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 마지막 7월

by 피연

그동안도 뭘 대단한 걸 쓴 건 아니었지만 괜히 뭘 적어야 할지 몰라 몇 주간 망설였다. 오히려 대단한 걸 쓰지 않아서 더 그랬던 것도 같고. 어찌 됐건 뭘 쓸지 못 찾았.


드디어 방학을 했다. 전생에 뭐였는지 일하는 것보다 노는 걸 더 싫어하는 나는 아니나 다를까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불안해졌다. 막학기까지 버티기엔 많은 변수가 생겼고 그건 내 통장 잔고와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꼭 그만큼의 불안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오가며 갖가지 공고에 지원하게 만들었다.


방학하고 제일 먼저 한 건 사진 정리였다. 중복 백업에 용량은 늘 꽉 차있었고, 필요도 없는 파일들로 뒤덮인 게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저장 강박이 있었던 걸까? 그때그때 안 지워서 한가득 쌓인 사진들을 지우다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몇 기가, 몇 천장의 사진이 든 사진 폴더를 켜면 눈앞이 캄캄했다. 대체 나는 왜, 하고 생각하다가 하긴 정리에 눈을 뜬 것도 얼마 안 됐더라. 비워야 채워진다는 걸 깨달은 여행과, 미니멀리스트였던 전 애인 덕에 필요 없는 것들이 쌓이는 걸 못 참게 되었다. 그건 디지털 파일에도 마찬가지다. 과감하게 버려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해진다. 지우기 아까운 추억이라며 꽉 붙들고 저장용량과 씨름하는 동안 얼마나 쓸모없는 에너지를 낭비했었는지. 다시는 안 꺼내보는 사진들과 영상을 빠르게 지웠다. 지울지 말지 고민하는데 시간은 사치다. 보자마자 클릭하게 되는 게 아니면 모두 휴지통으로 비워버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나는 왜 사진을 찍을까?

번졌거나, 지금은 필요 없는 서류 사진까진 지웠는데 남은 것들에는 풍경, 음식, 이제는 만나지 않는 친구와의 사진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찍어둔 구절도 섞여있었고, 지금 봐도 캡처할법한 스크린샷도 꽤 됐다.

음식 사진을 지우기로 해? 그러기엔 너무 많았다. 몇 년 전인데도 사진을 보니 어디서 누구와 먹은 건지 기억이 났다. 그게 중요한가? 왜?

쓰지 않으면 버리거나 처분하는 물건과 달리 사진은 매했다. 일단 사진 장 수가 적으면 한 번씩 들어와서 훑어볼 것 같아서 지우려는데, 뭘 어디부터 지워야 할지.


때마침 기록의 목적도 재정립하던 차였다. 더 나은 내일을 살고 싶고, 고민은 덜 실행은 더 하고 싶은데, 내 기록은 그와 맞지 않다.


매일 무언가를 찍고 쓰는 게 습관인데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이 된 기분이다. 공사 중, 혹은 요즘 앱들이 종종 어느 날 새벽에 시행하는 점검 중의 상태에 가깝다.


다음 주엔 여행을 간다. 돌아오면 무언가 알바를 하나 더 하고 있겠지? 그땐 뭘 할지 지금 전혀 알 수가 없다. 지금 나는 학생이지만 동시에 예비 강사이고, 어딘가 두 군데 이상에서 일을 할 예정이며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기록을 뜯어고치면서 나도 같이 변화한 것도 같다. 이전 같으면 걱정만 할 걸 일단 구직 지원부터 하는 걸로 바뀐 것 같고. 뭐가 되었든 방학이 주는 여유를 이제는 조금만 즐겼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 수많은(?) 학기와 그 사이의 수많은 방학을 걱정과 불안으로 보내놓고 마지막도 이러고 있다. 학생 신분이 벗어나면 또 다르려나, 좀 기대된다.


원래는 1일인 기념으로 어제 쓰려고 했었다. 오늘 시작하면 딱 7월의 마지막날 브런치북을 완결할 수 있으니 그걸로 좋지 않을까? 좀 잘 쉬자고 다짐해 놓고는 또 이렇게 매일 쓰는 글을 하나 마련하는 걸 보면 이미 이번 방학도 글러먹은 것 같다. 이왕 이럴 거 좀 세련되게 사부작거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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