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와 바람이 몰아치는 차가운 공기 사이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함이 스며든다. 그 순간 이미 마음에서 멀어져 간 감정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치 지우개로 지운 종이 위에 흐릿하게 남겨진 LOVE라는 글씨처럼, 그 글씨 주변을 빗물이 적신다. 남아 있는 희미한 흔적 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감정이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후회가 가득하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한때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못다 핀 감정(희망)의 잔이 남아 있다.
기울어진 감정을 살며시 바라본다. 하지만 그 감정을 다시 일으키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흘러간 관계를 붙잡으려 애쓰지 않는다. 물론 미련이 남아 있다.
그렇다 해도 그 미련을 떠나보내는 일마저 나의 몫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내 곁을 지키는 기울어지지 않은 감정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이라도 온전히 지킬 수 있다.
마음속 어딘가, 아직 맞잡지 못한 가능성이 조용히 머문다. 상실과 후회의 어둠 속에서도, 작은 희망이 살포시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