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고지리 May 26. 2022

창 틀에 맺힌 빗방울

잡초도 시들어가고 있다

오늘 아침 베란다 창틀에 빗방울 몇 개가 대롱대롱 매달렸다. 반가운 물방울이다. 오죽이나 반가웠고 기다렸으면 물방울 몇 개에 카메라까지 들이댔을까. 5월 26일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예보를 믿고 어제 참깨씨를 파종하였는데 빗물 몇 방울 맺히고 말았다. 텃밭농사를 5년 차 하면서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한 달 이상 비가 내리질 않은 경우는 처음인 거 같다. 시들 거리는 작물들이 안타까워 밭 인근 호수에서 물을 퍼다 주느라 손바닥에 공이가 박혀버렸다. 몇 평 되지 않은 작은 터에 이처럼 정성을 들였던 때가 있었던가. 여기서 나온 수확물이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손으로 지은 농산물, 우리 내외가 먹으면 그만일 것을 왜 이리도 집착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내 손으로 뿌린 생명체들이 꽃피고 열매 맺을 때까지는 내가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 일 것이다. 


4월에서 5월까지는 1년 농사를 좌우하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다. 가지, 오이, 토마토, 상추, 당근 등의 채소 종자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야 하며, 겨울을 지낸 마늘 뿌리와 양파 알이 한창 커져야 할 때이다. 고구마 순을 심어야 하고 참깨를 파종해야 하며 감자도 수확을 앞두고 알이 굵어져야 하는 막바지 중요한 시기이다. 요즘 계속되는 가뭄으로 작물들은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생기를 잃었다. 들에는 먼지만 퍽석거리고 땅은 돌덩이처럼 단단해져 버렸다. 모종을 심고 물을 주어도 금방 말라버린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다. 일부러 뽑아내야 하는 잡초까지도 시들 거리는 모습은 내 생애 처음 보는 모습이다. 종묘상에서도 모종이나 종자가 팔리질 않고, 비료값과 비닐 같은 농자재도 수요가 감소되었고 값도 비싸져서 판매량이 줄어 상인들까지 울상이다.

                                                                                                                    

과거 60~70년대는 매년 봄이면 봄 가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모내기를 못할 정도가 되면 마을 어른들은 비를 내려달라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지하수를 개발하여 모터로 물을 뿜어 올리고, 호수나 도랑에 호스를 연결시켜 양수 작업하는 것은 모내기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당시 식량의 자급달성을 위해 정부는 농업용수 확보차 관정개발 예산도 매년 지원되었다. 농가들은 내 논에 먼저 물을 채우려는 욕심 때문에 갈등도 잦았고, 심지어는 물 다툼으로 목숨까지 잃는 일도 벌어졌다. 대하소설 '토지'에서나 어른들이 흔히 하시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리는 "내논에 물들어가는 소리"라 했을 정도이니 농사에서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짐작할 것이다. 지금은 농촌 곳곳에 저수지가 설치되어 제때에 물을 공급해 주고, 지하수가 개발되어 저수지가 마르기 전에는 벼농사는 문제가 없다.

                                                                                     

다만 산간지대 천수답(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하여 농사짓는 땅)이나 도시농부들이 관리하는 텃밭 정도는 비가 없으면 대책이 없다. 그래서 도시 주변에서 텃밭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수돗물을 물통에 담아오거나 할머니들은 음수용 페트병에 물을 담아 작물에 부어주고 있다. 그들은 몸은 힘들어도 하늘을 원망하진 않는다. 그저 작은 생명체들이지만 자식 돌보듯 매일 조금씩의 물병을 들고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은 시들어가는 작물을 내 새끼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농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는 마늘밭

기후정보 포털에 따르면 지난겨울(2021.12월~2022.2월) 우리나라의 전국 평균 강수량은 13.3mm로 평년대비 0 퍼센타일(% ile)을 기록했다고 한다. 즉 전국 단위의 기상관측망을 확충한 1973년 이후 지난겨울은 역대 강수량이 가장 적었던 겨울이란 뜻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다는 인과응보를 알기 때문에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다. 봄부터 토양수분 부족으로 농작물 피해와 식수 부족, 심각한 산불 등의 현상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저지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의 증가와 쓰레기 배출, 환경오염, 폐비닐 방치 등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는 끝이 없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으로 국제 곡물가와 농자재 값은 급등하고, 인도네시아와 미국의 곡창지대는 기상 이변으로 흉작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나라마다 자국의 식량 확보를 위해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세계 곡물가와 자재값 그리고 유류비 인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 정부의 안전한 먹거리 생산 정책과 국가경제발전이 어느 때보다 기대되는 시기이다.   

작가의 이전글 드론 벼농사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