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공감말하기, 기술인가 진심인가

공감은 말하기가 아니다

by 맘체인저

엄마의 말하기는 아이의 말을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의 시선은 아이를 움직인다.

당신은 공감을 왜 하고 싶은가?


공감, 나는 왜 하고 싶은가?

요즘 ' 나는 공감하는 엄마'라는 제목으로 공감하는 엄마 만들기 8주 플랜 강의를 하고 있다. 많은 엄마들에게 아이와의 공감하는 말하기란 잘못된 행동을 훈육하는 기술의 일부이다.

많은 엄마들은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 네 마음이 그랬구나", "많이 화가 나서 그랬구나, ", "응, 엄마가 네 마음 이해해"

흔히 이런 것을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라고 한다. 그렇게 엄마들은 오가다 주워들은 팀을 사용하여 아이의 마음을 사려고 한다.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가 하라고 알려준 공감하는 말하기를 한 후에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물건을 던지는 것은 안돼, 다음부터는 던지면 안 된다. 위험한 행동이야, 알겠지? " 하고 아이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아이에게 명확하게 인지 시킨다.

그러나 그렇게 엄마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같은 행동이 반복된다면 엄마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 00야, 엄마가 분명히 아까 말했잖아, 그렇게 물건을 던지면 안 된다고!, 그런데 왜 또 던져?"

그리고 한 번 더 아이가 물건을 던지면 그때는

" 야!, 물건 던지지 말라니까. 너 도대체 엄마 말을 왜 이렇게 안 들어? 어? 다음부터 또 던지면 그때는 진짜 매 맞을 거야"




공감은 분노의 전주곡?

이런 말하기가 정녕 공감하는 말하기라고 생각하는가? 엄마들에게 있어서 공감은 어쩌면 말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저 아이들을 조종하기 위한 1인용 게임기의 버튼의 일부이다. 이것을 통해서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없애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바꾸기를 원하는 것이 진심이 아닌가?

이것은 공감이 아니다. 사실 많은 엄마들은 부모들로부터 진실된 공감을 받아본 적도 별로 없고, 나를 위한 공감이 아닌 아이를 위한 공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 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유튜브나 SNS 어디선가 보고 공감하는 말하기를 하는 엄마들의 내면은 사실상 공감과 상관이 없다. 공감하는 말하기를 몇 번 하고 몇 분 후 아이가 하는 같은 행동 때문에 화가 난다면 아이들에게 있어서 엄마의 공감은 분노의 전주곡일 뿐이다.


우리의 시대는 왜 엄마들에게 공감하는 말하기를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진실이 아닌 기술로 말이다.

공감의 본질을 교육하려고 하는 사람은 왜 없을까? 왜냐하면 공감의 출발지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감의 출발 지점은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구나"라고 한번 더 추임새를 단순히 넣어주는 것도 아니다. 공감은 '충분히 받아주는 것'이다. 공감은 이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공감은 아이를 받아줄 때만 열릴 수 있는 세계이다. 아이를 바꾸기 위해 잠깐 들르는 휴게소 식의 말하기를 한다면 이 아름다운 세계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다. 공감은 엄마로 하여금 무한한 깊이와 넓이를 요구한다. 그것은 내 안으로 아이를 깊이 끌어안을 때만 보이는 세계이다.

아이를 끌어안아 준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엄마가 화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엄마가 더 이상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엄마의 "왜"에 대해서 대답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의 분노를 피하기 위한 변명 나열하기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엄마는 그 뒤에 줄 충고를 입속에서 준비한다. 아이도 엄마도 해야 하는 말하기를 할 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공감은 설명이나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면 "너, 왜 이렇게 했어? 어? 하지 말랬지?"라고 아이를 윽박지르곤 한다. 그러나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설명문이 아니다. 그럴 때 이 둘의 신비로운 관계는 둘만이 누릴 수 있는 무한한 공감의 세계로부터 멀어진다. 아이는 알고 있다. 자신에게 있어 엄마는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아님을.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들의 "왜 했어? 하지 말랬지?"라는 말에 할 대답이 준비되어있지 않다. 우리와 아이의 관계는 묻고 답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묻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관계이다.

공감에서 교감으로

그래서 공감하는 말하기란 아이의 태도를 바꾸기 위한 중간다리가 아니다. 진실된 공감은

" 엄마는 네 마음을 다 알아"라고 하는 말이 필요 없는 말하기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말이 필요 없는 말하기를 부모와 나누면서 자랐을까? 요즘 하는 엄마들의 공감하는 말하기는 긴 설명문의 서론 같다. 그 서론은 한 두 문장이면 끝이 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엄마의 말이 길든 짧든, 아이들이 듣는 공감은 그 뒤에 시작될 "~~~~ 때문에 하면 안 돼"의 결론을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의 말하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감동하지 않는다.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고 엄마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행동을 바꿀 이유는 더더욱 없다.


공감은 과정이 아니다. 공감은 목적이다. 공감이 목적이 될 때 공감받은 사람은 공감 그 이상의 교감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아이와 꿈꿨던 관계, 그가 가장 처음 내게로 올 때, 나를 가슴 뛰게 했던 단어는 바로 교감이 아닌가? 우리가 아이와 원하는 관계가 기술적인 공감인가? 아니면 행복한 교감인가?


우리는 성인이 되었다. 결혼도 하고 독립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 우리 부모님과의 교감을 그리워한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4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용기 내지 못한 한마디가 마음속에 기척을 낸다. 아직은 내 마음은 배가 고픈가 보다. 말하기를 넘어서는 교감이 채워지지 않은 듯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이다 친정집 문을 나서기도 한다. "엄마, 다음 달에 올게"


엄마가 받아주는 순간

우리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날마다 고민한다. 최고의 것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것보다 더 최고의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함이다.

공감은 부족하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과의 교감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당신 이하는 얕은 공감에 반응하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 한숨이 나오는가? 그럼에도 "그래도 괜찮아"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당신의 짓궂은 마음의 습관을 삼켜보려 하는가?


이제 조금 있으면 아이가 하원을 하는 시간이다. 오늘도 당신의 아이는 당신을 설명충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오늘 만큼은 하고 싶은 말을 잠시 내려놓고 "그렇지만, 나는 너와 교감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하고 아이의 마음 곁에 잠잠히 서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아이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준 적이 언제인가?

당신이 오늘 한 '공감하는 말하기'는 기술인가? 진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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