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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갓 지은 밥을 정성스럽게 든 두 손

고봉밥 한 그릇이 주는 위로


그동안 유일하게 멀리했던 전자제품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전기밥솥이다. 나는 시간을 금이라고 여기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철저히 관리하는 편이다. 거기에는 식사에 드는 시간도 포함된다.


즉석밥은 간편해 바쁜 일상 속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배고플 때 전자레인지에 돌린 후 겉 포장을 뜯고 바로 먹기만 하면 된다. 금방 지은 밥과 비슷할 정도로 촉촉하고 부드러워 갓 지은 밥 못지않게 맛있는 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건슬아, 아무리 즉석밥이 편해도, 사람 사는 집에는 밥솥이 있어야지. 내일 정도면 배송될 거야.” 그렇게 새 밥솥은 우리 집 주방에 자리를 잡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말을, 반대로 곰곰이 생각해 본다. 밥솥이 내 눈앞에 있다. 그러니 마음도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쌀을 씻고, 물의 양을 맞추고, 전원 스위치를 누른 후 밥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솔직히 번거롭다. 밥이 되어가는 동안 국이나 찌개, 반찬을 만들며 식사 준비를 하면 되지만, 시간이 없을 때는 조금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맛있는 밥이 완성되었습니다’라는 밥솥 알람이 울리면 설레는 마음으로 즉시 밥솥 뚜껑을 열게 된다. 흰쌀밥 위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풍기는 향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슬고슬하고 맑은 갓 지은 밥이 완성된 순간을 알리는 신호다. 그 밥맛은 어떤 편리한 식사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집밥만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드물다. 누가 했든 간에 그 사람의 손끝이 전하는 맛과 마음이 담겨있으니, 음식의 맛은 둘째 치더라도 이미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밥상이 차려질 것이다.


언젠가부터 즉석밥을 자주 먹지 않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밥솥을 보면 흐뭇해진다. 진짜 배가 고플 때, 마음이 허전할 때,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리워지는 순간마다 밥솥은 나의 진정한 벗이 되어준다.



갓 지은 밥이 잘 지어진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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