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복사꽃 축제
‘고향의 봄’을 노래하면 우리는 꿈속의 꽃동네로 빠져든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에서 ‘도원(桃園)’은 ‘복숭아꽃이 핀 밭’이다.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펼쳐있는 지상의 낙원, 그곳을 ‘무릉도원(茂陵桃園)’이라 하며, 그곳에 우리의 고향이 있다.
임실군 오수면 봉천지역은 들도 넓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로 연중 날씨가 온화한 곳이다. 동네를 감싸는 야산에는 복숭아 과수원이 조성되어 봄이면 복사꽃이 장관을 이룬다. 오래전부터 이곳 복숭아 농가들은 춘궁기(春窮期)에도 소득을 올리는 실속 있는 부자들이다. 매년 초여름이면 남원 복숭아가 오수보다 1주일 정도 먼저 수확된다. 오수 복숭아는 출하시기가 늦어, 판매 가격 차이가 아쉽지만 봄의 전령사는 항상 남원에서 시작하여 오수로 왔다.
봄날 노란 꽃잎은 추운 겨울에 준비된다. 봄꽃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한다. 겨울이 추울수록 봄날의 꽃잎은 더 아름다운 분홍빛을 발산한다. 겨우내 찬바람에 시달리던 메마른 가지에서 향기로운 꽃이 피어오른 것은 생명의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이른 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꽃은 산수유이다. 산수유는 잎이 피기 전에 꽃부터 핀다. 앙상한 가지에서 노랗게 물든 산수유 꽃은 삭막한 겨울 끝자락 농촌에 봄바람을 불러일으킨다. 복숭아꽃도 마찬가지다. 이른 봄에 피는 복숭아꽃은 일 년 전 복숭아가 달렸던 그 자리에 꽃눈이 숨어 있다가 봄철 기온이 오르면 노랗게 솟아오른다.
복숭아 개화 시기는 봄철 온도에 매우 민감하여 조금만 따뜻해도 앞당겨진다. 예기치 못한 서리라도 내리면 며칠씩 늦어진다. 서리가 내리면 복숭아꽃은 자칫 냉해 피해나 수정 불량으로 이어지므로 농가로서는 큰 타격이다. 그래서 꽃 몽우리가 맺힐 때면 서리 없이 무사히 넘어가 주기를 학수고대할 뿐이다. 국지적인 기상변화는 복숭아꽃 개화시기를 늦게 또는 빠르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같은 오수 지역이라도 남향인 봉천리 주변은 개화가 빠르다. 북향인 궁평리는 며칠씩 늦다. 따라서 남원과 오수의 출하 시기가 1주일 차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법정스님도 '남지 춘 신'이라는 말씀에서, '매화는 봄에 햇살을 많이 받는 남쪽 가지에서부터 꽃을 피운다'며 '봄소식은 남쪽 가지부터 먼저 깃들여진다'라고도 하였다. 지리적 차이에 따른 자연현상을 바꿔주는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다. 성수기를 지난 후에 출하할 때의 메리트를 찾아내야 한다.
복숭아꽃은 분홍색이지만 해에 따라서는 붉은색도 피는 조화를 부린다.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촌에 복숭아꽃이 만개하면 마을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다. 봄을 기다리던 사람들을 더욱 설레게 한다. 현직 시절 매년 봄 분홍빛 장관을 연출하는 복사꽃 마을을 그냥 두고 보기엔 너무 아까웠다. 또한 출하시기가 되면 가격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소박하게 만 살아왔던 농가들에게 자극제가 필요했다.
2002년 복사꽃 축제를 열어 많은 사람들과 봄의 천국을 즐기며 지역 특산품을 홍보하였다. '고품질 복숭아를 널리 알리고 상품성을 높여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이벤트가 무기력하던 농가들을 일깨워주었다. 정해진 행사 일정보다 꽃이 늦거나 일찍 피어 애를 태웠다. 그러나 수십 년씩의 지혜가 동원되어 개화시기를 최대한 행사 날에 맞추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한 제1회 임실군 복사꽃 축제 행사는 이 X 규 군수님을 비롯 기관장님들과 많은 주민들이 동참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꽃이 만발한 행사장을 둘러보며 한 해의 풍작을 빌면서 봄의 정취를 마음껏 누렸다. 복숭아의 효능을 소개하는 화판과 야생화를 전시하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복숭아는 꽃도 예쁘지만 과일은 겨울철 움츠렸던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는 귀족의 열매이다. 농가들은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종이박스를 새롭게 디자인하였다. 생산자 정보를 기재하고, 공동판매와 출하 처를 개척하였다. 홍보용 간판을 세우고, 친환경적으로 병해충을 방제하자고 다짐하였다. 농가들은 ‘소득과 직결(直結) 된다’는 공동체 정신으로 가족처럼 뭉쳤다.
『 B 프랭클린』은 “겨울의 추위가 심할수록 이듬해 봄의 나뭇잎은 한층 더 푸르다. 사람도 역경이 없으면 큰 인물이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인생도 그러하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 같은 고난을 견디고 난 사람이 맞이하는 인생의 봄은 더 푸르고 그만한 가치를 느낀다. 복숭아 농가들은 출하시기가 늦어도 장점을 살려내는 지혜를 찾아내야 한다.
임실지역을 떠난 지 20여 년이 흘렀다. 지금도 내 고향 남원을 오가면서 현직 시절 누비고 다녔던 산과 들과 마을들이 정겨운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노랫말처럼 동화 속의 아름다운 동네, 봄부터 주머니가 두툼해지는 부자마을이 되기를 빈다. 복사꽃 축제가 계속되어 전원주택도 들어서고 도시민들이 즐겨 찾는 무릉도원으로 변해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