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5년, 10년, 30년 후의 나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오늘 처음으로 주식을 샀다. 미국 ETF 1주. 내 인생에도 주식을 사는 날이 오는구나.
19년~20년 한창 사람들이 주식 이야기를 많이 했다. 친한 친구들이 너도나도 주식을 몇 주 샀다니, 공모주를 보고 있다니 요란 법석을 떨었다. 반면 나는 이제 막 저축을 시작했던 터라 그들의 이야기가 낯설게만 들렸다. '그러다 잃으면 어떡하려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난 주식 잘 몰라서 너네 얘기하는 거 들을게."라고 말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친구들의 투자내용은 이러했다.
E가 말했다.
"난 400만 원은 애플에, 400만 원은 마이크로소프트에 투자했어."
그러자 J도 뒤질 세라,
"난 전 재산이 다 주식에 있어. 당장 돈이 필요해도 빼지를 못해."라며 앓는 소리를 했다.
그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가도 이런 얘기는 서로 묻지 않는 것이 암묵적 룰이 된 것을 보면 우리도 나이가 먹긴 했나 보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그 얘기들을 들으면서도 불안하지 않았다. '재테크는 먼 이야기지.' 하는 얄팍한 심보와 더불어 '언젠가 관심이 가면 시작해야지. 남 따라서 시작할 수는 없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그동안의 나는 착실히 돈을 저축했다. 정확히 말하면 저축'만' 했다. 쓰는 법을 몰랐다. 친구들이 턱턱 구매하는 명품지갑, 가방들을 보며 부러워만 했다. 이따금 옷이나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때에는 적어도 한 달은 고민한 후에 구매했다. 기억나는 소비 중 가장 큰돈을 썼던 것은 다이슨 에어랩인데 무려 1년을 고민하고 샀다.
짠순이처럼 살았던 이유를 묻는다면 솔직히 없다. 민망하긴 한데, 정말로 딱히 없다.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모건 하우절은 그의 책 <돈의 심리학>에서 "저축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쩜 딱 내 이야기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부모님의 짠순이짠돌이 성향이 학습된 것일 수도 있고, 그보다 더 찐한 유전자 때문일 수도 있다.
젊은 애가 저축을 열심히 하는 건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뭘 그렇게까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시선도 있었다. 실제로 프랑스 여행 중 이미 가방에 있는 메종 마르지엘라 지갑을 제쳐두고 샤넬 지갑을 사던 H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진. 넌 안 사? 이런 건 좀 사도 돼. 그냥 사."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했다. 비참하고 부끄러웠다. 그런 감정이 들었던 이유는 뭘까? 나는 돈이 있어도 샤넬 지갑을 살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지만 그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난 볼보 사야 돼서 돈 쓰면 안 돼. 30살 되자마자 뽑을 수 있게 29살에 계약할 거야."
휴.
지금 생각해도 어딘가 어설프고 말꼬리가 길다. 진심으로 볼보, 29살 계약을 고민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지독한 우유부단형 겁쟁이인 내가 과연 29살이 되는 4개월 후에 7000만 원이나 하는 자동차를 뽑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볼보 어쩌고는 비참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도피처 같은 말이었다. 이제는 인정한다.
아무튼 그렇게 우유부단 겁쟁이가 오늘 처음으로 주식을 구매했다. (그마저도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ETF이지만) 그리고 내일은 채권을 구매할 것이다. 하고 있던 적금을 당장 중단할 정도의 깡은 없으므로 당분간은 주식과 채권의 비중이 낮은 포트폴리오를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예적금의 비중을 줄여나갈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월급을 주식 40%, 채권 40%, 현금 20% 로 나누어 투자하는 올웨더 포트폴리오를 만들 것이다.
내가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욱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4개월 전 우리는 동네의 한 호프집에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욱을 누구보다 많이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 잘 됐다 생각하며 물었다.
"재테크를 하고 싶지 않은데, 주변에서 많이들 하라더라고요. 꼭 해야 돼요? 나중에 하고 싶어질 때 해도 돼요?"
눈치챘겠지만 답정너로 물은 것이었다. 그렇게 물으면 그가 "천천히 준비 됐을 때 하라."라고 말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욱의 대답은 달랐다. 욱은 정색하고 말했다.
"해야지. 재테크해야 돼요."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욱을 정말 많이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색이 동반된 욱의 한 마디는 마치 달리기 시합 출발을 알리는 총성처럼 들렸다. 탕! 달리고 싶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총성.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재테크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각종 재테크 책들을 읽어나가다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도 처음에는 별 거 아니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부자 DNA를 타고났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다 독하게 마음먹고 시작한 것이었다. 공통점은 이내 자신감(혹은 오만)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나도 못할 것이 없지 않나? 지금부터 천천히 시작하면 되겠다! 하는 자만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자신감.
오늘은 잠실에 있는 카페엘 갔다. 종합운동장역 근처였다. 가는 길에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우성 아파트를 지나갔다. 그 아파트들은 내가 살고 있는 신도시보다 훨씬 허름하고 낡았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에 주차된 자동차들은 전혀 허름하고 낡지 않았다. 마치 외제차 중고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4개월 전의 나였다면 '부자들의 세상이구나. 나랑은 먼 얘기야.'하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도 이런 아파트에서 이런 차 끌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4개월 공부했는데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낡고 값어치는 떨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늙고 병든다. 하지만 좋은 주식과 부동산은 시간이 쌓일수록 값어치가 오른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년, 5년, 10년, 30년 후의 나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지혜로운 아내, 현명하고 행복한 엄마, 그리고 유능한 투자자가 되어 있을까? 그때의 나는 어디에서 어떤 차를 끌면서 살고 있을까? 미래의 내 모습이 기대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