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연합뉴스
조명재 소방교의 2020년 2월은, 마치 숨소리조차 멎게 하는 고요한 폭풍의 눈과 같았다. 2019년 늦가을, 박쥐의 날갯짓처럼 시작된 중국 우한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덮쳤다. ‘코로나19’. 그 이름은 섬뜩한 예언처럼, 인류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바꿀 거대한 재앙의 서막이었다.
대한민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020년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는 불안과 공포를 씨앗처럼 뿌렸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적에게 쫓기는 듯 숨죽이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2월, 대구에서 신천지라는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코로나19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대한민국은 존망의 기로에 섰다. 의료 시스템은 순식간에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고, 병상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119 구급대의 싸이렌 소리는 절망적인 비명처럼 도시를 찢었다. 그 절박한 순간, 소방청은 망설임 없이 ‘구급대 동원령 1호’를 발령했다. 전국 각지에서 가장 용감하고 헌신적인 소방관들이 대구로 향해야 했다.
전남소방본부 소속 조명재 소방교는 망설일 틈도 없이 2월 28일 새벽,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창밖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거대한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구급차 안, 조 소방교의 손은 핸들을 움켜쥔 채 땀으로 축축했다. 그는 수년간 화재 현장에서 불길과 싸웠고, 붕괴된 건물 속에서 생명을 구했으며, 교통사고 현장에서 죽음과 맞서 싸워왔다. 하지만 이번은 차원이 달랐다. 눈에 보이는 불길이나 잔해는 없었다. 조 소방교가 싸워야 하는 적은 형체가 없었고, 어디에나 존재했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러나 파괴적인 속도로 인간의 폐를 잠식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악마 같은 존재였다.
‘내가…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고 잘못 되면 죽을 수도 있다.’
그 끔찍한 생각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족, 동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공포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갈등했다.
대구 두류정수장에 도착했을 때, 조 소방교는 숨 막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수십 대의 119 구급차가 빽빽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긴장감과 비장함이 뒤섞인 침묵이 정수장 전체를 짓눌렀다.
출동 직전, 지급받은 전신 방호복을 착용하면서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겹겹이 껴입는 방호복은 덥고 답답했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심리적인 압박감이었다. ‘이 얇은 보호막이 과연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만약 바이러스가 침투한다면….’
조 소방교의 임무는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집에서 격리시설로 혹은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 그는 말문을 닫은 환자들의 굳은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공포와 절망, 그리고 알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구급차 안은 늘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30분, 때로는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환자와 허 소방교, 그리고 침묵만이 함께했다. 누군가는 기침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허망한 눈빛으로 창밖 풍경을 바라봤다.
조 소방교는 매 순간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발과, 바이러스 감염 사이에서 극심한 불안감을 느꼈다. 방호복 안은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숨 막혀 버린 듯했다.
지옥 같은 일주일이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7일은 70년처럼 길었고, 매 순간이 벼랑 끝에 매달린 듯 위태로웠다.
조 소방교는 좁디좁은 구급차 안에서 자신과, 마스크 너머 고통스러운 환자, 그리고 형체 없는 공포와 숨 막히는 동행을 이어갔다. 매일 다른 얼굴들이 실려 왔지만,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같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죄책감, 죽음에 대한 짙은 두려움, 그리고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간절한 생의 갈망. 그 눈빛들은 조 소방교의 심장을 짓눌렀다.
덜컹거리는 아스팔트 위, 구급차 안은 깊은 침묵에 잠겼다. 창밖 세상은 더없이 평온했지만, 그 안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방호복은 땀으로 축축했고, 고글은 거친 숨결에 뿌옇게 흐려져 앞을 가렸다. 환자의 작고 잦은 기침 소리에도 온 신경이 곤두섰고, 희미한 한숨조차 맹독처럼 느껴져 숨을 멈추게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얇은 선 위에서 조 소방교는 인간의 존엄과 처절한 절망을 목격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되뇌며 눈물짓는 환자, 고통과 불안에 굳게 감긴 눈꺼풀, 침묵 속에 숨겨진 절규. 그 어떤 말보다 무거운 침묵은 조 소방교의 가슴을 짓눌렀다.
단순히 흘러간 168시간이 아니었다. 1분 1초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고독한 싸움이었다. 조 소방교는 그 일주일 동안 삶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았고, 그곳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희망의 불씨를 발견했다. 그 불씨는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는 그의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이송 임무를 마치고 전남으로 복귀했지만,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전남소방학교에 마련된 임시 격리 공간에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아니 정확히는 ‘따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도시락은 숙소 문 앞에 놓였고, 그는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한 채 혼자 밥을 먹었다. 철저한 보호와 차단을 위한 조치였지만, 그 고독한 침묵은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베어냈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하지만 조 소방교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무증상 감염자라면? 가족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면….’
그 끔찍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그는 집 앞에 도착해서도 차 안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멈춰 승용차 안에서, 그는 차마 차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시간이 흐른 뒤, 가족들이 깊이 잠들었을 시간, 그는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는 고요한 밤, 그는 역설적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조명재 소방교의 눈빛은 수년 전 그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 굳게 다문 입술. 그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내가 감염됐다는 사실보다… 격리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에 짓눌렸어요. 잘못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밖에 안 들었죠."
그의 어조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수없이 많은 화마와 싸웠다. 맹렬한 기세로 덤벼드는 불길 속에서, 검은 연기가 폐부를 찌르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사람들을 구했다.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 흙탕물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그곳에서 그는 밧줄 하나에 의지해 생명을 건져 올렸다. 뼈가 으스러지는 교통사고 현장, 핏빛으로 물든 아스팔트 위에서 그는 절망과 마주하며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2020년 2월, 대구에서 보낸 그 일주일은 그 어떤 재난보다 잔혹했고, 그 어떤 참사보다 처절했다.
환자 한 명, 그리고 구급대원 단 한 명. 텅 빈 구급차 안을 가득 채운 침묵, 덧대고 덧댄 방호복 너머로 겨우 새어 나오는 숨소리만이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이송'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치부될 수 있는 시간. 그러나 조 소방교에게는 목숨을 내건 사투, 숨 막히는 전장이었다.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는 적이었고, 공포는 쉴 새 없이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그는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에게까지 닥쳐올 위험을 감당해야 했다.
"그때…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정말… 너무나 무서웠어요."
그는 여전히 자신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모두가 외면하고 기피했던 그 길을,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걸어 들어간 사람이 누구였는지. 눈앞의 모든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그 순간, 그 두려움을 온전히 짊어진 채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이가 누구였는지.
조명재 소방교는 그저 119 구급대원으로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 말한다. 하지만 바로 그 책임감,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그의 숭고한 헌신이야말로 119 구급대의 존재 이유이자, 변치 않는 사명이다.
국민들이 절박한 목소리로 119를 외칠 때, 삶의 벼랑 끝에 선 누군가가 마지막 희망을 담아 119를 바라볼 때, 119는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조명재 소방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그 사명을 증명했다. 오늘도 이름 없는 수많은 구급대원들이 그와 같이, 묵묵히 국민의 곁을 지키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칭호 또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가장 빛나는 이름, 119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출처 : 타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