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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Feb 29. 2024

나으 아지트

인천광역시 미추홀로 인하로 100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로 100. 정식 명칭은 인하대학교. 내가 8년간 수십 번도 넘게 갔던 나의 아지트.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울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에게는 갈 곳이 있었다. 누가 보면 나의 모교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내 모교는 아니고 내가 무척 사랑했지만 절대로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던 사람의 모교이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2016년 봄, 인하대학교 후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열렬히 사랑했던 것도 2016년 봄, 인하대였다. 정작 그 사람과 함께 그곳을 거닌 것은 (6년 동안) 20번도 채 되지 않는다. 나는 그 20번도 채 되지 않은 날들을 추억하며 20번이 훨씬 넘는 날 동안 혼자 그곳을 찾았다.

 

 처음에는 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 찾았다. 보통은 삶이 너무 힘들었던 날 갔던 것 같지만, 사실 그저 그런 날에도 갔다.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서 간 적도 있고, 마침 그 주변에 일이 생겨서 가는 김에 들른 날도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음에 확신이 생겼음에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몇 번을 더 가고, 몇 번을 더 추억하고 나서야 완전히 그곳에 가지 않게 되었다.

 

 인하대. 젊음의 기운이 많다 못해 넘쳐흐르는 곳. 학교 중앙에 위치한 호수 탓에 언제나 비릿한 물 향기를 머금고 있는 아름다운 교정. 나는 그런 인하대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사랑했지만 특히 4월을 가장 좋아했다. 활짝 핀 벚꽃 나무들이 예뻤고 정문 근처에 있는 벚꽃 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좋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한가득 들어오는 도서관에 앉아 일기를 쓰며 그의 수업이 마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설렜다. 후문에 있는 6000원짜리 왕돈가스 집이 맛있었고, 그가 제일 좋아하는 수제 바닐라 시럽을 넣은 바닐라 라떼가 달콤했다. 밤이면 호수 앞 정자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왁자지껄 맥주를 마시는 풍경이 좋았고 그와 함께 그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음에 벅차올랐다. 운동장에는 사람이 항상 많았는데 사람들을 피해 함께 달리면서 그가 던지는 농담에 웃을 수 있어 행복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의 동기들에게 나를 “아는 후배야.”라고 소개했을 때 조금 슬펐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그를 기다릴 때는 힘들었다. 화를 내며 “난 수업 들으러 갈 거니까 넌 집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비참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그 사람을 위해 31가지 맛이 있는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가다 호숫가에 떨어뜨렸을 때는 그게 뭐라고 서글펐다.

 

 그 후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그 사람을 깨끗이 잊어서일까, 아니면 나 스스로 슬픔을 감당하는 방법을 배워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삶이 너무 바빠서 차마 그 먼 곳까지 갈 시간을 내기가 아까워서일까. 어느 쪽이든 이제 인하대가, 그 사람이 옅어진 것은 확실하다. 언제까지나 나의 아지트일 것이라 생각했던 그 장소는 아지트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누군가의 아지트는 사람일 수도 있고, 술이나 담배 같은 물체일 수도 있다. 나처럼 장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지트가 없을 수도 있다. 나에게 인하대라는 아지트가 있어서 좋았다. 그것이 사람도, 물체도 아니어서 더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함께 보낸 4월이 있는 장소여서 가장 좋았다. 하지만 상실했다. 정확히 말해 상실되었다. 새로운 아지트를 찾고 싶나? 하면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아지트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힘들면 언제든 달려와서 기댈 수 있는 사람, 그런 아지트가 되어주고 싶다.

 

 그새 조금 자라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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