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 이야기
아파트 주차장에서 후진하다가 “퍽”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주차해둔 다른 차량을 들이받는 접촉사고를 내었다. 운전경력 30여 년이지만 후진하다 사고 낸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후진에는 자신이 있었고 또 후방 카메라로 볼 수 있는데도 잠시 딴생각을 했던가 보다. 내 차를 이동 주차시키고 피해 차량 연락처를 찾아보니 앞 유리창에 있어야 할 휴대 번호가 보이질 않았다. 앞에서 뒷 유리창까지 어디에도 연락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갈 길이 바쁜데”
“내 연락처를 남기고 떠날까?”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가 버릴까?”
“그냥 떠나버린다면 피해 차주의 속이 얼마나 상할까?”
“그래선 안 되지, 기다려야지”
되는 말 안 되는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어떤 젊은 부부가 다가왔다.
“어! 내 차가 왜 이래!” “출근해야 하는데, 허허”
젊은 남자는 두 눈이 휘둥그래 지면서 차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주차해둔 차가 망가졌으니 속이 많이 상했을 터인데도 나에게 화를 내지 않고 헛웃음만 보여서 더 미안했다. 나는 “실수로 차량을 파손시켜 미안하다”며 “수리를 책임지겠으니 정비소에 맡겨달라”라고 했다. 망가진 차는 아무리 수리를 잘한다 한들 원래대로 원상회복될 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기 때문에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파손된 부품 전체를 교체하고, 수리 기간 동안 렌터카 비용까지를 부담해야 할 각오를 하였다. 일단은 출근을 해야 하므로 파손 부분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확인하고 헤어졌다. 보험처리를 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였다.
그날 오후 바로 차량 수리 견적서가 왔다. 번호판이 종이쪽지처럼 찌그러들고 앞 범퍼 일부 페인트가 벗겨진 상태였으므로 번호판은 교체하나 범퍼는 도색 정도의 수리비로 청구가 되었다. 견적 회사에 연락해보니 ‘수리 기간은 이틀 정도이고, 렌트 비용은 고급 승용차이므로 25~30만 원 정도’라고 하였다. 과거에는 차량이 조금만 손상돼도 차주가 새것으로 바꾸어 달라면 교체해 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필요 이상의 과다한 차량 수리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경미한 손상은 교체하지 않고 파손 부분만 보상 수리해주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대법원의 1990. 8.14 판결문에는 "편승수리나 과잉수리 등 사고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비용은 수리비용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라고 판시하였다. 즉 판례는 과잉수리나 편승수리는 손해액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악덕 자동차 정비업소에서는 파손부위를 일부러 더 심하게 부셔서 사진을 남기고, 과잉수리청구를 한 사례도 흔히 있었던 일로 기억한다.
내가 가입한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후속대책을 상의하고 최종 처리방안을 알려달라 하였다. 다음날 보험회사에서 연락 오기를 ‘차량 수리비는 최소한의 경비로 처리하고, 피해 차주는 차량 렌트 비용은 청구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다 해서 50만 원을 넘지 않았으니 내가 예상했던 만큼의 비용 부담이 아니었다. 차량 수리 비용은 정비소와 보험회사가 결정 하지만, 차량 렌트비용은 피해 차주의 마음인데도 청구하지 않았다니 나에겐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피해 차주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 아마도 같은 아파트 거주자이고, 나이 든 사람이 양심껏 차주를 기다리며 미안해하던 나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상대방의 처지보다 내 입장만 먼저 앞세우며, 조금만큼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삭막한 세상인데 마음씨 좋은 젊은 부부를 만났던 것이 다행이었다. 내 보험료 부담과 사고 처리 기록이 남는다 하더라도 훈훈한 이웃이 있다는 것에 위안이 되었다.
뒤 범퍼는 여러 줄 긁히고 5cm 정도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