가 직파재배이고 이식 재배는 20% 정도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손이 많이 드는 육묘 이식 재배 방식을 고집할 일이 아니라 직파하여 기계 수확하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고춧가루 종합 처리장을 지역마다 설치하여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 청소년들 식습관이 변하여 김치 소비량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한국의 성인들은 고추 없인 못 산다. 해외여행 시 고추장은 필수 지참 항목이다. 아무리 좋은 고기와 빵이라 해도 쌀밥에 김치만은 못할 것이다. 고추는 매운맛으로 식욕을 촉진시키고, 비타민 A와 C가 많아 건강식품으로 이용되고 있다. 감기를 앓으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먹는 민간요법(俗方)은 조상들의 지혜로, 음식 조리뿐 아니라 약으로도 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추는 우리 식생활과 함께 하고 있다. 사스(독감) 여파로 김치는 이미 세계적인 식품으로 인정됐고, 코로나 - 19 신종 감염병에도 좋을 것이니 우리에게는 산소와도 같은 반찬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이 있다. 동양의 작은 나라이지만 주변 강대국의 수많은 외침에도 꿋꿋이 버텨냈던 것은 작아도 맵고, 당찬 국민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힘은 고추로부터 나오지 않았을까. 인생사 맵기는 고초 당초보다 매울지도 모른다. 남은 인생 정직하고 순박하게 살다 보면 또 다른 삶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신토불이 고추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