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사람이 되는 선물
어떤 선물은 그것을 쓰는 내내 선물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사물이 곧 사람이 된다. 소중한 사람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이라면? 나를 오래오래 기억하게 하는 선물, 상대에게 나를 각인시키는 선물. 어떤 것이 있을까?
너는 내게 다 읽은 책 한 권을 건넸다. 그 책을 읽으면 이상하게 내가 생각이 난다고 했다. 소중한 책이니 읽고 나서 꼭 다시 돌려달라고 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그 책을 책장 한편에 끼워두고 몇 주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끼고 또 아꼈다.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미루고 또 미루었다. 그리고 네 생각을 참을 수 없던 날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곧 네가 되었다. 왜 하필이면 그 책을 건넸을까? 왜 그 책이 나를 떠올리게 했을까? 책의 곳곳에는 네가 형광펜으로 밑줄 친 자국이 있었다. 빈 공간에는 삐뚤빼뚤한 너만의 필체로 네 생각을 적어놓은 흔적이 있었다. 그 문장이 왜 특별했을까? 너는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구나. 네가 곧 책이 되었다. 책 속의 문장 수만큼, 단어 수만큼, 자음과 모음의 수만큼 너를 생각했다.
꿀팁! 책 선물을 할 때 유의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상대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책이 곧 내가 되기는커녕 책장 한 공간에서 길을 잃은 채 방치된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 둘째 상대와 어울리는 책이어야 한다. 선물자의 취향이 가득 담겨있으면서도 상대를 진심으로 생각해서 고른 책이어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이 있기에 선물자는 섬세한 선택을 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세련된 표지를 지닌 (읽던 책이라면) 청결한 컨디션의 책이 좋다.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노트를 선물했다. 그게 마음에 들어 한동안 열심히 썼다. 그러자 새 노트라며 하루키의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 속 인물인 '미도리'와 동명인 회사의 노트를 선물했다.
벚꽃을 보러 갔던 날, 당신은 필기도구를 선물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했다. 맑은 분홍색의 펜과 샤프였다. 색에 대해 언급하자 당신은 '벚꽃 에디션'이라고 말했다. 벚꽃 에디션.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어서 한 번 더 읊조렸다. 벚꽃 에디션.
당신은 취향을 선물했다. 나의 취향과 당신의 취향을 선물했다. 나는 아마 미도리 노트를 쓰면서, 벚꽃 에디션 필기구를 쓰면서 당신에 대해 쓰게 되지 않을까. 이왕이면 벚꽃과 하루키와 당신의 상관관계에 대해 써보고 싶다.
꿀팁! 노트와 필기도구를 선물할 때는 질 좋은 것을 선물하는 것이 좋다. 취향을 넘어설 정도로 좋은 기능을 가진 것들. 그렇지 않으면 각종 스마트 기기에 밀리기 쉽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노트와 필기도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살펴보는 것!
너는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선뜻 옷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너만큼 자기 옷을 넙죽 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리 돌려주고 또 돌려주어도, 내 옷장에는 네 옷이 넘쳐났다. 네 옷에는 너희 집 냄새가 강하게 났다. 섬유 유연제를 들이부어서 세탁을 하는지, 그 냄새는 두 번을 빨아도 여전했다. 네 옷을 입은 날은 하루 온종일 너희 집 냄새를 맡는 날이었다. 아니 반대로, 너를 맡고 싶을 때마다 일부러 네 옷을 꺼내 입었던 것 같기도 하다.
6년 동안 변한 너의 체형 탓에 크기가 가지각색인 옷들이 여전히 내 옷장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많기도 하다. 이제는 버릴 때가 됐는데.
꿀팁! 옷 선물은 무심한 듯 툭! 건네는 것이 포인트이다. 과한 친절은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잘 관찰하다가 정말 필요해 보일 때 건네거나 관계가 어느 정도 확실시되었을 때 건네는 것을 추천한다. 좋은 향기가 묻어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내 생일은 2월이다. 매년 2월, 나는 나에게 향수를 선물한다. 계절에 어울리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일 년 동안은 그 향수만 뿌린다. 그러면 그 향기가 그 해의 향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향기만 맡아도 머릿속에 그 해가 떠오른다. 향기로 시간을 기억하는 그 느낌이 좋다.
그해 4월, 도서관에서 네 향수 냄새를 처음 맡았다. 머스크 향과 시트러스 향이 오묘하게 겹쳐 나던 그 하늘색 향은 맡자마자 '좋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는 그 정도로 친하지 않았지만 네게 향수를 뿌렸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그 정도로 친하지 않았기에 너는 머쓱해하며 "샤워코롱이야."라고 대답했다.
그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된 후 너는 그 향이 그렇게도 좋냐고 하며 내게 그 향수를 선물했다. 머스크 향과 시트러스 향이 오묘하게 겹쳐나던 하늘색 향수. 나는 너와 영원히 이별하고 난 후에도 가끔 그 향기를 맡는다. 그해를 떠올리기 위해서다. 이제는 빈병이 된 탓에 코를 입구에 가까이 대고 크게 숨을 들이마셔야만 향이 느껴진다. 흐릿하다. 마치 너처럼.
꿀팁! 향수는 취향을 많이 탄다. 모 아니면 도다. 이왕 모 아니면 도인 것.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내 취향의 향수를 선물해 보면 어떨까? 처음에는 싫어하다가도 이런 향수가 있다고? 하며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 어렵다면 상대방의 이미지를 떠올려보고 그에 어울리는 향수를 가게 직원에게 문의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적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조금 헷갈린다. 말인즉슨, 앞서 적은 선물들이 대단했던 이유는 준 사람이 대단히 큰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의 기억에 남을 선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당신께 말해주고 싶다. 선물을 고민하기 이전에 의미 있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위해 취향을 잔뜩 묻힌 책과 필기도구를 선물하고, 당신이 잔뜩 묻은 옷과 향기를 선물해 보면 어떨까?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는 헷갈리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