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살을 했다. 오늘따라 나만 여자였다. 12명 중 11명이 남자였다. 밸런스가 안 맞을 텐데. 걱정이 되었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아예 플레이를 안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살갑게 장난을 걸어오는 팀원들이 있으니 괜찮겠지 했다.
경기는 6대 6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한 판 한 판 뛸수록, 스멀스멀 이상한 기분이 몰려왔다. 내가 공을 잡으면 유독 봐주는 것 같은 느낌. 나로 인해 우리 팀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나만 여자라서 그런 거겠지. 실력 차가 있는데 당연한 거지 뭐. 스스로를 다독였다.
경기 시작 후 몇 분 되지 않았는데 그 느낌이 단지 느낌이 아니구나. 싶은 순간이 왔다. 내가 골키퍼를 맡았을 때다. 내가 골키퍼로 빠지니 남자들 경기가 되었다. 그러자 팀원들이 진짜 플레이를 했다. 볼 속도가 빨라졌다. 어딘가 모르게 답답했던 플레이가 시원시원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재미있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계속 부정적인 생각이 피어올랐다.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구나. 내가 낄 자리가 아니구나. 내가 더 열심히 뛰면 괜찮겠지 하는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이 안 들었다. 내가 없는 게 더 낫겠다. 빠져줘야겠다. 같은 생각만 들었다. 쉽게 슬픈 사람이 아닌데 슬퍼졌다. 무기력해졌다. 내 감정인데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풋살을 시작하고 이런 감정이 든 것은 처음이다. 내색할 수는 없어서 마저 게임을 했다.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성인이니까 추슬러야지, 추슬러야지 마인드 컨트롤 했다.
풋살이 끝나고 신발을 갈아 신고 있는데 팀원들 몇 명이 뛰어왔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남자밖에 없어서 어려웠지. 우리도 너무 빡겜이라 힘들더라.라고 하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제야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제야 내 감정이 뭔지 명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외감. 그건 소외감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구나. 내가 없어야겠구나. 하는 감정.
그리고 이어서 그가 떠올랐다. 두 시간 남짓한 소외감에도 이렇듯 쉽게 눈물이 핑 도는데. 그는 얼마나 오랜 시간 소외되었던 걸까. 얼마나 오랜 시간 외로웠던 걸까. 이런 거였을까.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서 소외된다는 건.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셨던 걸까.
그를 원망했던 3주 전의 내가 떠올랐다. 남겨진 사람들은 대체 어떡하라고. 당신 부모의 모습을 좀 보라고. 이런 것까지 생각 못 할 정도였냐고. 당신 너무 이기적이라고. 속으로 질타했던 내가 너무 싫었다. 그러지 말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당신의 감정이 이런 거였을까 추측하고 있는 것도 죄의식이 들었다. 더 이상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당신이 되어보지 않는 한. 감히.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수십 번을 되뇌었다. 사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멋대로 판단해서, 주제넘게 당신을 떠올려서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진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