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아주 사소한 일은 야금야금 갑자기 몸집을 불리기 마련이다. 나의 바늘 도둑은 이별이었다. 세 살 배기 어린아이 때에도 금방 울음을 그치던 나였는데, 그 연애에서는 나의 우느라 빨개진 눈의 모양을 외웠다. 나보다 그를 우선시했던 걸 자각하고는 첫 발걸음을 떼었다. 헤어지자고.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아프던 마음에 구멍이 하나 뚫렸다. 순식간에 바람이 새며 쪼그라들었다.
분명 다 알고 있는데도 마음이 자꾸 뒷걸음을 쳤다. 지질한 나를 보며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혼자 여행을 떠났다. 모든 것을 남이 아닌 내가 결정하며 돌아다닌 생소한 며칠은 사소하고 은밀했다.
처음 알았는데 혼자 다니면 공항 대기석 같은 곳에서 좌석 딱 하나만 남았을 때 망설임 없이 바로 앉을 수 있더라. 그래서 다리가 많이 안 아팠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라 식당은 갈는지 걱정됐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지속적으로 느껴서인지 잘만 다녔다. 가게를 잘못 들어가서 그러긴 했지만 9첩 반상이 나오는 복국집에 가서 손님도 없는데 1인분 시키고 배부르게 먹고 나와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에서 느껴졌다. 아, 혼자 온 손님이구나. 1인석으로 안내해야지. 그뿐. 하긴 혼자 온 게 나뿐은 아닐 거다.
동행인이 없으니 대화는 속으로만 하게 되고, 말소리가 되기 이전의 생각들이 왁자지껄 무표정한 얼굴 속을 떠다니는 동안 눈부신 바다와 갈매기 떼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평소 열 마디는 할 생각들이 한 마디씩 분절되어서 겨우 떠다녔다. 그가 연상될 만한 게 많았지만 시각에 집중했다. 사물, 풍경, 그걸 보는 나, 걷는 내 다리, 가려는 장소. 2kg은 될 것 같은 짐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걸었다.
있는 걸 그대로 봐야만 해서 충격적으로 아름다웠던 바다로 고른 거다. 서울보다는 덜 찬 부산의 겨울바람은 맑았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광안리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귀여운 갈매기 보러 온 거다.
해운대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며 창 밖을 본다. 그러고 보니 아까 구경한 서점에서 독립출판된 책들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책들과는 다르게 색다른 주제와 작가들의 개성이 더 뚜렷했었다. 조금 더 대중을 의식하지 않은 듯한 날것의 솔직함이었는데 이를테면 욕이 대놓고 적혀있거나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나 싶을 정도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했다. 나는 그런 용기가 있을까? 아주 사소한 공간에조차 솔직하기 두려웠다. 조금은 용기를 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와 같은 감정을 읽어내는 게 더 힘이 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닌가 보다. 그냥 한없이 밝고 따뜻한 글이 읽고 싶어서 마지막에 다른 책으로 바꿨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밝은 글을 써야지. 그래놓고 이미 며칠 전 업로드한 글들도 충분히 어두웠던 것 같지만, 예전에 비하면 낫다. 굳이 모든 걸 어둡게 칠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보다야 어색하더라도 조금씩 밝아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 낫다. 웃는 연습을 하는 거다. 안 쓰던 볼근육이 아파오도록, 곧 적응될 테니.
남의 목소리가 자꾸만 귀에 들렸더랬다. 그건 내 목소리와 아주 비슷했지만 너무할 정도로 가혹했다. 스스로 쓰는 모든 걸 사치로 규정하고, 나의 노력이나, 불운 같은 건 모두 치워뒀다. 자꾸만 나이와 돈, 분야 없는 좋은 직장 같은 것을 생각했다. 이제 와서 보니 그 목소리의 주인은 얼굴이 없었다. 아니, 아주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콜라쥬한 모습이 오래된 브라운관 티브이 속 화면 같기도 했다. 대부분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거울 속의 선명한 나의 얼굴을 그대로 봤다. 나만 듣는 나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들었다. 1년이 지나 다가오는 3월에 나는 광안리로 거주지를 옮긴다. 가족도 아는 사람도 없이, 다른 이유 없이 그저 광안리 바다 옆에서 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