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통영의 여정
이번 연휴가 긴 추석의 기간에 남편의 강력 권유로 시댁 산소로 가게 되었다. 오랜 기간 가지 못한 시간과 '다음'과 '나중'이라는 단어가 나를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인 듯하다. 기차로 가서 늦은 템포로 나의 체력을 맞춰갔다.
요즘 진주는 남강의 진주성을 따라 유등 축제가 펼쳐져 있다. 저녁에 가 보니 이렇게 인구밀도가 높았나 싶게 많은 인파로 들썩였다. 임진왜란의 승리와 패배가 머물러 있던 곳은 전래동화에 보는 토끼, 호랑이, 미래의 우주선의 여러 가지 모양이 넘쳐나 있었다. 남강위의 부포교는 티켓을 사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시민들의 쉼터가 되는 자연 성곽의 모습이었다.
박경리 기념관 ,통영
시댁 산소는 진주 시내가 아니고 진양호로 들어간 깊은 곳이다. 남강댐이 생겨 수몰지구가 되어 이주된 마을 쪽이다. 진양호의 거대한 호수는 물 반짝임으로 가득했다.
남편의 어린 시절 네모 모양의 얼굴을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6살 사진이 생각났다.
시부모님, 시증조부님은
"주머니에 손을 빼라."
'안 뺀다."를 반복하며 결국 고집 센 어린이의 승리가 되었다.
주머니 손 넣은 사진은 지금의 남편을 있게 했다.
남편은 염소 먹이 주러 가기도 하구, 똘똘한 황구 이름 독구와 놀이도 했을 곳을 상상했다.
이번 산소의 여정은 돌아가신 시어른들의 시간을 교차해 보게 되었다. 아무 감흥 없던 산소길에 개인의 스토리가 되어있다는 게 나의 달라진 시선이었다.
그리고 기억의 다리를 오고 갔다는 상상으로 달려나왔다.
통영은 여러 문인들을 배출한 곳이다. 그중 박경리 작가님의 기념관이 있다. 지금 보수 중이고 2026년에 다시 개관한다고 한다. 추모공원은 들여다볼 수 있어 잠시 다녀왔다. 긴 '토지'는 아직 못 보고 '김 약국의 딸들'을 읽었었다. 그래서 시는 잘 몰랐는데 시가 줄이어 세워져있다.
그중 '문필가'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붓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붓끝에
청풍 부르는 소리 있어야
그게 참여다.
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그게 참여다 .
박경리작가
시를 통해 그분의 문학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견고한 큰 바위 같은 그분을 짐작해 본다.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목이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 본들 도로무익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박경리 작가--
이곳은 정창훈 변호사라는 분의 기증과 뜻 모은 기금으로 한산도 앞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박경리 작가의 동상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라는 글귀와 함께 바다를 보고 계시다.
강구안에 새로 생긴 브리지가 있어 남망산 공원을 바로 연결한다. 높은 고개와 데크에서 보는 시야는 낮과 저녁을 다르게 비춰준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라이트를 조성해 놓았다.
밖은 봄철 날 따지기의 누긋하니 푹석 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도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건만 나는 하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뜰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러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아서라 세상사>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 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백석 작가 --
골목에는 백석의 시가 게시되어 있다. 백석의 시에 보이는 삶의 서정이 그대로 나의 시가 되어 바다에 글이 된다. 이번 여행은 내게 비춰지는 흘림체가 되어 조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