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 명함은 많은 의미를 담는다

by DOPDA

회의실 문 앞에서 처음 만났다.

정중히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기 전 명함을 교환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알았다. 명함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걸.

"죄송합니다. 오늘 명함을 못 챙겼네요."

"괜찮습니다."

상대는 웃었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회의는 시작됐다.



회의 자체는 문제없었다. 논의도 자연스러웠고, 시간도 예정대로 끝났다.

다만 자리를 마치며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명함을 못 냈다는 사실보다, 첫 만남에서 해야 할 걸 못 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며칠 뒤, 두번째 만나는 자리가 잡혔고 어김 없이 회의는 진행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세번째 만나는 자리.



회의가 끝나갈 즈음, 내가 말했다.

"오늘 논의한 자료, 제 명함에 있는 메일로 보내주세요."

그제야 상대가 조용히 말했다.

"실례지만, 명함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정중한 말투였다. 부담 주는 방식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순간 머릿속이 멈췄다.

"아… 제가 명함을 안 드렸나요?"

말을 꺼낸 직후, 이 말이 실수였다는 걸 알았다.

상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회의는 그대로 끝났다.



회의실을 나오자 옆에 있던 상사가 말했다.

"명함, 왜 아직도 못 줬어?"

그제야 상황이 정리됐다.

첫 만남에서 못 줬다.

두 번째 만남에서도 못 줬다.

상대에게 명함 달라고 했는데, 정작 내 명함은 없었다.

상대가 정중히 요청했는데도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사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명함이 문제가 아니야. 이 사람은 우리가 자기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고 느꼈을 거야."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명함을 못 낸 게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 명함은 달라고 하면서 내 명함은 없었다는 게, 그리고 두 번의 만남 동안 아무도 그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명함은 회의가 끝난 뒤 주는 게 아니다. 첫 만남에서, 자리에 앉기 전에 교환한다.

이건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 시작이 두 번 연속 빠지고, 심지어 상대 명함만 요청하게 되면, 상대는 이렇게 인식한다.

이 사람은 준비가 안 돼 있다.

약속한 걸 스스로 관리하지 않는다.

내 정보는 필요한데, 본인 정보는 주지 않는다.

그 인식은 말로 확인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남는다.




한 금융사 임원이 스타트업 대표와 첫 접견을 가졌다.

스타트업 대표는 명함을 준비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명함이 떨어져서요" 하고 넘어갔다.

금융사 임원은 괜찮다고 했다.

한 달 뒤, 두 번째 접견.

회의 중 스타트업 대표가 말했다.

"제안서는 명함에 있는 이메일로 보내드리면 될까요?"

금융사 임원이 조용히 답했다.

"죄송한데, 명함을 아직 못 받았는데요."

스타트업 대표는 당황했다.

"아, 제가 요즘 명함을 잘 안 쓰는 편이라서요. 이메일 주소 알려드릴게요."

금융사 임원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세 번째, 네 번째 접견이 이어졌지만, 결국 투자는 성사되지 않았다.

스타트업 대표는 나중에 지인을 통해 들었다.

"그 임원이 그러더라고요. 명함도 제대로 못 챙기는 사람이 회사 운영을 제대로 할까 싶었대요.

특히 두 번째 만남 때, 본인 명함은 없으면서 제 명함 정보를 달라고 하더래요."

명함 자체가 중요했던 게 아니었다. 상대 정보는 필요한데 본인 정보는 주지 않는다는 인상이 문제였다.



명함은 종이 한 장이다.

하지만 명함을 준비하지 못한 순간, 그리고 그걸 정리하지 못한 이후의 시간은 사람을 계속 불편하게 만든다.

이 불편함은 상대에게서 오는 게 아니라, 대부분 내 쪽에서 시작된다.

명함에서 중요한 건 '챙겼다 / 못 챙겼다'가 아니다.

실수를 인지했는지, 그걸 바로 정리했는지, 상대가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스스로 처리했는지.

이 세 가지다.



명함을 못 줬다면, 그날 저녁 이메일로라도 정보를 보내야 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도 못 줬다면, 회의 전에 먼저 사과하고 바로 전달해야 한다.

상대 명함을 요청하기 전에, 내 명함부터 있어야 한다.

상대가 먼저 요청하게 만들었다면, 그건 이미 늦은 것이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가장 오래 남는 실수는 큰 결례가 아니다.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작은 어긋남이다.

그리고 그 어긋남은 다음 만남 때마다 조용히 떠오른다.

명함보다 먼저, 그 기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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