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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의 구조 요청(5번째 이야기)

by 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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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3일, 새벽 4시의 적막은 칠흑 같은 어둠처럼 깊고 무거웠다. 세상은 꿈결 속을 헤매고, 도시의 불빛마저 잠시 숨을 죽인 듯 고요한 시간. 바로 그 순간, 119 상황실의 전화벨이 날카롭게 울렸다.

"여보세요, 119입니다."

수화기 너머는 먹먹한 침묵뿐. 찰나의 정적 뒤에는 희미하게, 너무나 희미하게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스며 나왔다. 텅 빈 공간에 울리는 고독한 메아리처럼, 그 소리는 마치 절박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대부분의 상황실 요원이라면 단순한 장난 전화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새벽 시간, 술에 취한 장난기 넘치는 전화는 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날 당직 근무를 서고 있던 김민석 요원의 귀에는 그 미세한 떨림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위급한 상황을 겪으며 단련된 직감으로, 그 침묵 속에 갇힌 절박한 외침을 감지했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다시 한번 정중하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한 침묵과 희미한 두드림뿐이었다. 김 요원은 차분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신고자가 말을 할 수 없는 어떤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침착하게 프로토콜에 따라 질문을 던졌다.

"혹시 몸이 불편하시면, 한 번만 두드려 주십시오."

숨 막히는 정적.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수화기 너머에서 작고 희미한 '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짧은 신호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한 사람의 간절한 구조 요청이었다.

김 요원은 희망의 빛을 발견한 듯 빠르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집 안에 계시면 한 번, 밖에 계시면 두 번 두드려 주세요."

다시 한번, 망설임 없이 '똑' 하는 소리가 울렸다. 신고자는 집 안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새벽 시간인데다, 불확실한 GPS 신호로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시간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 김 요원은 초조함 속에서도 냉철하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그의 뇌리에 스친 것은 과거 신고 이력 검색이었다. 혹시 과거에 비슷한 신고가 접수된 적이 있다면, 실낱같은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는 즉시 지난 1년간의 신고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5개월 전 같은 번호로 접수된 신고 기록을 발견했다. 신고 위치는 참조은 병원 앞 낡은 주택. 희미한 기억 속에서 김 요원은 그곳이 오래된 골목길에 위치한 허름한 집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망설일 틈도 없이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119 센터에 출동 지령을 내렸다. 동시에 경찰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자칫 오인 신고나 장난 전화로 치부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 요원에게는 그 작은 두드림이 간절한 생명의 신호였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고,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사이렌 소리를 찢으며 119 구급대와 경찰차가 새벽의 어둠을 가르며 출동했다. 신고된 주택에 도착한 경찰은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긴장된 순간, 경찰은 문을 강제로 개방하고 안으로 진입했다.

방 안에는 한 남자가 쓰러진 채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그는 뇌졸중 증세로 쓰러져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마비된 손을 간신히 움직여 전화기를 붙잡고 희미하게 두드려 구조 요청을 보낸 것이었다. 절망 속에서 그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구급대원들은 즉시 응급처치를 시작했고, 남자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김 요원의 신속한 판단과 대처 덕분에 남자는 골든 타임 안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기적처럼 생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사람들은 김 요원의 놀라운 직업 정신과 침착함에 감탄했다. 그는 단순한 장난 전화로 치부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한 번의 두드림 속에 담긴 간절한 구조 요청을 놓치지 않았다.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과거 신고 기록을 뒤지고 경찰과 협력하며 끝까지 신고자를 찾아낸 그의 헌신적인 노력이 한 생명을 살린 것이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영웅에게만 감탄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숨겨진 영웅들이 존재한다.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들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게 희망의 손길을 내미는 119 상황 요원들. 침묵 속에서 들려온 작은 두드림을 놓치지 않고 생명을 구한 김민석 요원과 같은 영웅들이야말로,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진정한 영웅들이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모든 영웅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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