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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Feb 26. 2024

우산을 살 땐 아무리 값이 비싸더라도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산다.

 비가 온다. 이번 주 내내 비가 올 거라고 했다. 매일 산책을 하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기에 어쩔 수 없이 패딩을 걸치고 신발을 신는다. 우산을 찾는다.     


아, 내 우산 차에 있지.     


차 트렁크에 넣어둔 우산을 깜빡했다. 차 키는 방에 있다. 즉 애써 신은 신발을 벗어야 한다. 게다가 지하 2층까지 내려가서 차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낸 후 다시 1층으로 올라가는 수고로운 과정을 해내야 한다.     


귀찮다.     


그냥 언니 우산이나 (조금 망가진)일회용 우산 쓸까?     


잠시 고민하다 결국 생각을 고쳐먹고 신발을 벗고 치키를 챙긴다. 내 우산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우산에 대한 애착이 있다. 벌써 5년이 넘게 단 하나의 우산만 사용하고 있다. 꼭지부터 갈고리 모양의 손잡이까지 온통 검정색인 장우산이고, 무늬는 없지만 흰색으로 C의류회사의 로고가 심플하게 적혀있다. 세상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쉽다는 우산을 5년 동안 잘 간수했지만 그런 나에게도 딱 한 번 우산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운동을 하던 헬스장에 두고 온 것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금방 다시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우산에 핸드폰 번호가 적힌 네임스티커를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우산에 이렇게까지 애착을 가지면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의아해하는 일이 왕왕 있다. 심지어는 네임스티커를 보며 뭘 그렇게까지…하는 눈초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변명을 하게 된다. 아니 이게 되게 중요한 거라서…)          



 누군가에게 우산은 그저 일회용 비닐로 이루어진 임시로 쓸만한, 언제 잃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그저 그런 물건이다. 또는 아주 값싼 물건이다. 나도 우산이 아닌 어떤 물건들은 최대한 싸게,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우산만은 예외다. 값이 비싸더라도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산다. 그리고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그냥 물건을 오래 쓰는 성격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나는 나만큼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우산에 애착을 가지는 것이 아예 습관이 되어버렸다. 2016년부터 쭉. 정확히 말하면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부터 쭉.          



 그 무렵의 나는 어렸고, 순진했으며, 나를 절대로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첫사랑하고 있었다. 그날은 비가 오다 말다 하는 7월의 여름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를 절대로 사랑해주지 않던 그 사람은 비가 오고 있지만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줄 생각이 없었기에, 대신 들고 온 우산을 건넸다. 손잡이가 나무로 되어있는 검정색 장우산이었는데, 그 나무가 원목이라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좋은 우산이었다. 일본의 유명한 우산 장인이 만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는 말했다.     


 내가 아끼는 우산인데.. 다음에 돌려줘.     


 다시 말하지만 나는 어렸고, 순진했으며, 자존심까지 없었기에 데려다주기 귀찮아서 건넨 그 마음을 냉큼 받았고, 끝끝내 아니 어쩌면 당연히 주인에게 되돌려줄 수 없었다.     



 나는 그 여름 내내 그 우산만을 쓰고 다녔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를 생각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이 그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냥 그 비싼 우산이 좋았다고 하고 싶다. 비가 오면 원목 손잡이 부분에 물이 닿아서 나던 특유의 나무향이 좋았고, 일본 우산처럼 펼쳐지는 디자인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이 쓰던 우산이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 정도 아꼈으면 질릴 법도 한데 그 우산이, 그 사람이 너무 질리지 않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그 우산만을 찾았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그 짝사랑도 끝이 났고, 그 우산도 결국은 부서졌다.                    





갑작스럽게 비가 오는 날,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아끼는 거야.     


말하며 우산을 건네게 되는 날이 올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날이 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사랑도 함께 담아 건넬 것이다. 꼭, 그럴 것이다.      


언제 그날이 올지 모르니 오늘도 굳이 ‘내’ 우산을 찾으러 귀찮은 발걸음을 한다.      


우산을 살 땐 아무리 값이 비싸더라도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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