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 그날 식사에서, 왜 일 이야기를 꺼냈을까

by DOPDA

그날은 회의가 아니었다. 공식 접견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한 저녁 식사였다.

상대는 해외에서 온 바이어들이었고, 우리는 "편하게 보자"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장소도 회의실이 아닌 식당이었고, 안건도, 자료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가벼운 근황이었다. 시장 상황, 최근 업계 분위기.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고, 웃으며 들었다.

우리는 그 반응을 "들어도 된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그래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날 상대는 단 한 번도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십니까?"도 없었고

"그럼 다음 단계는?"도 없었다.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게 신호였다.



식사 자리에서 질문이 없다는 건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일 이야기를 할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날 상대는 사람을 보러 나온 자리였고, 우리는 제안을 설명하고 있었다.

자리의 목적이 달랐다.



식사가 끝날 즈음, 상대 중 한 명이 말했다.

"오늘은 그냥 가벼운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부드러운 말이었다. 하지만 경계는 분명했다.



그날 이후, 후속 논의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거절도 없었고, 문제 제기도 없었다. 그저 "다음에 기회가 되면"이라는 말만 남았다.

우리는 왜 그런지 한참 뒤에야 이해했다.




한 국내 IT 기업이 유럽 투자사 파트너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투자사 측에서 먼저 제안한 자리였다. "편하게 저녁이나 하죠."

식사 시작 20분쯤, 한국 측 대표가 말을 꺼냈다.

"다음 분기 사업 계획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투자사 파트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웃기도 했다.

한국 대표는 계속 말했다. 시장 전망, 성장 전략, 투자 계획.

투자사 파트너는 끝까지 들었다. 하지만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한국 측 실무진이 물었다.

"오늘 반응이 좋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보셨어요?"

대표가 답했다.

"글쎄, 질문이 하나도 없더라."



2주 뒤, 후속 접견을 제안했지만 답이 늦었다.

"지금은 타이밍이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한국 대표는 나중에 다른 경로로 들었다.

"그 파트너가 그러더라고요. 식사 자리에서 사업 계획 설명을 30분 들었대요. 본인들은 그냥 사람 보러 나온 건데."




상대가 먼저 일을 묻고,

구체적으로 묻고,

대답 뒤에 또 물으면.

그때 일 얘기를 해도 된다. 그 전까진, 그냥 식사다.


식사 자리에서 해야 할 건 설명이 아니다. 관찰이다.

상대가 말을 꺼낼 준비가 되었는지, 대화를 확장할 의사가 있는지, 아니면 관계만 확인하려는지.

그걸 읽는 게 먼저다.

일 얘기는 언제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식사 자리에서 먼저 꺼낸 일 이야기는 종종 이렇게 읽힌다.

"이 사람은 자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 인식은 다음 자리를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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