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어 이름

by 용간

라시도에게


너희가 앞으로도 외국에서 계속 살게 될까? 아빠는 어려서 외국 문화를 깊게 경험했어. 그래서 지금 십수 년을 외국에 살지만, 나름 잘 적응하고 사는 것 같아.


한국을 떠난 지도 오래됐지만 아빠는 결국 한국 사람이야. 아무리 피자 좋아하고, 빠다 먹고살지만, 아빠는 결국 한국에 묻히고 싶어.


가끔 너희는 다르겠다는 생각을 해. 아무리 매년 한국에 가서 여름방학을 지낸다 해도, 너희의 경험은 다른 한국 아이들과 같지 않을 거야.


좀 무서운 건, 너희의 경험이 엄마 아빠랑도 다를 거란 거지. 생각이 다르면, 마음도 멀어질까 무섭기도 하단다.


너희 이름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했어. 아빠처럼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렵지 않길 바랐지만, 한 편으로는 영어 이름을 주고 싶진 않았거든.


아빠가 박사과정에 있을 때, 어떤 유럽인 선배가 자기도 이름이 미국식이 아니라 직장을 찾을 때 어려움이 있단 이야기를 해줬어. 한국인 선배들은 말할 것도 없지. 성도 서로 비슷하니. 아빠랑 이름이 비슷하고, 수염도 똑같은 고양이 삼촌이랑 아빠를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헷갈려한단다.


그래서 아빠도 영어 이름을 지을까 고민을 많이 했단다. 그런데, 아무리 영어 이름을 지으려고 해도 나 같이 느껴지지 않았어. 데이빗? 다니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그리고 이름 때문에 차별당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자였단다. 참 포부가 컸지?


그래서 아빠는 두 글자 이름의 한 글자만을 미국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도 하지 않아. 아빠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틀려도 돼요, 노력만 보여주면 감사합니다. 당신 이름 저도 좀 틀릴 수 있어요라고 양해를 구하고 있어.


우스운 건, 너희도 아빠 이름 발음 잘 못 하잖아?


그래도 너희 이름을 지을 때 아빠 같은 어려움을 주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첫 번째 조건, 영어로 발음하기 쉽기.


두 번째 조건, 아빠 집의 항렬에 따른 이름 짓기.


우리 집이 옛날에 족보를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희 증조 할아버지가 종중 일을 하시던 그런 뼈대 있는 집안이란다. 아빠 이름도 항렬을 따진 이름이야. 큰 아빠나 다른 삼촌들의 이름이 다 비슷한 것도 그렇고.


너희 이름이 비슷한 것도 그런 이유란다. 뭐, 뿌리를 잊지 말라고.


세 번째, 한자의 뜻. 너희 이름이 때론 외국 이름처럼 들릴 수 있지만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엄마 아빠의 뜻이 들어가 있단다. 뜻을 펼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길이 되어주라고.


그렇게 라시도 너희 이름이 태어났어.


앞으로 너희 이름을 틀리게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을 거야. 너희가 계속 외국에 산다면, 그냥 영어식 표기로 이름을 바꾸고 싶은 생각도 들 거야. 너희가 정할 일이겠지만, 너희 이름으로도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엄마 아빠의 아이들인 것도.


너희 아빠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늦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