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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Feb 26. 2024

영원히 13살이 무서웠으면.

6학년은 처음이라

   

 우리 반 13살들이 너무 좋다. 매년 역대급이라고 말하지만 이번은 진짜 역대급이다. 확실하다. 이보다 더 좋은 아이들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어떤 아이들도 이렇게까지 교사를 편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지난 해의 아이들을 떠올려본다. 개개인은 좋았으나 그들 간의 다툼이 많았고, 학폭 위기도 몇 번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와 통화해야 하는 일도 굉장히 잦았다. 아, 또 머리가 아파진다. 그에 비하면 올해 아이들은 정말 편하다.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없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틈틈이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서로 갈등 없이 사이좋게 잘 지내고 해야 할 일들을 알아서 척척한다. 다들 착하고 순둥하고 귀엽다. 말이 좀 많기는 해도. 예쁜 녀석들.     

     



 13살이랑 잘 맞는다. 작년에 먼저 6학년을 맡아본 친한 동기가 '6학년은 말이 통한다.'라며 해볼 만하다는 식으로 조언을 해줬는데 그 표현이 딱 알맞다. 내가 하는 유머에 다 같이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들. 띠동갑을 넘어서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서로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들. 서로의 감정을 눈치채고 해야 할 행동을 하는 순간들. 어느 노래 제목과도 같이 내가 '야!'하면 아이들이 '예!'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아 13살, 재미있다. 특히 2학기 후반이 되니 더 잘 맞다. 서로가 뭘 싫어하고 뭘 좋아하는지 잘 알고 그에 맞춰 행동해서 더 그런 것 같다.     

     



 13살이 정말 좋은 요즘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언제까지 그들과 잘 맞을지 불안하기도 하다. 일이 잘 풀리면 풀리는 대로 불안한 성격이라 그런가. 언젠가, 경력이 많으신 선생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선생님, 올해 6학년 처음이라며? 6학년 힘들어. 그전에는 몰랐는데 육아휴직했다가 복직하고 나니까 애들이 딱 어렵더라. 안 잡히더라고." 하. 나에게도 먼 미래가 아닐 것이다. 지금이야 젊으니 내가 보내는 관심과 애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분명 그러한 관심을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나이가 들고 세대 차이가 나는 순간, 아줌마 선생님을 넘어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13살이 거북해하는 관심과 애정을 쏟는 꼰대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정말이지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그간 내가 만났던 선생님들 중에 연세가 좀 있으셔도 좋았던 선생님을 떠올려보았다. 그 선생님들의 특징을 분석해 보면 공통점이 있을 것이고 그걸 본받으면 도움이 될 터이다. 그리하여 내가 떠올린 선생님은 고등학교 수학선생님과 사회 선생님이다. 두 선생님 모두 4~50대의 평범한 아줌마 선생님이셨다. 외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두 선생님 모두 쿨하고, 적당한 관심으로 우리를 대해주셨다. 사사로운 것에 집착하지 않고 눈 감을 건 눈 감아주시고, 그러면서도 할 말 다 하시는. 좀 시원시원한 느낌이랄까. 어찌 보면 중성적인 매력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업을 진짜 잘 하셨다. 또.. 뭐랄까 우리 눈치를 좀 보시고 살살 달래주시는 느낌도 들었다. 여러 특징들을 나열했지만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를 "존중"해주셨다고 표현하고 싶다. 나이가 어리고, 미성숙하다고 해서 무시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 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나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모든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으셨다.     

     



 13살들과 내가 잘 맞았던 이유도 내가 아이들을 존중해 줘서 그런 건 아닐까? 아, 정정한다. 존중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 눈치를 많이 보고, 살살 달래주는 것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처럼 말이다.) 13살이 처음이라 조금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다는 말이 있듯, 어쩌면 내가 무서워서 했던 눈치 보기가 아이들에게는 존중으로 다가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작은 것 하나 결정할 때도 애들한테 의견을 물어보고 그대로 한다. 또 일정을 부득이하게 바꿔야 할 때 (예를 들면 체육수업을 옮길 때) 충분히 그 이유를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납득시킨다. 특히 아이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속상해하는 일이 발생하면 사정을 세세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인데, 미안한 일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확실하게 말한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런게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었던 여러 이유들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설명해 주는 게 귀찮을 때가 있다. '그냥 하면 되지, 하나하나 따지지 마라.'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고 납득시킨다. 13살이라 하더라도 무섭기 때문이다.     

     



 13살들의 눈치를 보고 무서워하는 교사로 언제까지나 남고 싶다. '이 조그만 것들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하는 생각이 영원히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젊고, 저 경력 교사라서 가능한 마음가짐인 것 같아서 더 그러고 싶지 않다. 지금 이 마음 그대로 남은 40년의 교직생활을 보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되는 만큼 최대한 오래, 어쩌면 영원히 13살이 무서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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