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버림> 책 리뷰, 독후감
데이비드 호킨스
놓아 버림으로써 우리는 감정적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하여 고통의 주된 원인은 애착이라는 모든 현자의 견해는 과연 옳은 것임을 몸소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은 감정이 몰아가는 것이다. 개개의 감정은 다시 겹겹이 쌓인 수많은 생각에서 나온다.
마음만 먹으면 의식적으로 몇 번이든 놓아버린다. 내가 어떻게 느낄지는 내게 달린 일이다. 나는 더 이상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나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는다. 더 이상 반응의 피해자가 아니다.
우리는 부정적 감정과 마음가짐, 믿음을 어마어마하게 쌓아 둔 저장소를 지고 다닌다.
생각이나 일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감정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감정이 쌓여 생긴 압력으로 인해 생각이 일어난다. 하나의 감정이 일정 기간 동안 수많은 생각을 자아낼 수 있다. 따라서 감정을 놓아버리면 그와 결부된 모든 생각에서 해방된다.
<감정과 정신 기제>
1. 억압과 억제: 억압은 무의식, 억제는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어떤 감정을 억압하는 것은 그 감정에 대한 죄책감과 공포가 너무 커 의식적으로 절대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감정이 생겨날 조짐이 보이면 그 감정을 무의식에 곧바로 쳐넣는다. 그런 다음 다시는 자각하지 않으려고 다채로운 방법을 동원해 감정을 다룬다.
2. 표출: 부정적 감정을 표출해 내면의 압력을 내보내고 나면 억제할 수 있는 만큼만 남는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감정을 표출하고 나면 감정에서 자유로워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정반대다. 그 이유를 꼽자면, 첫째, 어떤 감정을 표출하면 그 감정은 증식되면서 더 큰 에너지를 얻는 경향이 있다. 둘째, 그 감정을 표출한 까닭에 나머지 감정은 알아차릴 수 없도록 억제되고 만다.
부정성 표출은 관계를 악화시키고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3. 회피: 필사적으로 무의식 상태에 머무른다. 자신과 마주하기를 몹시 두려워한다. 잠시라도 홀로 존재하는 것을 끔찍이 겁낸다. 그래서 계속 미친 듯이 행동한다. 책을 읽고, 음악을 틀고, ...
감정을 놓아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감정 이면의 에너지를 즉각 포기하고 항복함으로써 압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얻는다. 즉 끊임없이 놓아 버리면 쌓인 압력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놓아 버리면 기분이 즉시 나아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몸의 생리작용에도 변화가 생긴다. 피부색, 호흡, 혈압 등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 보다 행복하고, 보다 사랑에 차 있고, 보다 느긋해진다.
보통 그들이나 그 일이 스트레스의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라 느끼는 것은 사실 억압된 감정이 주는 마음속 압력이 새어 나오는 것일 뿐이다. 스트레스의 진정한 근원은 안에 있다. 밖에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외부 자극은 그 두려움을 촉발시킬 뿐이다. 안에 두려움이 많을수록 세상을 보는 눈도 앞일을 겁내고 조심하는 쪽으로 바뀐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우리의 반응성 수준에 있다. 더 많이 포기하고 항복할수록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스트레스로 인한 피해는 자신의 감정이 낳는 결과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상황도 나를 화내게 만들기가 아주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부 사건을 원인이라고 탓하면서 스스로를 그런 외부 원인에 당한 무력하고 순진한 희생자로 본다. 억제되고 억압된 감정이 발산 수단을 찾다가 외부 사건을 방아쇠 겸 핑계 거리로 삼으면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기회만 생기면 증기를 내뿜으려고 벼르는 압력솥과 같다. 언제든 폭발할 수 있도록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화난 것은 나 자신이 노여움으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공포가 없으며 애착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잃을 수 있다는 공포로 인해 과도한 애착과 소유욕이 힘을 얻는다.
억압된 슬픔이 큰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삶에서 슬픈 일을 만들어 낸다. 겁 많은 사람은 겁 나는 일을 촉발시킨다. 화난 사람은 짜증나는 상황에 둘러싸이고, 자부심에 찬 사람은 계속해서 모욕당한다.
감정은 진동하는 에너지 장을 방출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결정한다.
사랑은 사랑을 더욱 활성화시킨다. 그래서 내면에 부정성을 많이 놓아 버린 사람은 사랑이 담긴 생각, 사랑스러운 사건, 사랑스러운 사람들에 둘러싸인다. 의식에 번영이 가득한 사람은 삶에 풍요를 끌어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다.
놓아 버림?
1.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기
2. 감정이 일어나도록 놓아두기
3. 감정과 함께 있기
4. 감정을 바꾸거나 어떻게 하려는 바람 없이 감정 스스로 제 갈 길을 가도록 놓아두기
감정을 그저 느끼기만 하면서 어떻게든 바꿔 보려는 노력을 모두 항복하는 것이다. 감정에 저항하고 싶은 바람을 놓아버려라. 저항 때문에 감정이 지속되는 것이다. 감정에 저항하거나 감정을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감정이 달라지면서 강도가 약해진다. 감정에 저항하지 않으면 감정 이면의 에너지가 사라지면서 감정이 없어진다.
놓아 버릴 때는 모든 생각을 무시한다. 감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생각에는 신경을 끈다.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며 스스로 강해져 다른 생각을 더 많이 일으킬 뿐이다. 생각이란 감정이 생긴 까닭을 설명하려는 마음의 합리화에 불과하다.
항복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해 격한 감정이 없음을 뜻한다. 그런 일이 생겨도 괜찮고,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 자유로워지면 애착을 놓아 버린다. 어떤 것을 즐길 수는 있어도, 그것이 행복에 꼭 필요하지는 않다. 자신 이외에 사물이나 사람에게 점점 덜 의존한다.
어떤 감정을 항복했는데도 그 감정이 돌아오거나 계속 이어질 때가 있다. 항복할 것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오고 가지만 나의 감정이 곧 나는 아니며 진짜 나는 감정을 지켜볼 뿐임을 깨닫는다. 관찰하고 자각하는 나는 늘 똑같다. 변치 않는 목격자가 존재한다.
모든 생각은 결국 저항이라는 사실. 생각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게끔 마음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다. 생각은 모조품이다. 실상을 보기 어렵게 만드는 우스꽝스러운 환상이다. 생각을 좇으면 계속해서 생각에 점유될 뿐이다.
특정 감정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떨쳐 버릴 수 없다는 느낌을 그냥 항복하라. 느낌을 그대로 놓아두고 그것에 저항하지 말라.
수백만 가지의 생각을 단 하나의 감정으로 대체할 수 있다. 바탕에 깔려 있는 감정을 잊거나 무시하거나 느끼지 못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자각하지 못하고 대신 갖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지어낸다.
생각보다는 감정을 지켜보면 자기 자각이 빠르게 증대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행동 이면에 깔려 있는 감정적 목표가 의식에 떠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엇 때문에? 라는 질문을 사용하는 것이다. 답이 나올 때마다 그에 대해 또다시 무엇 때문에 라고 질문하여 근본 감정이 드러날 때까지 반복한다.
공포를 극복하고 행복을 성취하는 것 외에 다른 목표는 없다. 감정 자체는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안전을 추구하도록 몰아가는 기본적 공포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미해결된 과거의 사건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세상을 인식하는 데에 악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런 생각과 감정이 삶의 어떤 부분을 망가뜨렸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 일이 계속해서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는지 자문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건을 새로운 맥락에서 이해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의의와 의미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평가한다. 과거의 곤경이나 트라우마 안에 선물이 숨어 있었음을 인정한다. 아무리 비극적인 경험이라 해도 모든 인생 경험에는 교훈이 숨어 있다. 경험 속에서 숨은 선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치유가 일어난다.
삶을 겁내는 것은 감정을 겁내는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다. 감정을 정복하면 삶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자신감이 커져 기꺼이 더 큰 모험을 한다. 감정으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삶의 위기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극과 극에 마주친다. 그 사람을 증오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이번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성장할 것인가, 분개하고 억울해 할 것인가?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결점을 눈감아 줄 것인가, 화내며 따지고 들 것인가?
모든 감정 경험은 올라가거나 내려갈 기회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감정 혼란을 움켜쥐고 싶은지, 놓아 버리고 싶은지 선택할 기회가 있다.
어떤 만족을 얻으려는 것일까? 얼마나 하찮은 것에 선뜻 만족하려는 것일까? 분노, 증오, 자기연민, 억울함. 이 모두에 하찮은 싸구려 보상. 하찮고 은밀한 만족감이 들어 있다. 고통을 움켜쥐는 데서 오는 이상야릇한 쾌감이 분명히 있다. 이 쾌감으로 인해 벌을 받아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 우리의 무의식적 요구가 충족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 동안이나 계속 괴로워하고 싶은가?이다. 언제가 되어야 기꺼이 괴로움을 포기할 것인가? 그만하면 되고도 남는 것이 언제인가?
남이 잘못한 일에 내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려는 셈일까? 얼마나 자학하면 될까?
내면에서 부정적 감정에 매달리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의 왜소함이다. 왜소함은 심술궂고, 옹졸하고, 이기적이고, 경쟁심 많고, 인색하고, 의심 많고...한 측면이다.
내가 나를 보는 대로 세상이 나를 볼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관대하고 너그럽고 다정하며 자신의 내적 위대함을 느끼는 사람으로 상상한다. 내가 나를 그렇게 여기면 남들도 나를 그렇게 여긴다.
용서하는 사람이 되는 일에 대한 저항을 계속해서 놓아버리면 놀랍게도 용서하는 마음이 용솟음친다. 우리 천성의 일부는 항상 기꺼이 용서하길 원했지만 스스로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음을 점차 알게 된다. 분한 마음을 품는 것으로 상대를 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을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싶은 바람이 있다. 화해하고, 잘못을 바로잡고, 감사를 표하고, 바보라 여겨져도 상관없다는 바람이 있다. 부정성을 놓아버리고 사랑을 선택할 때 진정한 보상을 얻는다. 이때 혜택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다.
마음은 과거가 되풀이되리라는 예상을 미래에 투영한다.
모든 비탄과 애도는 애착에서 비롯된다. 애착이 있으면 의존이 생기고, 의존은 그 특성상 상실의 공포도 내포한다.
사람마다 내면에는 아이와 부모, 어른이 있다. 그래서 비탄이 올라올 때 이렇게 자문하면 좋다. 나의 내면에 있는 아이와 부모, 어른 중 어느 것이 이 감정을 일으키고 있을까? 내면의 어른도 비탄을 느끼지만, 어른은 불가피한 일을 받아들인다. 영구적일 수 없는 것이 살므이 현실이란 점을 내면의 어른은 유감스럽지만 받아들인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낭만적인 관계는 평생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애완견은 언젠가 죽을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실을 실제로 경험하기에 앞서 애착의 본성으로 인해 상실을 두려워하는 상태가 먼저 찾아온다. 이 상태를 방어하기 위해 애착의 강도를 높인다. 그러나 바로 이런 꼼수 때문에 관계가 깨지는 일이 많다. 상대방은 자기가 구속과 통제를 받는다고 느끼는 만큼 소유욕 강한 애착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마음속에 품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기 쉬워서 상실을 두려워하는 상태가 역설적ㅇ로 상실을 일으키는 기제가 될 수 있다.
특정 물건이나 사람을 잃는다면 어떤 감정이 생길까? 상실이 예상될 때 상실감과 관련된 다양한 공포를 해결하는 방법은 감정 복합체를 해체한 다음, 낱낱의 감정 요소를 놓아 버리는 것이다. 대상은 나에게 어떤 이미일까? 감정 면에서 내게 어떤 봉사를 할까? 사랑, 동료애, 헌신, 재미, 기분 전환. 대상을 잃으면 이런 감정상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을까? 이런 점을 살펴보면서 공포의 일부를 인정하고 포기할 수 있다.
삶 속의 만남이나 소유물은 그리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데서 분노가 나온다.
비탄의 감정은 죄책감과 결부된다. 상실은 벌을 받은 것이라거나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달랐으면 그런 일을 미리 막았을 거라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다정할수록 비탄과 상실에 상처받기 어렵고, 애착을 가질 필요도 덜하다. 우리 내면의 큰나라고 하는 것은 사랑을 구하기보다 그냥 사랑한다. 주는 즐거움과 사랑하는 즐거움에서 내면의 환희가 일어난다.
행복의 근원을 안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세상을 잃는 상실에 면역이 생긴다.
마음에 품은 대로 실현되기 쉽다. 한결같이 마음에 품고서 에너지를 불어넣은 생각은 마음에 품었던 형태대로 삶에 나타나기 쉽다는 뜻이다. 이렇듯 공포는 두려운 생각을 낳는다. 두려운 생각을 마음에 품을수록 두려운 일이 일어나기 쉽고, 그 일이 다시 공포를 증폭시킨다.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남이 퍼붓는 비난을 믿지 않고, 가치 있는 인간이 되지 못한 것으로 못 박으려는 교묘한 시도에 당하지도 않는다.
그 사람은 본디 천진한 데다가 발전하려고 무던히 애쓰다 보니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도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를 사랑하고 보살필 수 있지 않을까?
뭔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내게 없음을 뜻한다. 즉 그것이 내 것이 아님을 뜻한다.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나와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마음의 거리가 생긴다. 이 거리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장애물이 된다.
욕망의 감정을 항복하고, 대신에 목표를 선택해 사랑스럽게 마음속에 그리고, 그것이 이미 내 것임을 보고 있으니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놓아둔다.
개인적인 목표를 몇 가지 적은 다음, 이에 대한 욕망을 놓아버린다. 목표를 확인한 다음, 목표에 대한 바람을 놓아 버린다. 완전히 항복했다는 뜻은 아파트가 생기면 좋고 생기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기이하게도 무의식은 우리 스스로 가질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갖게 한다. 자신의 부정성이 가질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줄어들게 하고 남에게는 쉽에 흘러드는 풍요를 무의식중에 거부한다.
분노의 또 다른 근원은 자부심이며 그중에서도 자기만족이다. 개인적 자부심이 먹이를 주어 분노를 번식시키곤 한다. 자부심의 근원 중 하나는 자기 희생과 관련이 있다. 내가 희생한다는 식으로 나타난 작은 자아가 타인과의 관계에 결부되면, 화를 내려고 미리 준비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타인은 대개 나의 희생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의 기대를 깨기 쉽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원하고, 욕망하고, 고집하는 바가 있으면 상대방은 그것을 압박으로 느낀다. 그 결과 무의식중에 저항하게 된다.
우리는 남을 위해 하는 일에 대해 비밀스럽게 자기 만족을 느끼고 있어서, 나의 희생을 인정받지 못할 때면 성취에서 오는 자부심 때문에 쉽게 분노한다. 이런 분노를 상쇄하는 법은 자부심을 인정해 포기하고, 자기연민에서 즐거움을 얻고 싶은 욕망을 항복하고, 타인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선물하는 일로 보는 것이다. 그럴 때면 타인에게 베푸는 환희는 그 자체가 보상이 된다.
알아주기는 관계의 비밀 중 매우 중요한 것이다. 타인이 내게 하는 행동에는 언제나 숨은 선물이 들어 있다. 그 행동이 부정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안에는 나를 위한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내가 마음 속으로 알아주지 못한 것을 내게 되비춰 준다. 신경 써야 하는 것을 바라보도록 나를 몰아붙인다.
분노는 무력함과 취약함을 드러내는 표시다. 분노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무기를 넘겨주는 것과 같다. 적이 왜 필요하지? 적 하나를 추가하지 않아도, 우리 삶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들은 이미 충분하지 않나?
그 사람이 아니면 내게 분노와 울분을 일으킬 만한 성질을 똑같이 지닌 다른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내가 마침내 내면의 화난 상태를 해결할 때, 비로소 그런 일은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주위에서 나에게 잘못한 일을 일일이 세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아름다움과 기회를 보는 데 시간을 들이고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자부심을 포기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존감이 생긴다. 자부심보다 높은 감정 상태는 사랑하는 상태다. 사랑하면 마음속에 가치의 문제는 떠오르지 않는다. 방어하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떤 것을 순전히 사랑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입장은 견고하기 때문에 공격이 불가능하다.
자부심에는 마치, 자부하려는 어떤 것이 그 자체로는 인정받을 만하지 않은 양, 인정해 달라고 양해라도 구하는 듯한 미묘한 인상이 있다. 사랑과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에는 옹호자가 있을 필요가 없다.
지구상의 각 개인은 모두 우주의 법칙과 같은 완벽성을 펼치고 있고, 기르고 있고, 배우고 있고, 삶에 반영하고 있다.
진정으로 겸허한 사람은 굴욕을 느낄 수 없다. 굴욕에 면역이 되어 있다. 방어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타인이 가하는 비판적 언사는 비판자 자신의 내면 문제를 드러낸 것으로 여길 뿐이다.
요즘은 어떤 것에 얼마나 큰돈을 썼는지 떠벌리는 것이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지위의 상징이 된다. 그들의 가치관에 슬픔을 느꼈고, 자아 존중감이 없다는 사실에 연민을 느꼈다.
무엇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갖고 있는지, 즉 자신의 의식 속에서 어떤 틀 안에 갖고 있으며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사물에 내 것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주인 의식에 자부심이 따르게 되어 곤란하다. 소유하려는 욕망을 놓아 버리면 취약성을 줄일 수 있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단어를 쓰면 된다. 내 셔츠가 아니라 하나의 셔츠라고 하는 것이다. 내 의견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이라고 여기면 상처받을 일이 없어진다.
누구나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삶은 점차 발전한다는 점 뿐이다.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기꺼이 의견을 바꿀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은 강할수록 더욱 유연해지고 모든 이로운 것에 마음을 연다.
용기 수준의 사람은 융통성이 있고 타인을 염려하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좋은 부모, 좋은 상사, 좋은 시민이 된다. 전반적인 행복까지 염려한다.
받아들임의 상태에는 아무것도 바뀔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벽하고 아름답다. 인심 후하게 줄 뿐 돌려받을 기대도 하지 않는다. 모자란 점이 있더라도 기꺼이 사랑하며 눈감아 준다.
어떤 것도 악이라 심판하지 않고, 일을 망치는 것과 일에 가장 알맞은 것이 무엇인지를 쉽게 안다.
다른 사람의 신념과 행동이 나와는 매우 다르더라도, 삶을 이해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서 그들이 얻는 견해가 그들 자신에게는 타당하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사랑은 타인에게서 그의 결점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키운다. 좋은 점에 관심을 집중한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어떻든 간에 사랑한다. 조건 없이 준다. 아무런 단서도 붙지 않는다. 아무것도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타인의 사랑스러움에 빛을 비춘다.
용서하려는 자발성. 용서하면 사건과 사람을 새로운 맥락에서 고려해 못됐다거나 마음에 안 든다라고 보지 않고 단지 부족하다라고 본다.
우리는 악을 증오하는 대신, 사람들이 그 같은 부정성에 압도되는 것에 슬픔과 연민을 느낄 수 있다.
스트레스는 자신의 안전이나 신체 평형 상태에 대한 진짜이거나 상상인 위협을 감지하고 일어나는 반응이다.
명상 수행은 스트레스 및 우울의 감소와 상관 관계가 있다.
감정이 올라올 때 부정적 감정을 놓아 버리는 법을 배우고 나면 힘든 상황에서 더 침착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 잘 처리할 수 있다.
마음과 몸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주목해야 할 자극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주는 즉각적인 약화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들면 곧바로 몸이 약해지며, 몸에 흐르는 에너지 균형이 깨진다.
마음이 품고 있는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신념은 신체 계통 전체에 온갖 영향을 미친다.
부정적 신념을 받아들이는 민감도는 애초에 품고 있는 부정성의 양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긍정적인 마음은 부정적 생각을 받아들이는 대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거부한다. 흔히들 품는 부정적 발상을 믿지 않는다. 알다시피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자책하게 하거나 겁 많은 사람이 어떤 병에 두려움을 갖게 하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놓아 버릴수록 더욱 다정해진다. 점점 더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하는 일에 시간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기면서 삶이 바뀐다.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이 나에게 다르게 반응한다. 나는 느긋하고, 행복하고, 태평하다. 사람들이 내게 끌리는 것은 내 주위에 있으면 편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몸이다 -> 나는 몸이 있다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나는 ( )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무한한 존재다. 괄호 안에는 위험으로 여기도록 내 마음에 프로그래밍된 질병이나 물질을 뭐든 넣는다.
몸에는 어떤 감각도 없다. 마음은 더 큰 힘이 있는 곳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인식을 바꾸면 몸도 그대로 따라 간다.
돈이 그 자체로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돈으로 얻고 싶어 하는 감정적 만족이다. 돈에 대한 욕망의 이면에서 자신의 목표 중 하나가 존경받는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임을 발견했다고 하자. 이 발견으로 방금 알게 된 것은 내가 관심 있는 것이 돈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자아존중감과 내면적 가치를 느끼는 것에 관심이 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고 돈이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한 자아 존중감과 자긍심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내적으로 자신 없는 면이 너무 광범위해서 아무리 큰돈을 들여도 극복할 수가 없다. 내면이 작게 느껴질수록 그런 내적 왜소함을 보상하기 위해 더욱 막대한 권력과 돈, 매력을 축적해야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황금 제조법이 있으면, 황금 자루를 어깨에 멘 채 그에 따라오는 모든 걱정과 불안을 함께 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내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어서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그대로의 존재를 사랑한다. 다른 사람을 더 이상 이용할 필요가 없고, 설득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타인을 향하는 모든 감정에는 자신이 내면에서 불완전하다는 기본 신념이 포함되어 있고, 그러므로 타인을 목표에 이를 수단으로 여기고 활용한다. 원하는 대로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지 못해도, 환상을 가지고 기대하는 수준에서라도 타인을 계속 활용하려 한다. 관걔 속에서 경험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이 상상 속에서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생각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거나 드러내 보여 주었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은 항상 타인에게 영향을 주어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웃을 때는 세상이 함께 웃는다. 그러나 울 때는 혼자 운다. 끝없이 비탄에 젖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떠난다. 만성화된 비탄은 조기 노화와 피로를 불러오고, 남을 싫증나게 만든다.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발생할 법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살펴본 후에 시나리오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살펴보고, 감정을 포기하는 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자부심을 살펴보면 대개 진정한 자존감의 대체물임을 알 수 있다. 불행하게도 자부심은 부러움이나 경쟁심, 심지어 증오를 불러 일으키거나 쉽게 이용해 먹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누가 나를 좋아하기를 더 이상 바라지 않으면, 어느새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 남들의 구미에 맞추고 그들을 조종해서 인정받으려 하지 않으면, 어느새 정말로 존경을 받는다.
나는 이기고 상대는 진 상황의 대가는 증오와 낮은 자존감이다.
타인이 일시적 질투나 반발을 보여도 용서한다. 자연스러운 일일 뿐임을 안다. 내가 일시적으로 분개할 만한 상황을 알아보지만, 또한 내가 울분을 놓아 버릴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우리의 책임은 노력하는 것까지며 결과까지 확정지으려고 애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타인에게 원하는 바가 있어 생긴 기대와 욕망의 압력을 항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승낙하거나, 애초에 내가 바랐던 일에 스스로 알아서 착수하기도 한다.
설사 변화가 없더라도 상황에 대해 더 이상 언짢지 않을 것이다. 이득을 얻지 못할 때도 간혹 있지만 그때는 알맞은 시점에서 이 일로 우주가 내게 빚졌다.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선행이 화답받지 못함을 아는 것도 위대함의 일부다.
참을성 있는 사람과 잘 지내기란 아주 수월한 일이다. 참을성 있는 사람은 끝내 원하는 바를 얻는다.
경쟁심, 자기 회의감, 불안감, 무능력감,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성공을 막는다.
자존감이 낮아 쉽게 낙심하고, 쉽게 낙심해 실패를 예상한다.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파는 일 자체를 파는 사람보다는 사는 사람에게 이로운 맥락에 둔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포함한 관계자 모두에게 최선인 것을 마음에 품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육체적 감각에 꼬리표나 이름 붙이는 일을 놓아 버리면 자가 치유 과정이 한결 빨라진다.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꼬리표와 이름을 붙이는 대신, 그냥 감정을 느끼면서 감정 이면의 에너지를 놓아 버릴 수 있다. 감정의 에너지를 알아차려 포기하기 위해 감정에 공포라는 꼬리표를 붙일 필요는 없다.
놓아버림 기법을 쓰려면 내면으로 들어가서 부정적 감정이 올라오는 대로 인정하세요. 감정을 억제하지도 말고 터뜨리지도 말고, 올라오게 놔두세요. 그런 다음 주의를 감정에서 다른 데로 돌리세요. 주의 전환은 부정적 감정에 탐닉하지 않을 것을 택하는 행위입니다. 가구 배치를 조금 바꾸거나, 창문 블라인드를 올렸다 내렸다 하거나,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거나, 커피 한잔하는 시간을 갖는 등의 행동을 합니다.
상대방이 문제 삼는 바와 표현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 문제의 열쇠는 상대가 선호하는 바를 걸핏하면 비판하는 일과 자신의 성향에 대해서는 이것이 제대로 라며 자부하는 일을 놓아버리는 것에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비판과 비난, 통제를 놓아 버립니다. 상대가 현재 상태에서 달라지기를 바라는 기대를 놓아 버립니다.
날 도울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돕게 하는 것이 너그러운 것입니다. 타인이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성과를 적어 놓을 공책. 거기에 끊임없이 항복할 목표를 적고 그 이후의 결과가 어떤지를 덧붙여 적어 나갑니다.
분노는 강함보다는 약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꾸어 놓을 수 없는 삶의 측면이 많지만, 있는 그대로와 다르기를 바라는 기대와 욕구를 놓아 버릴 수는 있습니다.
다음 순간에 대한 기대를 놓아 버리고, 이 순간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놓아 버리고, 지나간 순간을 붙들려는 노력을 놓아 버리세요. 방금 일어난 일에 매달리지 말고 놓아 버리세요. 곧 일어나리라 생각하는 일을 통제하지 말고 놓아 버리세요. 그러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한 공간 속에서 살 것입니다. 형언할 수 없는 무한한 평화가 존재합니다. 이제 나는 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