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눈

by 문지

*이 글은 다소 불편할 수 있습니다. 저에 대한 검열을 최대한 덜고 투명하게 썼습니다. 그만큼 반응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고 든 생각에 대해 짧게라도 남겨주신다면 더 좋은 글을 쓰고 퇴고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라색 교복을 입고 가는 학교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는 애들은 많지 않았다. 너무 많은 미움을 받는다고 느꼈지만 그중 가장 강렬한 건 자기혐오였다. 딱히 싸운 적은 없다. 잘 지낸 적도 없다. 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뿐이었다. 나는 그중 조금 친한 애들과 인사를 했고, 그들은 보통 같이 다녔다. 내가 그 애들에게 인사를 다 같이 건네면 대부분의 인사는 튕겨 나왔다. 항상 그 애들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어색하게라도 웃거나, 인사만 간신히 건네거나, 한 명은 아무 동작 없이 내 눈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응시했다.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게 하나 있었다.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판단하는 거였다. 상대가 무슨 척을 해도 눈동자는 항상 진실을 말했다. 눈동자가 안 보이면 나를 눈에 담기도 싫다는 거였고 마주친 눈은 보통 어색함 혹은 비호감을 말했다. 가끔가다 동정심이 어린 눈, 미움이 덜한 눈과 마주치면 나는 내장을 까뒤집어 보여줬다. 나는 꼴 보기 싫고 불행해, 그럴 수밖에 없지 않니?


나는 주변인이 나를 싫어할수록 항변하듯 나 자신을 제일 미워했다. 너희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나 말이지? 나도 너무 싫어. 같은 사람을 싫어하면 욕하면서 친해진다던데 잘못 알았나 보다.


보통의 사람들은 나를 싫어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고 20대를 다 보내며 나는 그 미움의 원인을 없애려고 애썼다. 보통의 사람들은 눈치 없이 몸치 주제에 장기자랑에 나가고 친구 없이 혼자 다니는 사람을 싫어한다. 사람들은 뒷담화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친하지 않은데 가정 불화와 가난을 티 내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보통은, 보통은. 나는 몸부림쳤다.


감히 몸부림이라 말했다. 늘 미워하던 내 얼굴과 성격을 마주 봤기 때문이다. 미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나의 고유한 지점을 받아들이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는 것도 깨닫기 위해 매일 밤 의자에 매달려 절규하듯 일기를 썼다. 볼펜으로 벅벅 긁으며 지나가는 거친 글들은 점차 비밀을 보여줬다.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에 숨어있는 질투심과 열등감을, 싸우고 씩씩대던 감정 뒤에 웅크리고 있던 친구에 대한 엇나간 애정을. 나는 세상의 활자를 찾아다니며 조금씩 조금씩 내가 되려고 애썼다. 더 편한 얼굴이 되고자 했다.


10년이 지나 동창들을 결혼식에서 만나게 되었다. 소수의 몇 명 중 하나가 나에게 청첩장을 줬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더 보통이 되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와 달라진 내 표정을, 말투를, 세상을 보는 시선을 보여줬으면 했다. 그럼 어쩌면 의외로 한두 명과는 다시 친해질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내가 봐도 별로였고,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애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했다. 서로를 보고 놀랄 정도로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인사를 했다. 그 와중에 옆 테이블에 잘못 앉아 있다가 뒤늦게 자리를 옮겼다. 원래 테이블에서 얼굴이 기억나는 친구와 반갑게 수다를 떨던 참이라 아쉬웠지만, 지정석이 아닌 곳에 있다가 다른 사람의 자리를 뺏으면 미안할 테니까. 식장은 따뜻했고, 조명이 밝았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 내 앞의 다섯 명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나에게 쏠렸다. 무표정이라고 읽을 수도 있었으나 내 재능은 그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항상 자리 운이 안 좋은 편이다. 안 친한 애와 그의 남편, 또 다른 안 친한 애들 사이에 껴서 말 걸 대상이 없었다. 나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나는 그게 비단 우리가 멀리 앉은 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번도 나와 눈이 마주친 적 없는 그 아이는 오늘도 여전했다. 인사치레로라도 나오는 ‘안녕’ 대신 오늘도 침묵이었고, 다른 곳을 보는 그 얼굴을 10년 만에 데자뷰처럼 봤다. 혹시 내가 안 보이나?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접시 옆에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이 여러 개씩 놓여 있었다. 뭐부터 써야 할지 몰라 눈치껏 썼다. 나는 마치 동창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호텔 결혼식의 식전 빵은 맛있었다. 나는 와인 잔에 담긴 물을 달게 마셨다. 신부가 입장하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사랑하는 게 분명했다. 상황마다 작게 뭐라고 속삭이는 모습과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축하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테이블을 향했다. 내가 마주칠 눈이 없다는 걸 잊고 멋쩍게 접시로 시선을 옮겼다. 함박 스테이크같이 부드러운 안심 스테이크가 나왔다. 나는 고기를 질겅질겅 썰고 우걱거리며 먹었다. 수프를 떠먹고 커피를 마시고 또 먹었다. 마치 처음으로 음식을 입에 넣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주변에 흰 꽃이 많았다. 샹들리에와 빛나는 잔들과 유리병들에 빛이 사방팔방으로 반사되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눈이 마주치는 이는 저 멀리 있는 신부뿐이었다. 신부는 바빴다. 그리고 빠르게 멀어졌다.


한 시간 반 동안의 고독한 식사 시간이 끝났다. 옆 테이블의 그 아이를 보면 내가 안 보이는 것 같진 않은데 이상하다, 생각할 무렵 무리 중 한 명이 어색하게 웃으며 ‘우리 먼저 갈게.’라고 했다. 그 애들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일어섰다.


나는 하얗고 무거운 꽃다발을 받아 들고 지하철에 탔다. 우리 테이블의 꽃을 아무도 받지 않아 유리병 세 개 분량의 꽃을 받았다. 전교생 중에 내가 제일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철을 타고 가며 잊고 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 애들의 눈빛과 목소리, 반 아이들이 나를 보던 표정. 학생 식당에서 앞자리가 비어있는 나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던 모르는 얼굴들. 나는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습관처럼 일기를 썼다. 오늘의 감정은 뭘까? 아마 내가 확대 해석한 것일 거야. 친하지도 않았는데 뭐. 생각과 상관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에게서 눈물 냄새가 났다.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울음을 참으니 전철 안 보통의 사람들이 볼 것만 같았다. 밖은 추웠고 꽃다발을 든 손이 차가웠다. 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고 꽃의 얼굴을 보며 손에 힘을 줬다. 집에 도착하니 키 큰 꽃들은 목이 꺾인 채 죽어 있었다. 나는 물병에 꽃다발을 넣고, 죽은 꽃을 뽑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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