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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Feb 26. 2024

매력인간보고서02_HW

매력인간을 소개합니다.

 그를 처음 본 건 2023년 4월 오전 9시 스타벅스에서이다. 그날은 6명이 모여 독서모임을 하는 날이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그는 튀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간간이 자신의 의견을 조금씩 들려주었다. 하지만 눈에 띄게 많이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두 시간이 흐르고 오전 11시가 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떴다. 기억에 남아있는 그의 첫인상은 여기까지다.      

     


 안타깝게도 두 번째 인상부터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아마도 비슷했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 그다지 임팩트 있는 모습으로 남아있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는 늘 일요일 오전 9시에 만났고, 그는 늘 조금만 말했고,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가방을 싸서 집에 갔다. 지금이 2024년 1월인데, 며칠 전에 본 그의 모습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항상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까지도.      

     


 날마다의 인상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라는 사람에 대한 인상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이미지로 내게 스며들었다. 그가 스스로 내비치는 아주 작은 양의 정보에 의지해 스케치를 하고 윤곽을 그리고 수채화 물감으로 채색을 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슷한 양의 시간을 함께 한 다른 이에 비해 턱 없이 흐릿한 수채화 작품이다. 아니, 흐릿하다 못해 투명하다.      

     


 그럼에도 그는 매력인간탐구서에 적절한 사람이다. 그에게선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맡아보지 못한 향기가 난다. 그 향기는 내가 쫓고 있는 이상향에 가까워서 더더욱 매력적이다. 내가 그린 그의 초상을 소개한다.     

     


 그는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 아주 많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일지 쉽사리 추측이 어려울 텐데, 사실은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사람들이 독서모임에서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들을 읽었다. 단지 읽은 것을 넘어 그 작가의 개인적인 일화들, 책이 나오게 된 시대적 상황이나 배경, 역사적 가치, 그 책의 논조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다른 책들에 대해서도 훤히 꿰고 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어도 그렇게까지 포괄적인 내용까지 알고 있다니.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어차피 사람들이 모를 테니 아무 말이나 지어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그의 직업은 중학교 국어교사이다. 예상했는가? 혹은 고개가 끄덕여지는가? 이 정도면 내 아이를 맡기고 싶은 선생님 아닌가? 내 추측이 맞는다면 대략 15년 정도 근무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동네에서 하는, 약 80명가량의 회원이 가입한 독서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다. 침묵을 지키는 그의 성격에 반하는 직책이라 사연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사실 처음에는 모임의 일개 회원이었으나 기존의 회장님께서 거의 반강제로 자리를 넘겨주어 회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독서모임이 이루어지는 두 시간 동안 그는 거의 대부분은 조용히 듣고 있다. 편한 사람에게 이따금 장난을 걸기도 하지만 나를 제외하고 그 대상을 본 적은 아직 없다. 누군가의 말이 길어져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종이에 낙서를 하지만 그러다가도 이내 이야기와 관련된 자신의 의견을 툭 내뱉는다. 말을 할 땐 '어..', '음', '뭐랄까' 와 같이 말을 하다 잠시 멈추고, 고민하는 소리를 내뱉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듣는 이의 집중력을 높아지게 만든다. 놀랍다. 유창하게 말하기보단 신중하게 한 글자, 한 단어를 찍어내듯 천천히 그러나 밀도 있게 말한다. 그가 말을 마치면 꼭 한 편의 글을 읽은 것처럼 논지가 짜여있다는 느낌이 든다. 앞서 말한 책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쏟아낼 땐, 그렇게 대단한 말을 아무런 잘난 체 없이 덤덤히 그리고 차분히 읊조린다. 젠체하며 말해도 될 내용을 젠체하며 말하지 않는 그가 특히 매력적이다. 회장으로서 모임이 시작되기 전 들어가는 말을 할 땐, 주로 가벼운 스몰 토크로 시작한다. 미리 생각해온다는 인상이 강하게 드는데 아마 맞을 것이다.      

     

 이외에도 그는 목소리가 낮고, 꽤 많이 젠틀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운영진을 해주는 대가라며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을 선물하는 사람이다. 부담 없이 다가오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한 발짝 멀어지는 사람이다. 희생적인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왜 그런지 모르게 약자에게 마음이 가버린다는 사람이다.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지만 동시에 단단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막상 적고 보니 어쩌면 나는 그를 매력 있다고 느끼기보다 존경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그 사람에 대해 적게 알고 많이 궁금해하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은 알 것 같다가도 영영 알 수 없을 것 같은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     

     


 그가 했던 몇 안 되는 말들이 전부 인상 깊었지만 그중 특히 좋아서 따로 적어놓은 문장들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프로이트가 정리한 말인데, 인간이 '상실'을 경험하면 크게 2가지 길을 양자택일하게 된다고 한다. 첫째는 애도. 성숙한 대처를 한 사람이 겪는 감정으로 상실의 슬픔을 끝내고 애도라는 단계로 들어간 사람이다. 즉, 떠난 사람을 잘 보내준 것이다. 둘째는 우울. 상실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떠난 사람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여 (빙의와 비슷) 끝내 그를 보내지 못하고 계속 우울한 상태에 머무는 것이다. (2023.5.28.SUN)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기만 하던 사람에게 중력 같은 사람이 등장한 것 (2023.10.29.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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