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 아무도 기억 못하는 환영사

by DOPDA

행사 시작 5분 전.

단상 앞에 선 대표가 원고를 한 번 더 봤다. 문장은 깔끔했고, 표현도 무난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걸릴 데 없는 말이었다.


환영사는 정확히 3분.

속도도 적당했고, 발음도 또렷했다. 청중은 고개를 끄덕였고, 박수도 나왔다.

그런데 행사 끝나고 환영사에 대해 얘기 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이런 말들.

"다음 세션이 뭐죠?"

"자료 이메일로 와요?"

"일정 빡빡하네."

환영사는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런 걸 자주 본다.

환영사가 문제는 아니다. 대개 정중하고, 형식도 갖췄다.

그런데 환영받았다는 느낌은 안 남는다.

왜냐면 그 말이 상대가 이미 아는 얘기였으니까.


환영사에 자주 나오는 문장들.

"바쁘신 중에도 참석해주셔서"

"이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틀린 말은 없다. 새 말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듣는 게 아니라 기다린다.



독일 자동차 부품사가 아시아 협력사들 초청했다.

환영사 3분. 짧았다.

"여러분께서 오늘 여기 오기까지 쉽지 않은 길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베트남 팀은 태풍 때문에 비행기로 편히 올 수 있는 것을 차로 장시간 이동하여 비행기를 탔고, 인도네시아 팀은 라마단 기간임에도 일정을 맞춰줬으며, 한국 팀은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샘플 테스트하고 비행기 탔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이러한 열정과 노력이 금번 프로젝트에 큰 동력이 될 것이며, 저희 또한 그 수고에 고마운 마음입니다." 청중이 웅성거렸다. 몇몇은 놀란 표정.


행사 끝나고 한국 팀장이 동료한테 말했다.

"우리가 공항 가는 길에도 샘플 테스트한 거 어떻게 알았대?"

"모르겠어. 근데 저 사람, 진짜 우리 상황 알고 있더라."

그 환영사는 한 달 뒤까지 얘기됐다.


환영사는 분위기 좋게 만드는 시간이 아니다. 관계 정하는 시간이다.

왜 모였는지.

누가 뭘 하는지.

이게 행사인지, 대화인지.

첫 문장에서 정리되는 것들.

그런데 그 시간을 무난한 말로 채우면, 관계도 무난하게 고정된다.


형식으로 남는 환영사의 공통점.

말은 준비했는데, 상대는 준비 안 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상황인지, 왜 왔는지.

그 맥락 없는 환영은 결례는 아니지만, 기억에도 안 남는다.



환영사가 형식으로 끝나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말은 잘했는데."

"왜 반응이 없지."

이유는 대개 같다.

환영받은 사람보다 말한 사람이 더 만족했으니까.


환영사는 잘 말하는 자리가 아니다.

상대가 "우릴 알고 있네" 처음 느끼는 자리다.

그게 빠지면, 환영사는 아무 문제 없이 아무 흔적도 안 남긴다.

그날 만남은 그 상태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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