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낙인찍은 아이를 믿어준 엄마

-에디슨의 엄마, 낸시 에디슨 -

by 맘체인저


성공을 키운 건 엄마였다 1

-세상이 낙인 찍은 아이를 믿어준 엄마1, 낸시 에디슨-


1. 문제아가 아니라, 질문이 많았을 뿐이었다

1870년대 미국.

공장은 늘어나고, 기계는 빨라지고,
학교는 아이들을 ‘질서’ 속에 앉혀두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좋은 학생이던 시절.


그 교실 한쪽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질문이 많았다. 수업 중에도 손을 들었다. 정해진 답 대신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 아이는 바로 토마스 에디슨이었다.


어느 날, 담임 교사는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아이를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에디슨은 집에 돌아와 그 편지를 건넸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종이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학교에서는 너를 가르칠 수 없대.
너는 너무 특별해서, 엄마가 직접 가르쳐야 한대.”

그 말이 기록 그대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이야기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나에게도 새로운 선언을 해야하는

시간이 왔다고 느꼈다. 마음속 그일화를 작게 오려 중심이라는

포켓에 깊숙히 저장 버튼을 꾸욱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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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이를 고치지 않고, 질문을 지켰다

에디슨의 어머니 낸시에디슨 ( Nancy Elliott Edison)은 전직 교사였다.

그녀는 학교가 포기한 아이를 조용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더 많이 읽게 했고,
더 많이 실험하게 했다.


퇴학을 당한 소년의 지하실은 작은 실험실이 되었다.
유리병이 깨지기도 했고, 이상한 냄새가 집 안을 채우기도 했다.

실패는 반복됐다.


하지만 한 번도 낸시 에디슨은

“왜 너는 이것도 못 하니”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뭐가 달랐을까?”

그 질문은 아이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다시 시도하게 만들었다.


학교는 그 아이를 ‘부족함’으로 해석했다.
어머니는 그 아이를 ‘가능성’으로 해석했다.


가능성과 부족함그 둘을 나누는 하나의 시선, 엄마라는 존재가

된 뒤로 그 차이점을 여전히 고민중이다.

무엇이 그것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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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왜 그렇게까지 하니?” 대신

어린 시절 토마스 에디슨은 기차 안에서 신문을 팔았다.
그 작은 수입으로 실험 재료를 샀다.

기차의 수하물 칸 한쪽을 빌려
작은 실험실처럼 꾸며 놓았다고 전해진다.

유리병, 화학 약품, 메모지.
그에게 세상은 늘 실험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실험 도중 화학 약품이 흔들리며 바닥에 쏟아졌고
작은 불이 붙었다.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기차 책임자는 격분했다.


그는 에디슨의 실험 도구를 밖으로 던져버렸고
기차에서 쫓아냈다.
(이때 얻은 충격이 그의 청력 악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장면은 부모라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했니?”

“그만 좀 해라.”

그 말이 먼저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아이의 호기심은
그날 이후로도 멈추지 않았다.


실험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중요한 건 사고가 없었느냐가 아니라


그 사고 이후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았느냐였을지도 모른다.


3. 수천 번의 실패 뒤에 있는 태도

훗날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험 끝에 전구를 완성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그 많은 실패를 어떻게 견뎠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을 뿐이다.”

이 태도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닐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하나의 실패를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설명해준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태도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날, 학교와 제도와 통념이 규정한

퇴학생의 딱지를 그의 어머니 낸시가 그대로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 이제야 너가 왜 문제아 인지 알겠어.” 라고 했더라면


인류는 아직도 어둠을 밝힐 작은 필라멘트 하나를

끝없이 찾고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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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는 어떤 눈으로 아이를 보고 있을까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고민들

내 아이에게 무엇을 더 주어야할까?


계속해서 더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부모의 고백은
과연 내 아이를 단단하게 키우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그 열쇠는 바로 어머니가 선택한 ‘해석’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부모는 먼저 화를 내고, 어떤 부모는 먼저 묻는다.

그 차이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가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마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5.아이의 이야기보다 중요한것

다음 글에서는
그 그 해석의 ‘첫 문장’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왜 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단정 짓고,
왜 아이의 행동보다 먼저 걱정이 앞서는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낡은 기준들에 대해.


어쩌면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시간으로
조금 더 천천히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의 가능성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어른의 눈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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