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해진다는 건


예전에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산을 써도 옷자락에 빗물이 튀어 축축하고 눅눅한 느낌이 찝찝했고, 은근히 비린내가 스며든 공기마저 에너지를 탁하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밥은 굶어도 옷은 잘 입어야 한다는 나만의 신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스타일에 관심이 많아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유연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흰색 정장을 입는 날이면 더욱 조심스러웠다. 무엇 하나 튈까 봐, 심지어 얼룩이라도 질까 봐, 행동이 저절로 다소곳해졌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실 때도, 마치 우아한 여성처럼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추스르고서, 두 손 모아 커피잔을 잡고, 입을 모아 한 모금씩 들이키곤 했다.



그렇게 평소 습관에 정성을 들이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람은 자연스레 세월에 녹아든다. 예민했던 부분들도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향한 마음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내면이 한결 더 포근해지고 행동도 품위 있게 변해간다. 오늘따라 커피 맛이 유난히 진하고 깊다. 생각이 점점 더 성숙해져 감을 실감하는... 지금 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