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 회의실 자리, 누가 앉았는지 다 봤다

by DOPDA

한국 중견기업이 일본 유통사와 첫 접견을 가졌다.


서울 본사 회의실. 10인용 테이블.


한국 측 대표가 회의실에 먼저 들어와 상석에 앉았다. 일본 대표가 들어왔을 때, 한국 대표는 일어나 악수를 했지만 자리는 그대로였다.


일본 대표는 맞은편 하석 자리에 앉았다.


회의는 진행됐지만, 일본 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제안은 들었지만, 관심은 보이지 않았다.



회의 후 일본 측 실무진이 한국 측 담당자에게 조용히 말했다.


"실례지만, 한국에서는 초대한 쪽이 상석에 앉는 게 보통인가요?"


한국 담당자가 당황했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실수했네요."


일본 실무진이 답했다.


"아닙니다. 문화가 다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저희 대표님은, 자기가 찾아간 건데 오히려 대접받는 느낌이 안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자리 배치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관계 정의다.


상석에 누가 앉느냐로, 이 자리에서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고객을 초대했으면, 고객이 상석에 앉아야 한다.


파트너를 초대했으면, 파트너가 상석에 앉아야 한다.


투자사를 만나러 갔으면, 투자사가 상석에 앉아야 한다.


이건 매너 이전에 관계 인식이다.


그런데 이 기본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 자동차 부품사 구매 담당자가 한국 협력사를 방문했다.


한국 협력사 회의실. 12인용 테이블.


한국 협력사 대표가 회의실에 먼저 들어와 상석에 앉아 있었다. 독일 담당자가 들어왔을 때, 한국 대표는 앉은 자세로 악수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독일 담당자는 빈자리 중 아무 데나 앉았다. 상석 맞은편이었다.


회의는 시작됐다.



한국 대표는 회의 내내 '우리가 선택하는 쪽'이라는 태도였다. 제안서를 내밀고, 조건을 설명하고, "이 정도면 괜찮죠?"라는 투로 말했다.


독일 담당자는 조용히 들었다. 질문도 거의 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독일 담당자가 말했다.


"검토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3개월 뒤, 독일 본사는 다른 한국 업체를 선정했다.


한국 협력사는 이해하지 못했다. 기술도 좋았고, 가격도 경쟁력 있었다.


나중에 다른 경로를 통해 들었다.


"그 회사 대표, 태도가 좀 이상했어요. 본인들이 공급받기를 원하는 쪽인데, 마치 저희가 부탁하러 온 것처럼 행동하더라고요. 회의실 들어갔을 때부터 본인이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있었거든요."


독일 담당자는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상석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다. 손님 자리다.


고객을 상석에 앉히는 건, 고객을 존중한다는 신호다.


파트너를 상석에 앉히는 건, 파트너를 중요하게 본다는 신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걸 거꾸로 한다.


본인이 사장이니까, 본인이 나이가 많으니까, 본인 회사 회의실이니까.


그래서 고객이 와도, 파트너가 와도, 투자자가 와도 본인이 상석에 앉는다.


상석은 권력이 아니다. 예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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